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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3-06 (수) 07:43
분 류 시대
ㆍ조회: 2268      
[고대] 1. 고대의 정치 개관 (7차 지도서)
1. 고대의 정치

(1) 개관

고대의 정치 체제와 권력 구조는 고대 국가의 지배 체제뿐만 아니라 고대 사회 전반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우선 삼국 시대의 정치 체제와 권력 구조의 전개 과정, 귀족 회의와 왕권, 관직과 행정 관서의 정비에 대한 연구 동향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지금까지 삼국의 정치 체제에 대한 이해는 크게 부족제―중앙 집권 체제론과 귀족 연합 체제―전제 왕권 체제론으로 대별할 수 있다. 부(部) 체제론에 의하면 부는 단위 정치체로서 자치적 성격이 강하여 족장 회의에서 일을 처리하였고, 가장 유력한 부인 왕실은 관계(官階)를 통하여 족장층을 편제하고 전문 행정 요원을 통해 각 부를 통제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부 체제론에 입각해서 고구려의 경우 5나부(五那部) 체제가 1세기 중엽에서 3세기까지 유지되다가 집권 체제가 정비되면서 방위부(方位部)로 개편되었다고도 하고, 나부(那部)의 기초 집단인 나(那) 집단에 주목하여 읍락민의 노동력이라는 나 집단의 경제적 기반 때문에 초기 국가는 나부 통치 체제로 성립되었다가 나 집단의 기반이 해체되면서 집권적 통치 체제로 전환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백제의 경우 3세기 중엽 고이왕대에 부 체제가 형성된 것으로 보고, 이 시기를 소국 연맹과 중앙 집권 국가의 과도기로 설정하기도 하였다. 한편 신라의 경우 기왕의 6부 체제가 상고 말, 이른바 마립간기에 성립하여 중고기 말에 해체되었다고 이해한 데에서, 울진 봉평비의 발견으로 늦어도 마립간 초기에 성립하여 6세기 전반에 해체된 것으로 수정되었다.

이에 반해 귀족 연합 체제는 왕권에 귀속된 중앙 귀족들이 귀족 회의를 구성하여 정치를 운영하는 형태이고, 전제 왕권 체제는 국왕 1인의 왕권이 귀족들을 압도하는 정치 형태이고, 전제 왕권 체제는 국왕 1인의 왕권이 귀족들을 압도하는 형태이다. 이에 따르면 마립간기는 대등직을 보유한 귀족들이 운영한 전형적 귀족 연합 체제이고, 중고기에도 왕권이 지속적으로 강해지지만 상대등으로 대표되는 귀족 회의의 실권이 여전한 귀족 연합 체제이며, 중대에 이르러 비로소 귀족 회의가 정치 권력을 왕에게 빼앗겨 전제 왕권 체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입각해 백제의 경우 3세기 중엽∼4세기 중엽을 왕권을 중심으로 귀족 합좌제를 운영하던 연맹 왕국기, 4세기 후반∼5세기 중엽을 왕족과 왕비족의 귀족 연합 정권기, 5세기 후반을 과도기, 6세기 전반을 전제 왕권 확립기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신라의 경우 중고기를 귀족 연합 체제와 전제 왕권 체제의 대립기로 보기도 하고, 심지어 진평왕대에 전제 왕권이 성립한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부 체제론과 귀족 연합체론은 귀족 회의를 보는 관점에 있어서도 차이가 난다. 곧 전자가 귀족 회의 구성원의 독자적 성격을 주목하여 귀족 회의의 명칭을 제율 회의(백제)ㆍ제간 회의(신라)라 하는데 반해, 후자는 왕권 아래의 귀족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좌평 회의(백제)ㆍ대등 회의(신라)라고 부른다. 그런데 부 체제론과 귀족 연합 체제론 모두 중앙 집권 체제와 전제 왕권 체제 다음에 귀족 연립 체제가 성립하였다는 데에는 공통적이다. 곧 고구려 후기와 신라 하대, 그리고 백제 말기를 귀족 연립 체제로 보고 있다.

관직과 관서 등 특정 직능을 분장하는 정치 기구는 집권 체제의 정비와 함께 설치된다. 고구려의 정치 기구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이해하고 있다. 초기의 대보(大輔)와 좌ㆍ우보(左ㆍ右輔)는 군신 회의의 장 혹은 연맹체적 정치 형태를 반영하는 직책으로 파악되었고, 2세기 중엽 설치된 국상(國相)은 제가 회의의 의장으로 이해되거나, 왕권 전제화의 산물 흑은 직능주의의 막료 체제를 총괄하는 직책으로 보기도 한다.

중기의 형(兄)이나 사자계(使者系) 관등은 기왕에 전자가 족장 세력의 편제와 후자가 수취 체제의 정비와 연관하여 이해되었지만, 최근 집권적 정치 체제의 형성과 관련하여 검토의 여지가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후기의 관직 중 대대로의 선임제는 귀족 연립 체제의 운영 방식과 연관하여 새롭게 조명되었는가 하면, 연개소문의 집권과 함께 신설된 막리지(莫離支에 대해서도 기왕에 대대로와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것과 달리 태대형(太大兄)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백제의 정치 기구의 경우, 초기의 좌ㆍ우보는 고구려와 같이 군신 회의의 장이나 연맹체적 정치 형태를 반영하는 직책으로 파악되었다. 다만 3세기 중엽 고이왕대 6좌평 16관등의 정비에 대해서는 이를 믿어 고이왕대에 전제 왕권이 성립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고이왕대의 관제 정비는 후대 사실의 부회일 뿐 관제의 기본 골격만 갖추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좌평제는 백제의 가장 중요한 정치 기구로서, 그 성립 시기에 대해서도 3세기 중엽, 5세기 초, 7세기 초 등으로 학자들 간의 견해 차이가 크다.

한편 상좌평은 백제의 정치 기구가 상당히 정비되고 좌평의 직능이 분화되었던 상태에서 설치된 것인데, 왕권을 됫받침하는 것인지 귀족 세력의 세력 기반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만 국정을 총괄하는 재상적 성격을 지닌 것은 분명하다. 좌평제가 관직 중심의 정치 기구라면 6세기 전반에 설치된 22부서제는 행정 관서이다. 22부에 내관(內官)이 12부로 외관(外官)보다 많고 북주(北周)의 6관제를 채용하는 점은 왕권 강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신라 상고기의 정치 기구로 갈문왕(葛文王)이 주목되었다. 이에 대해 왕권을 견제하는 정치적 2인자로 보거나, 마립간기부터 왕권 강과의 일환으로 왕제(王弟)를 갈문왕에 임명하여 사량부(沙梁部)의 장으로 삼았다고도 한다. 신라의 중고기의 중앙 집권적 정치 기구는 법흥왕ㆍ진흥왕대, 진평왕대, 진덕왕대에 정비ㆍ체계화되었다. 법흥ㆍ진흥왕대에 군사ㆍ행정ㆍ재정ㆍ감찰을 맡는 병부(兵部)ㆍ상대등(上大等)ㆍ품주(稟主)ㆍ사정부(司正部) 등이 설치되었다.

진평왕대에 위화부(位和部), 예부(禮部), 조부(調部), 승부(乘部)가 독립된 행정 관서로 분화ㆍ정비되었으며, 진평왕 후기에 관제가 재정비되고 국왕 근시 기구는 내성(內省)으로 체계화되었음이 밝혀졌고, 내성사신(內省私臣)을 1인으로 삼은 것은 귀족 세력의 침투를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한 연구도 있다. 신라의 개별 행정 관서에 대해서는 병부, 상대등, 품주, 집사부 등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 중 상대등의 성격에 대해 이전에는 귀족 회의의 의장으로서 왕권과 조화하는 양면적 존재라고 파악한 데 대해, 최근에는 친왕적 성격을 강조하는 연구가 발표되어 논쟁이 되기도 하였다.

신라 중대의 권력 구조에 대해서는 전제 왕권의 개념 규정과 성립ㆍ해체 시기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였다. 곧 기왕에 전제 왕권에 대한 개념이 '군주 1인에게 귄력이 집중되어 있는 형태'였다면 최근 '중앙 집권적 관료 정치의 시행'으로 개념 규정을 다시 하였다. 전자가 전제 왕권의 성립 시기를 중대 신문왕 원년(681) 김흠돌의 난 숙청에서 찾는 반면, 후자는 중고대인 진평왕 후반 내성의 설치에서 그 성립 시기를 찾았다.

한편 전제 왕권의 붕괴 시기에 대해서도 의견이 다양하다. 반 전제주의 세력의 대표인 김양상이 상대등에 취임한 혜공왕 10년(774)으로 보거나, 김옹이 중시로 임명된 경덕왕 19년(760), 혹은 김옹과 김양상이 반 전제주의 세력의 대표라는 견해를 비판하면서 그들이 오히려 중대 왕권의 최후의 보루였고, 김주원 일파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김경신(원성왕)이 원성왕계의 왕통을 확립한 시기라는 연구도 있다.

신라 중대의 통치 조직은 신문왕대에 완비되었고 경덕왕대에 한화 정책(漢化政策)으로 일부 관부의 명칭이 바뀌었지만, 혜공왕대에 다시 복고되었다. 신라 중대 중앙 통치 조직에 대해 쟁점이 되는 연구 동향은 다음과 같다. 먼저 중대의 상대등이 정치적 실권을 집사부(執事部)에 넘겨주었고, 집사부의 행정에 대한 득실을 논박하는 정도의 구실을 담당하였다는 기왕의 견해에 대해, 상대등은 법흥왕대에 왕권 강화의 산물로서 그 기능이 중ㆍ하대에 시종일관 지속되었다거나, 중대 왕권의 옹호자 내지 중대 무열왕계 왕실과 같은 계열의 세력들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한 집사부에 대해서도 장관인 중시(中侍)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전제 왕권의 안전판 구실을 하였다는 견해와 관직 승진의 경로가 대개 시중을 거쳐 병부령이 되었으므로 집사부는 왕의 측근에서 기밀 사무를 관장하는 기구였다는 견해가 맞서 있다.

장관의 복수제에 대해서도 직능의 분화와 권력의 견제 및 분산을 통한 전제 왕권의 유지책으로 이해하는 것과 귀족의 합의 정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귀족군에 의한 집단 지배를 알려주는 것으로 양분되어 있다. 한편 신라 중대의 정치 세력에 대해서는 전제 왕권을 옹호하는 친왕파 세력과 전제 왕권을 반대하는 반왕파 세력의 대립 구도로 설명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신라 하대의 정치사에 대한 연구는 지방 호족들이 대두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으로서 신라 하대의 각 방면에 대한 것과 나말 여초 사회 변동을 주도해 간 것으로 생각되는 호족과 호족 연합 정권에 대한 것이 쟁점화되어 연구되었다. 신라 말에 호족이 대두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중앙에서의 극심한 권력 쟁탈전으로 인해 지배 체제가 이완되었다는 것과 그것이 진골 중심 정치 체제에 블만을 품고 있던 6두품 세력에 의해서 더욱 촉진되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최근에는 신라 하대 왕위 쟁탈전의 원인을 진골 귀족의 수가 늘어가면서 나타난 혈족 관념의 분지화에서 찾거나, 원성왕계와 김주원계의 대립과 연관짓는 등 구체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한편 최치원을 대표로 하는 6두품 유학 지식인에 대한 개별 연구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른바 후삼국 시대의 정치사도 궁예ㆍ견훤ㆍ왕건 각 정권을 독립적으로 다룬 연구서가 나왔는가 하면, 호족에 대한 연구도 지역별ㆍ성격별로 다양하게 연구되어 이전보다 한 단계 진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가야사 연구는 사료의 부족과 함께 임나일본부(任那日本部)라는 식민 사학의 영향으로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가장 부진한 부분이었지만, 가야 지역의 고고학 유적 발굴의 성과가 축적되고 가야사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가야사 연구의 특징은 기존의 연구가 가야사의 전반적인 면, 특히 대외 관계를 강조한 데 반해 가아 연맹체를 구성하고 있던 개별 소국에 대한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발해사는 한국사 속에서 자리 매김되어야 한다는 당위적인 측면이 강조되면서도 엉성한 사료라든가 고고학적 자료 원용의 어려움으로 인해 가야사 못지 않게 한국 고대사에서 소외되어 있었는데, 이제 이러한 측면은 상당 부분 극복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발해 정치사, 대외 관계, 지배 세력에 대한 단행본이 연이어 출간되었고, 1998년에는 발해 건국 130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 학술 대회가 열려 발해사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도모하여 그 결과가 단행본으로까지 출간되었다. 최근 발해사 연구 동향의 특징은 기존에 활발했던 발해사의 귀속 문제에 대한 것이 줄어들고, 발해의 사회 구조라든가 지방 통치 등으로 연구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지배 세력의 실체라든가 대외 관계에 대해서도 기존의 연구를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양적ㆍ질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출전 : [고등학교 국사 교사용 지도서], 교육인적자원부, 2002, p.8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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