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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3-14 (금)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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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국의 고대사회 개관 (두산)
한국의 고대사회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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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대사회

신석기시대 말기에 이르러 농경이 보다 발달하여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금속문화를 알게 되었다. 청동기와 철기로 대표되는 금속문화는 바로 고대사회의 특성으로서, 그것은 국가 성립의 바탕을 마련해주었다.

한국의 청동기문화는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략 기원전 10세기경 북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때의 유물로서 세형동검(細形銅劍)ㆍ잔무늬거울[細文鏡]ㆍ동모(銅場) 등이 각지에서 출토되고 있고, 아울러 반달돌칼[半月形石刀]ㆍ홈자귀[有溝石斧] 등의 간석기와 민무늬토기가 다수 발견되었다. 도구의 개발과 농경기술의 발달로 생산력이 증대되었고, 그만큼 농업의 비중이 증가되었다.

한편 청동으로 만든 칼과 창으로 무장한 부족들은 이웃 부족들을 정복하여 공납(貢納)을 받아들임으로써,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성립되고 정치적 사회가 나타나게 되었다. 종래에는 이를 부족국가라고도 하였으나, 근래에는 성읍국가(城邑國家) 또는 읍락국가(邑落國家)라고 한다. 도처에 형성된 이들 읍락 중심의 정치적 사회는 정복 활동을 통하여 보다 큰 정치집단으로 발전해갔고, 점차 그의 권력을 강화하여 지배조직을 확대해 갔는데, 최초의 연맹왕국(聯盟王國)은 단군이 세웠다고 하는 고조선(古朝鮮)이다.

고조선 역시 초기에는 읍락 중심의 사회였으나, 후기에는 동방사회의 중심세력을 형성한 커다란 연맹왕국으로 발전하였다. 고조선은 대동강(大同江)과 랴오허강[遼河] 일대에 걸치는 광대한 연맹체로서, 엄한 법률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면서 지배세력을 강화하였다.

고조선 초기에는 청동기문화를 바탕으로 발전하였으나, 후기에는 철기문화를 알게 되었고, 이 시기의 지도자는 이주민 집단을 이끈 위만(衛滿)이었다. 위만은 중국의 통일왕조인 한(漢)나라와 자주 충돌을 일으켜 한무제(漢武帝)가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였을 때, 고조선은 이에 대항하여 1년간이나 싸웠으나 BC 108년 끝내 왕검성(王儉城)이 함락되었다.

고조선이 망한 이후 철기문화에 기반을 둔 새로운 연맹왕국들이 성립되었다. 북쪽에서는 부여(扶餘)ㆍ고구려(高句麗)ㆍ동예(東濊) 및 옥저(沃沮)가 일어났고, 남쪽에서는 마한(馬韓)ㆍ진한(辰韓)ㆍ변한(弁韓)의 삼한이 일어났다. 철기의 사용은 생활의 모습을 여러 모로 변화시켰는데, 특히 철제 농기구에 의한 농경 방법이 발달하여 경제기반이 급속히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목축이 성하였고 어업도 발달하였으며, 부족 상호간의 교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여러 계통의 문화가 융합되어 고대국가의 기초가 마련되어갔다.

한국의 고대국가는 고구려ㆍ백제ㆍ신라의 3국에서 비롯된다. 철기문화가 널리 보급되면서 정복전쟁이 활발해지고 농업경제가 진전되어 사회분화(社會分化)가 분명해져갔다. 따라서 왕권을 장악한 지배자는 중앙집권적 체제를 강화하였고, 밖으로 정복국가, 영역국가의 기틀을 다져갔다. 1세기 태조왕(太祖王) 때 고대국가를 수립한 고구려는 압록강 유역을 중심으로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이어서 4세기초 미천왕(美川王) 때에는 낙랑군(樂浪郡)을 축출하고 대동강 유역으로 진출하였다.

백제는 위례성(慰禮城)을 중심으로 한강 유역에서 일어났는데, 3세기 고이왕(古爾王) 때 고대국가의 체제를 갖추고 정치적 발전을 보였다. 한편 경주평야에서 일어난 신라는 4세기 내물왕(奈勿王) 때 주변 지역을 정복하고, 김씨 중심의 왕권을 강화하여 고대국가로 성장하였다. 이들과 아울러 낙동강 하류에는 가야연맹(伽倻聯盟)이 독자적 발전을 보였으나, 고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6세기에 신라에 병합되었다.

3국의 융성은 3국 간의 경쟁적 각축 속에서 이루어졌다. 고구려는 모용씨(慕容氏)와 백제의 침입으로 한때 시련을 겪었으나, 소수림왕(小獸林王) 때 불교를 수용하고 태학(太學)을 세우며 율령(律令)을 반포하여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이어서 광개토왕(廣開土王)ㆍ장수왕(長壽王) 때에는 밖으로 비약적 발전을 보였다.

그리하여 5세기에 고구려의 판도는 북으로 쑹화강[松花江], 남으로 아산만과 죽령(竹嶺)에 이르는 선, 동으로 동해안, 서로 랴오허강까지 이르는 대제국이었다. 서울도 산골짜기의 국내성(國內城)에서 넓은 평야가 있는 평양성(平壤城)으로 옮겨 정치ㆍ경제 제도를 완비하고 문화를 꽃피웠다.

백제는 4세기에 벌써 중앙집권적인 귀족국가의 체제를 정비하고, 밖으로 마한을 완전히 복속시키고 서쪽으로 동진(東晉), 남쪽으로 왜(倭)와 통하면서 국제적 지위를 확고히 하였다. 그러나 5세기 말부터 국세가 약해져 성왕(聖王)이 서울을 사비(泗?부여)로 옮기고 한때 중흥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가장 늦게 일어난 신라는 5세기 초 지증왕(智證王) 때 우경(牛耕)ㆍ수리 사업을 통하여 경제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뒤이은 법흥왕(法興王) 때에는 율령을 반포하고 연호(年號)를 사용하며 불교를 공인하는 등 내정개혁을 단행하여 중앙집권적인 귀족국가로서의 통치체제를 갖추었다. 마침내 6세기 중엽 진흥왕(眞興王) 때에는 대외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 화랑도(花郞徒)를 중심으로 한 신라군은 한강 유역ㆍ낙동강 유역을 장악하고, 더 나아가 동북으로 함흥평야에까지 진출하였다.

3국의 발전은 중국의 왕조 교체와 깊은 관계를 가지면서 복잡하게 전개되었는데, 마침내 신라는 당(唐)과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다시 고구려ㆍ백제 유민과 힘을 합쳐 당의 세력을 이 땅에서 내쫓고 자주적인 통일을 성취하였다. 고대사회의 발전은 676년 신라의 삼국 통일로 급변하였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 왕실은 골품제(骨品制)를 확립하여 귀족세력을 억누르고 왕권을 강화하였으며, 중앙의 정치체제를 정비하고 넓어진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9주(州) 5소경(小京)을 설치하였다. 당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무역이 발달하였고 당에는 신라방(新羅坊)이라는 신라인의 거주지까지 생겨났다.

삼국의 문화를 종합하면서 보다 넓은 기반 위에서 새로운 문화를 꽃피워, 문학ㆍ과학ㆍ예술의 각 분야에서 민족 문화의 토대가 확립되어갔다. 삼국시대에 전래된 불교도 더욱 발달하여 불교왕국을 이룬 가운데 원효(元曉)ㆍ의상(義湘)ㆍ혜초(慧超) 등의 고승이 활약하였고, 불국사ㆍ석굴암ㆍ봉덕사종과 같은 문화재를 남겼다.

남쪽의 신라와 상대하여 북쪽에서는 발해(渤海)가 고구려의 옛 전통을 계승하여 만주지역을 통치하였다. 당과 교류하면서 유교적 정치제도를 도입한 발해는 8~9세기에 걸쳐 독특한 발전을 보였으나, 거란족에 의해 패망한 이후 만주는 우리 역사에서 떨어져나갔다. 통일신라는 말기에 이르러 왕권이 약해지면서 6두품(六頭品) 세력이 대두하고, 지방에서 호족(豪族) 세력이 성장하면서, 마침내 후고구려(後高句麗:마진ㆍ태봉)와 후백제(後百濟), 그리고 신라로 다시 분열되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대한민국-역사'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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