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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5-10 (토) 18:56
분 류 사전2
ㆍ조회: 1855      
[신라] 육두품 (브리)
6두품 六頭品

신라시대 신분제인 골품제의 한 등급. 득난(得難)이라고도 한다.

골품제는 성골(聖骨)·진골(眞骨)의 골제(骨制)와 1~6두품의 두품제로 구분되는데, 6두품은 두품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다. 진골신분과 함께 신라 중앙귀족의 한 부분을 이루었다. 6두품은 법제적으로 신라 17관등 중 제6관등인 아찬(阿飡)까지만 올라갈 수 있어서, 제5관등인 대아찬(大阿飡) 이상의 직위에는 취임할 수 없었다.

이같은 제약에 대한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제6관등인 아찬 위에 중아찬(重阿飡)에서 사중아찬(四重阿飡)까지의 중위제(重位制)를 두기도 했으나, 그 실효성은 확실하지 않다. 관직에서도 중앙관서의 장관직을 진골이 독점하여, 6두품은 시랑(侍郞)이나 경(卿)과 같은 차관직(次官職)만 차지할 수 있었다.

그들이 차지할 수 있었던 관등인 아찬에서 급찬(級飡)까지는 비색(緋色)의 관복을 입었다. 그리고 의복·그릇·수레·가옥 등의 모든 면에서 진골보다 더 많은 제약을 받았다. 정치적 진출에 제약을 받은 6두품은 상대적으로 학문과 종교 부문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으며, 신라 중앙관서의 실무행정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설총(薛聰)·강수(强首)·최치원(崔致遠)과 같은 학자뿐만 아니라 원광(圓光)·원효(元曉) 및 신라 하대 낭혜화상(郎慧和尙)과 같은 유명한 승려들도 다수 배출했다.

그러나 신라 하대에 진골귀족간의 왕위쟁탈전이 치열해지고 중앙과 지방의 정치적 혼란이 극심해짐에 따라, 6두품은 골품제에 대한 모순을 비판하고 반(反)신라적 입장을 취하거나 세속을 피해 은둔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건국되면서 6두품 출신의 인물들은 대거 고려정부에 진출했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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