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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내 마음에 남은 절 - 송영방과 선암사
내 마음에 남은 절 - 송영방과 선암사 디지털법보 / 2001년 7월 25일 617호  봄만 되면 떠오르는 백매화의 추억 / 초봄 만나는 고백매는 한 폭의 동양화 / 화폭에 담고자 습작하며 노심초사겨울방학이 오면 늘 찾아가고 싶은 곳이 전라도 승주 선암사이다. 그 많은 사찰 가운데 유독 선암사를 찾고 싶은 것은 비교적 원형이 덜 훼손돼 조촐하지만 곰삭힌 듯 한 모습 때문이다. 또 조금은 가난하다 싶을 정도로 소박한 경내는 주위 풍광과 잘 조화되어 한 폭의 옛 그림(古畵)을 보는 것 같은 그런 정경(情景)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선암사는 방학이 끝나갈 무렵이면 초봄을 느낄 수 있고 경내 뒤뜰에는 아름드리 고백매(古白梅)가 있다. 여기에 홍매(紅梅) 수십 그루가 다투어 꽃을 피우고 있는 사이로 주지 지허 스님의 맑은 모습을 마주하면서 가졌던 호감은 지울 수가 없다. 처음 이 절에서 고매(古梅) 아름드리를 보았을 때의 감격은 잊을 수가 없다. 매화를 너무 좋아하는 벽도 있지만 사군자(四君子) 중에 내 나름대로 매화의 진수를 어떻게 화폭에 표현할까 하는 화두를 들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조선조 화가로서 매화를 잘 그린 화가는 몇 분이 있지만 그 가운데 단원 김홍도, 능호관 이인상 선생이 으뜸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화가의 그림에서는 매화의 진수와 성정을 꿰뚫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다. 매화를 그리는 일은 그리 녹녹한 게 아니다. 특히 남화적 문인화에서는 형사(形似)에 치중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 매화를 철골생춘(鐵骨生春)이라 하여 등디럭은 철(鐵)과 같이 강함을 나타내고 꽃은 부드럽게 표현하는데 무엇보다도 가지의 구성이 매화의 생명력을 결정적으로 이어지게 한다. 화변(花辨)은 반개(半開)하였을 때 가장 아름답기 때문에 강과 약을 조화시켜 표현하려니 정말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면밀히 관찰해 수묵으로 습작도 하고 매화나무 앞에 앉아 정관취상(靜觀取象)하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묘를 얻고자 노심초사하고 있다. 선암사가 기대고 들어앉은 뒷산은 조계산이요 그 뒤편에 바로 송광사가 있다. 버스에서 내려 절 입구 일주문을 조금 지나 왼편으로 계곡을 끼고 올라가면 아름다운 다리를 둘 만나게 되고 조금 더 올라가면 오른편으로 사시나무꽃 향기가 코끝을 스쳐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돌층계를 몇 계단 올라서면 육조고사(六朝古寺)라는 장중한 획(劃)의 판각이 이마에 닿는다. 대웅전을 오른쪽으로 휘돌아가면 뒤쪽에 무우전(無憂殿)이 있고 왼편으로 고매(古梅) 수십 그루가 있다. 대각국사가 창건할 당시에 심어 놓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고목에 백록색 이끼가 끼여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 연륜이 상당함을 볼 수 있다. 선암사 매화에 심취한 시절, 앙상한 가지에 가녀린 속살을 드러내어 방긋 피어난 매화를 보기 위해 달려가고 한 밤에 손전등을 비추며 보고 또 보며 매화만을 생각하곤 했다. 지금도 그림을 그리자면 종종 선암사 뒤뜰 매화 밭으로 가는 착각에 젖어들곤 한다. 그리고 그때 새벽 별빛에 비춘 매화에 심취한 가운데 들었던 독경소리와 산사의 고요함이 환영으로 다가서기도 한다. 송영방(동양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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