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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1-07 (목) 07:44
분 류 사전2
ㆍ조회: 1862      
[조선] 민진원의 졸기 (영조실록)
《 영조 042 12/11/28(정사) / 봉조하 민진원의 졸기 》

봉조하 민진원(閔鎭遠)이 졸(卒)하였다.

임금이 몹시 슬퍼하면서 하유하기를, “민 봉조하는 휴척(休戚)을 함께 하는 신하로서, 고집하는 것은 막힌 점이 있으나 나라를 위하는 단심(丹心)은 변함이 없었으니, 내가 전후에 간격없이 대우했던 것은 그것 때문인 것이다. 몇 년 간 고심(苦心)하면서 조정하려 애썼던 두 봉조하의 뜻이 깊었었다.

아! 성후(聖后)의 동기로는 오직 이 사람이 있었을 뿐인데, 작년에 부부인(府夫人)이 입궐했을 적에 함께 자위(慈 )를 모셨었다. 그 자리에서 그가 노쇠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 가인(家人)처럼 자상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었는데, 어찌 갑자기 졸서(卒逝)할 줄 생각이나 했겠는가? 녹봉(祿俸)은 3년 동안 그대로 지급하고, 시호(諡號)를 내리고 예장(禮葬)하는 것을 모두 준례대로 하도록 하라.” 하였다.

【사신은 말한다. “민진원은 성품이 집요(執拗)한데다가 당(黨)에 대한 병통이 가장 고질이었다. 그러나 벼슬에 있으면서 청렴하고 검소한 것으로 일컬어졌다. 효장 세자(孝章世子)가 홍서(薨逝)했을 적에 원임 대신(原任大臣)으로 입대(入對)하여 송 인종(宋仁宗) 때의 고사(故事)처럼 종신(宗臣)을 간택하여 양육할 것을 청하였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말하기 어려운 것을 말하였다고 했었다.”】

신이 삼가 살펴보건대, 민진원은 폐부(肺腑)처럼 가까운 친척으로 시례(詩禮)의 교훈을 받았으며, 조정에 벼슬하여서는 유독 풍재(風裁)를 지켰으므로 명망이 일시에 무거웠었습니다. 신축년·임인년에 화환(禍患)이 일어났을 적엔 멀리 귀양갔었는데, 을사년에 제일 먼저 정승에 임명되자, 수차(袖箚)를 올려 경종(景宗)에게 병환이 있었다는 것을 중외에 반시(頒示)하여 저사(儲嗣)를 세운 의리를 밝힐 것을 청하였다가, 한쪽 사람들에게 크게 공척(攻斥)받았었습니다.

그래서 정미년 이후에는 마침내 조정에 있는 것을 불안하게 여겨 이광좌(李光佐)와 함께 동시에 치사(致仕)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졸서(卒逝)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신(史臣)이 집요한데다가 당에 대한 병통이 있다고 기록한 것에서도 이광좌의 무리들이 기필코 비난하여 헐뜯으려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전】 42 집 527 면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 *정론-간쟁(諫諍) / *재정-국용(國用) / *역사-사학(史學)

출전 : 영조실록 042권 영조 12년 11월 28일 (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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