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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3-15 (토)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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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365      
[고려] 한국사6-고려시대 역사 개관 (브리)
고려시대 역사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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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사회의 전개

고려시대

통일신라 후기인 신라 하대(下代) 사회는 큰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그 하나는 진골귀족 내부에 분열이 생겨 왕위쟁탈전이 치열해진 것이다. 또 하나는 6두품세력이 사회적으로 성장하여 유교의 이념에 입각한 정치개혁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다음으로는 지방에서 호족세력이 강력하게 등장한 일이다.

호족들은 중앙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스스로 성주(城主)·장군(將軍)이라고 칭하면서 정치적·경제적·군사적으로 반독립적인 상태로까지 되었다. 이들 호족은 밖으로 크게 해상무역을 전개하기도 했는데, 청해진(淸海鎭)의 장보고(張保皐)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사상적으로는 선종(禪宗)과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 입각해서 그들의 세력을 뒷받침하려고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시달리던 농민들의 반란이 전국적으로 일어난 것도 또 하나의 큰 변화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은 견훤(甄萱)의 후백제와 궁예(弓裔)의 후고구려가 일어나 후삼국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 후삼국은 궁예의 뒤를 이은 왕건(王建)의 고려에 의해서 재통일되었는데, 이 시기에 거란에게 멸망한 발해의 유민들이 고려에 합류해왔다.

신라는 수적으로 극히 소수인 진골귀족에 의하여 지배되는 사회였고, 통일 후에는 전제왕권에 의하여 지배되는 극히 폐쇄적인 사회였다. 그러나 고려는 신라의 6두품 출신과 지방호족 출신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는 사회였다. 그러므로 지배세력의 사회적 기반이 크게 확대된 셈이다. 이에 따라서 관리의 등용에는 과거(科擧)와 같은 시험제도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호족의 후예인 향리 출신 이상의 사회층이 과거를 통하여 등용되었을 뿐이다. 또 일단 등용이 되면 음서(蔭敍)에 의해 그 신분이 세습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또 경제적으로는 전시과(田柴科)에 의하여 지급되는 과전(科田)보다는 공음전(功蔭田) 같은 사유지적 성격의 토지가 귀족들의 경제적 기반으로서 선호되었다.

그리고 이들 귀족의 정치적 의견은 중서문하성의 2품 이상이 모이는 재신회의에서 반영되었다. 이들 귀족의 자제들은 유교적인 정치이념을 최충(崔)의 문헌공도(文憲公徒)를 위시한 12공도의 사학(私學)에서 배웠는데, 이 사학은 문벌 중심의 교육기관인 셈이다.

불교는 교종과 선종의 대립을 지양하는 천태종(天台宗)이 국가의 뒷받침 아래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를 개창한 것은 왕자인 의천(義天)이었다. 그리고 귀족들의 사치를 반영하는 미술품들 중에서는 청자가 가장 유명했다.

고려의 귀족사회는 문반 중심의 귀족사회였다. 이에 무인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드디어는 무인정권이 성립되기에 이르렀는데, 최충헌(崔忠獻) 이후 4대에 걸친 최씨정권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서 귀족사회의 지배기반은 더욱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자극을 받은 농민과 노비들의 반란이 크게 일어나기도 했다.

한편 문신들은 패관문학(稗官文學) 속에 도피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불교계에서는 문신적인 교종의 기성권위에 대항하여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과의 조화를 꾀하는 조계종(曹溪宗)이 지눌(知訥)에 의하여 비롯되었다.

무인정권시대에 고려는 몽골의 침입이라는 대외적인 시련에 부딪치게 되었다. 강화(江華)로 천도하여 40여 년 간 이에 대항한 결과 국가의 독립을 보장받으며 강화조약을 맺었으나 정치·경제·대외관계 등에서 간섭을 받았다. 또 몽골을 배경으로 등장한 권문세족들이 정치와 경제를 지배하여 농장과 노비가 증가하는 현상을 가져왔다. 이들은 불교행사를 지원함으로써 현세적인 영달을 기원하는 공덕사상의 신봉자들이었다.

이와 대립적인 위치에서 과거시험을 통해서 진출한 사대부들은 도덕적인 청렴을 강조하며 권문세족을 비판했다. 그러한 사상적 근거로서 우주의 근본인 이(理)의 발로로서의 인간의 근본인 성(性)의 선함을 주장하는 성리학을 수용했다. 이러한 사대부의 의견을 반영하여 안으로는 권문세족을 억압하고 밖으로는 몽골의 간섭을 배격하는 정책을 쓴 것이 공민왕(恭愍王)이었다. 그러나 이 개혁은 실패하고 결국은 고려왕조의 몰락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기백(李基白) 글>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사' 항목, 한국브리태니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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