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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4-05 (목) 07:00
분 류 뒤안길
ㆍ조회: 1795      
[고려] 당 왕실과의 혈연관계를 조작한 고려 왕실
당 왕실과의 혈연 관계를 조작한 고려 왕실

앞의 민담은 [편년통록]에 기록된 왕건 조상에 얽힌 이야기의 대략이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왕건의 아버지는 왕륭(용건), 할아버지는 작제건, 그리고 증조부는 당나라의 숙종이다.

[고려사]의 편자들은 [편년통록]이 왕건을 당 왕실과 연관시키고 있는 것을 공민왕대에 이제현이 쓴 [국사]의 내용을 통해 반박하고 있다.

이제현은 [편년통록]의 민담을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김관의의 말에 의하면 의조(작제건)가 당나라 사람인 자기 아버지가 남긴 활과 화살을 얻어가지고 바다 건너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어야 하는데, 용왕이 그에게 소원을 물었을 떄 그는 동방의 왕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아마도 이것은 의조가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이제현은 작제건의 아내 용녀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성원록]에는 의조의 처 용녀는 평주(황해도 평산) 사람 두은점 각간의 딸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김관의의 기록과는 같지 않다.'

이제현이 여기서 증거로 제시하고 있는 [성원록]은 고려 중엽 이전에 저술된 고려 왕실의 세계에 대한 기록이다. [성원록]의 기록은 김관의의 것보다 먼저 씌어진 것으로, 결국 이제현의 말은 [편년통록]의 기록이 신빙성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또 이제현은 김관의가 언급한 왕건 조상들의 성과 이름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내가 [왕대종족기]를 보니 거기에는 국조의 성은 왕씨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태조대에 와서 비로소 왕씨 성을 삼은 것은 아니다.'

여기서 이제현이 언급하고 있는 [왕대종족기] 역시 [성원록]과 비슷한 시기에 저작된 것으로 고려 왕실의 족보책이다. 이 기록에 국조의 성이 왕씨였다고 했는데, 여기서 '국조'는 왕건의 증조부를 가리킨다. 따라서 [왕대종족기]에 따르면 왕건 집안은 적어도 증조부대에서부터 왕씨 성을 사용했다는 뜻이 된다.

이렇듯 이제현에 의하여 고려 왕실이 당 왕실과 관련되어 있다는 설은 완전히 부정된다. 그러나 고려 왕실은 자신들의 조상이 당나라 숙종이라고 주장했던 모양이다.

[고려사]에는 이에 얽힌 웃지 못할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충선왕이 원나라에 잡혀가 있을 때, 원나라 한림학사 한 사람이 왕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었다.

"듣건데 대왕의 조상은 당나라 숙종 황제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는데, 그것은 어디서 근거한 말입니까? 사실 숙종은 어려서부터 한 번도 대궐 밖을 나간 일이 없고, 안록산의 난이 있었던 떄에는 영무에서 즉위하였으니 어느 틈에 조선에 가서 자식을 둘 수 있겠습니까?"

충선왕이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편년강목]의 저자 민지가 대신 답을 하였다.

"그것은 우리 국사에 잘못 쓰인 것입니다. 사실은 숙종이 아니고 선종이었습니다."

민지가 이처럼 선종이 숙종으로 잘못 기재되었다고 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고려 사람들은 당나라 역사에 밝지 못해 안록산의 난이 숙종대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당시 왕자였던 선종이 피난하여 도망했던 사실은 알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민지는 고려국사에 기록된 당나라 숙종을 선종으로 고쳐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민지가 숙종을 선종으로 고쳐야 한다고 말하자 그 한림학사는 선종은 오랫동안 외방에서 고생을 하였던 만큼 혹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수긍했다.

하지만 고려 왕조의 선조가 선종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제현은 잘못된 이야기라고 논박하고 있다. 즉, 선종이 비록 난리통에 동방으로 왔다는 설이 있기는 하나 그것은 단지 하나의 민담에 불과할 뿐, 실록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제현의 주장대로라면 고려 왕실이 당의 왕족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김관의나 민지는 왜 고려 왕실을 당나라 왕족과 연관시키려 했던 것일까.

김관의나 민지의 주장을 고려 왕실에서도 받아들이고 있었던 사실을 주목해보면 그 의도는 좀더 분명해진다. 고려 왕실은 당 왕실과 자신들을 혈연으로 묶어 우선적으로 고려 왕실의 위신을 새롭게 하고, 다음으로 외교적으로 고려의 입지를 강화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고려 건국 당시의 중국 정세를 살펴보면 907년 당이 멸망하자 후당, 후량, 후진, 후한, 후주 등의 5대와 오, 오월, 남한, 초, 전촉, 민, 형남, 남평, 후촉, 남당, 북한 등 10국이 난립하였다. 이에 따라 중국 백성들은 3백년 동안 태평성대를 이뤘던 당나라를 동경하게 되었다. 중국인들의 당에 대한 그리움은 송, 원대에 가서도 지속되는데, 고려는 중국인의 이 같은 정서를 국내 정세의 안정과 중국 국가들과의 외교에 이용하려 했던 것 같다.

당이 멸망하자 수많은 국가들이 난립했지만, 당의 문화와 전통은 여전히 중국을 지배하고 있었다. 따라서 고려 왕실이 당 왕실과 혈연 관계 있다는 것은 외교적 측면에서 유리하게 이용되었을 것이다. 고려 왕실은 이러한 이점을 계산하고 의도적으로 당 왕실과의 혈연 관계를 조작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김관의의 [편년통록]과 민지의 [편년강목]이 원나라에 세력이 팽창된 이후에 저작된 사실을 고려한다면 고려 왕실과 당 왕실을 혈연적으로 연결시킨 것은 고려 말엽에 와서 이뤄진 일일 가능성이 크다. 원의 팽창으로 송의 입지가 약해지고, 결과적으로 송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고려 왕실의 입지 역시 약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고려 왕실은 왕족의 권위를 세울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했고, 그 결과 당 왕실과의 혈연 관계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고려 중엽 당시에는 이러한 혈연 조작이 여러모로 쓸모있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민왕대 이후 반원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민족주의가 고개를 들었기 때문에 고려는 더 이상 당 왕실과 혈연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오히려 원의 몰락으로 혼란을  거듭하고 있던 중국의 정세를 틈타 고구려의 고토를 회복하자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고려는 당 왕실과의 혈연 조작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고려말의 대학자 이제현이 고려 왕실과 당 왕실의 혈연 조작을 강하게 비판한 것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관의와 민지의 주장에 대한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그들의 기록은 왕건의 조상들에 대한 몇 가지 사실들을 알려주고 있다. 우선 왕건의 조상들은 송악산 아래에 터전을 잡은 호족으로, 증조모 진의의 사생아 작제건이 조부이며, 조모는 용녀라는 것과, 또한 왕건 아버지의 이름이 용건(왕륭)이며, 어머니는 몽녀 한씨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고려사]는 고려 [태조실록]에도 이 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고 쓰고 있다.

왕건이 고려를 세운 후, 왕의 3대 조상들은 왕으로 추존되었는데, 증조부는 원덕대왕, 증조모 진의를 정화왕후라 했고 조부 작제건은 의조 경강대왕, 조모 용녀는 원창왕후에 봉했다. 그리고 아버지 용건은 세조 위무대왕이라 하고, 어머니 몽녀는 위숙왕후에 봉하였다.

그런데 태조가 증조모의 아버지 보육을 국조라고 하면서 원덕대왕에 봉했다는 내용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부계 혈통을 유지하던 관습에 비추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만약 보육이 자신의 딸을 취하여 아내로 삼았다면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당시엔 족내혼이 성행했고 보육 역시 질녀를 아내로 맞이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나치면 딸을 아내로 삼는 경우도 있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추측을 가능케 하는 것은 [태조실록]에서 보육을 국조(증조부)로 하고, 그의 딸이자 증조모인 진의를 국조의 왕후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보육이 증조모 진의의 아버지이자 동시에 남편이었을 때만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의 사회 풍습을 고려해볼 때 이 같은 추론은 사실로 인정되기 힘들다. 오히려 보육의 딸 진의가 사생아를 낳자, 보육이 그 아이를 자신의 아들로 키웠을 가능성이 더 높다.

출전 :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들녘, 1996, pp.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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