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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05-15 (토) 20:27
분 류 사전2
ㆍ조회: 7459      
[고려] 전시과 (브리)
전시과 田柴科

고려시대의 토지제도.

관료와 국역 부담자에 대해 과(科:등급)을 나누어 전지(田地)와 시지(柴地)를 나누어 주는 제도이다. 이때의 토지지급은 실제의 토지지급이 아니라 그 토지에서 조세를 수취하는 권리, 즉 수조권(收租權)의 분급을 의미했다. 즉 고려시대 때에는 정부가 관료·관청에 일률적으로 조세를 수취하여 나누어 주는것이 아니라 토지에 대한 수조권 자체를 위임했다.

이때 수조권을 분급받은 자는 수조권을 위해 수반되는 권리, 즉 답험, 조세운반을 위한 사역, 경작자 교체 등 민에 대한 일정한 지배권 까지 함께 보유할 수 있다. 이같은 수조권분급제도는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독특한 제도이다.

고려의 토지분급제도는 940년(태조 23)건국에 공을 세운 조신(朝臣)과 군사에게 역분전(役分田)을 분급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때의 지급기준은 이들의 선악과 공로를 대소했다. 전시과가 마련한 것은 976년 (경종 1)으로 이를 시정전시과(始定田柴科)라고 부른다. 이때는 4색공복제를 기준으로 하고 인품을 고려했다고 한다.

표1에 의하면 전시과는 자삼층(紫杉層), 문반 단삼·비삼·녹삼층, 잡업 단삼·비삼·녹삼층,무반 단삼층에게 자급되고 있다. 여기서 자삼층만 18품 체계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문반·무반·잡업으로 니누고 내부에서 다시 공복별로 구분했다.

998년(목종 1)에 전시과는 크게 개편되었는데, 이를 개정전시과라고 부른다. 개정전시과의 특징은 첫째, 전지의 지급기준에서 인품이 빠지고 관직의 높낮이가 기준이 되었다는 점이다(표2). 이때는 모두 18등급으로 나누어 등급별로 해당관직과 전지지급애액을 규정했다. 둘째, 무반직과 문반직을 차별했다. 일례로 무반 정3품 상장군은 5과의 대우를 받는 데 반해, 문반 정3품은 4과의 대우를 받았다. 산직(散職)인 경우는 격차가 더욱 심했다. 셋째, 시정전시과에서는 한외과(限外科)로 분류되었던 잡색원리·유외잡직이 16과와 18과 사이로 편입되었다. 넷째, 마군(馬軍)과 보군(步軍)이 수급대상에 포함되었다. 이는 고려의 병제가 정비된 결과를 반영한 것이다. 다섯째, 시정전시과에서는 모든 품등에 전지와 시지가 지급되었으나 개정전시과에서는 16과 이하에는 전지만을 지급했다.

이후 전시과는 부분적인 개정을 거쳐 1076년(문종 30)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 이를 경정전시과(更定田柴科)라고 부른다(표3). 경정전시과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과별로 전지의 지급액을 축소했는데, 특히 시지가 현저히 감소했다. 둘째, 무반의 등급이 상승했는데, 등급별 지급액이 축소되어 실제 지급액에는 큰 차이가 없다. 셋째, 산직이 제외되었다. 넷째, 개정전시과에서 빠졌던 향직이 포함되었는데, 지급대상은 대상(大相:4품)·원윤(元尹:6품)뿐이고 나머지는 제외되어 있어 이 점이 의문으로 남아 있다. 다섯째, 한외과가 완전히 없어져 모두 18과 내로 편입되었는데, 잡류와 한인(閑人)이 새로이 등장했다.

한편 경정전시과에서는 무산계 전시과와 승려·지사(地師)들에게 지급하는 별사전시과가 별도로 설치되었다. 고려에서는 무산계를 무반이 아닌 향리·노병사(老兵士)·탐라왕족·여진추장·공장·악인 등에게 지급했다. 따라서 무산계 전시과는 이들에 대한 전지지급 규정이다.

전시과 체제에서 전국의 토지는 공전과 사전으로 나누어진다. 국가나 관청에서 수조권을 보유한 토지를 공전, 개인이나 사원 등이 수조권을 보유한 토지를 사전(私田)이라고 했다. 사전은 다시 수조권자에 따라 양반전·군인전·기인전·한인전·향리전·공음전 등으로 불렸다. 공전은 그 토지의 수조권을 국가나 관청이 보유한 토지이고, 사전은 수조권을 개인이 받아 행사하는 토지이다.

공전은 다시 1·2·3과 공전으로 나누어진다. 1과 공전은 국유지·공유지, 2와 공전은 관청의 경비조달을 위한 토지인 공해전, 3과 공전은 국가가 직접 수조하는 일반 민전으로 추정된다. 과전의 수조율은 일반적으로 1/10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토지의 경영방식과 수조율에 대해서는 양반전·군인전·공해전 등 토지의 성격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는 견해도 있으며, 실제로는 수조권이 아니라 자신의 토지에 수조율에 해당하는 면조권을 지급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이견들은 고려시대 농업 수준이 상경농법 단계까지 발전했는지, 휴한농법 단계에 머물고 있었는지의 문제와 보편적인 토지경영방식, 지주전호제의 발달 정도, 사회분화 정도 등에 관한 이해와도 관련된 것들로, 고려시대의 시대 성격 규명에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과전은 역 부담이 끝나거나 죄를 지으면 국가가 환수하는 토지였다. 그러나 실제로 역은 세전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를 통해 토지도 세습되었다. 또 과전과 별도로 5품 이상의 관리에게 지급하는 공음전이 있는데, 공음전은 상속을 허용하며, 모반·대역죄가 아니면 아들이 죄가 있어도 손자가 죄가 없으면 손자에게 1/3의 상속을 허용했다. 직계자손이 없으면 사위·조카·양자·의자(義子)의 순서로 상속을 허용했다.

1076년에 완성된 전시과는 인종대에 일어난 이자겸의 난을 전후로 하여 운영상의 모순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즉 전시과의 운영원리인 수조권 분급방식은 관료층의 불법적인 수조지 침탈과 소유지 확대를 가능하게 했다. 따라서 불법적인 수조현상과 토지소유의 불균형은 농민의 저항을 야기했고, 고려 후기 농장의 확대는 전시과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상세한 정보를 보시려면 표1. 시정전시과, 표2. 개정전시과, 표3. 경정전시과 도표를 참조하십시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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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토지제도사연구 : 강진철, 고려대학교 출판부,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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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경종대의 정치구조와 시정전시과의 성립기반 〈진단학보〉 59 : 전기웅, 진단학회, 1985
고려전기의 전품제 〈한우근박사정년기념사학논총〉 : 김용섭, 지식산업사, 1981
전시과체제붕괴기의 민전 〈경제사학〉 2 : 김옥근, 한국경제사학회, 1978
고려의 영업전 〈역사학보〉 28 : 이우성, 역사학회, 1965
高麗田柴科の一考察 〈東洋學報〉 63 - 1·2 : 浜中昇, 東洋文庫東洋學術協會, 1981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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