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2-31 (수) 17:15
분 류 사전2
ㆍ조회: 1659      
[불교] 불교-불교 개관, 동양의 불교 (두산)
불교 Buddhism 佛敎

세부항목

불교 개관, 동양의 불교
한국 불교

석가모니(釋迦牟尼)를 교조로 삼고 그가 설(說)한 교법(敎法)을 종지(宗旨)로 하는 종교.

I. 개관

불교라는 말은 부처(석가모니)가 설한 교법이라는 뜻과(이런 의미에서 釋敎라고도 한다) 부처가 되기 위한 교법이라는 뜻이 포함된다. 불(佛:불타)이란 각성(覺性)한 사람, 즉 각자(覺者)라는 산스크리트ㆍ팔리어(語)의 보통명사로, 고대 인도에서 널리 쓰이던 말인데 뒤에는 특히 석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불교는 석가 생전에 이미 교단(敎團)이 조직되어 포교가 시작되었으나 이것이 발전하게 된 것은 그가 죽은 후이며, 기원 전후에 인도ㆍ스리랑카 등지로 전파되었고, 다시 동남아시아로, 서역(西域)을 거쳐 중국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왔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교권(敎圈)이 확대되어 세계적 종교로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14세기 이후로는 이슬람교에 밀려 점차 교권을 잠식당하고 오늘날에는 발상지인 인도에서는 세력이 약화되었으나, 아직 스리랑카ㆍ미얀마ㆍ타이ㆍ캄보디아, 티베트에서 몽골에 걸친 지역,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에 많은 신자가 있으며, 그리스도교ㆍ이슬람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이다.

다른 여러 종교와 비교하여 불교가 지니는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신(神)을 내세우지 않는다. 불타가 후에 이상화(理想化)되고 확대되어 절대(絶對)ㆍ무한(無限) 및 그 밖의 성격이 부여되고, 각성과 구제의 근거가 되고 있으나 창조자ㆍ정복자와 같은 자세는 취하지 않는다. ② ‘지혜(智慧)’와 ‘자비(慈悲)’로 대표된다.

③ 자비는 무한이며 무상(無償)의 애정이라 할 수 있어, 증오(憎惡)나 원한을 전혀 가지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일반적으로 광신(狂信)을 배척하고 관용(寬容)인 동시에 일체의 평등을 관철하고자 한다.

④ 지혜의 내용은 여러 가지로 발전하는데, 일체를 종(縱)으로 절단하는 시간적 원리인 ‘무상(無常)’과, 일체를 횡(橫)으로 연결하는 공간적 원리인 ‘연기(緣起)’가 중심에 있어, 이것은 후에 ‘공(空)’으로 표현된다. ⑤ 현실을 직시(直視)하는 경향이 강하다. ⑥ 모든 일에 집착과 구애를 갖지 않는 실천만이 강조되고 있다.

⑦ 조용하고 편안하며 흔들리지 않는 각성(覺性:解脫)을 이상의 경지(境地)로 삼아 이를 ‘열반(涅槃)’이라 한다.

그 교의(敎義)는 석가의 정각(正覺)에 기초를 둔다. 그러나 8만 4000의 법문(法門)이라 일컫듯이 오랜 역사 동안에 교의의 내용은 여러 형태로 갈라져 매우 복잡한 다양성을 띠게 되었다. 불(佛)도 본래는 석가 자체를 가리켰으나 그의 입적(入寂) 후 불신(佛身)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 2신(身)ㆍ3신 등의 논, 또는 과거불ㆍ미래불, 또는 타방세계(他方世界)의 불, 보살(菩薩) 등의 설이 나와 다신교적(多神敎的)으로 되었다.

ll. 인도

1. 원시불교

창시기(創始期)의 불교를 말하며, 경전들은 석가의 생애 중의 가르침을 스승이 죽은 후에 제자들이 수집ㆍ정리한 것이지만, 그 중에서 석가가 직접 설한 교법을 판별하기는 곤란하다. 교단도 이미 발족되어 석가 입적 후 약 100년 동안은 완전한 통일이 유지되었다.

불(佛)ㆍ법(法)ㆍ승(僧)의 3보(寶)는 불교를 구성하는 기본요소인데, 승(僧:敎團)은 출가신자(出家信者)인 비구ㆍ비구니와 재가신자(在家信者)인 우바새(優婆塞)ㆍ우바이(優婆夷)로 이루어져 계율(戒律)로 규제되며 부처를 중심으로 모여 그 법을 실천한다.

이 재가신자는 단가제도(檀家制度)에서의 신자와는 달리 3보에의 귀의(歸依)를 서약할 뿐 아무런 속박도 없으며 그 대신 출가신자에 대한 의식(衣食)의 재정적 지원을 맡았다. 석가는 태자(太子) 시절의 물질적으로 풍족하던 생활에서도, 출가 후의 고행(苦行)에서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고뇌하였으나, 그 두 극단의 고뇌를 버림으로써 중도(中道)를 깨닫고 불타가 될 수 있었다.

중도란 일체 편견(偏見)에 구애되지 않는 자세이며, 올바른 견해ㆍ결심ㆍ언어ㆍ행위ㆍ생활ㆍ노력ㆍ사념(思念)ㆍ명상(瞑想)의 팔정도(八正道)를 말한다. 5온(蘊)의 일체는 고(苦:苦諦), 그 고의 기원(起原:集諦), 고의 초극(超克:滅諦), 초극에 이르는 길, 즉 도제(道諦)라는 4개의 진리(四諦)에 의하여 뒷받침되는 것이 팔정도이지만, 그 중 도제의 내용이야말로 팔정도 바로 그것이며 그 실천에 의해서만 중도가 얻어진다.

‘일체는 고이다(一切皆苦)’라는 말에서 생각해 보아도 5온의 이합(離合)은 항상 변천(變遷)하는 것이며(諸行無常), 존재하는 것에는 상일(常一) 주재(主宰)하는 입장은 없는 것으로(諸法無我), 전변(轉變) 무상한 세계에서 상(常)을 구하기 때문에 고가 생기는데, 팔정도의 실천에서 각성이 열리고 열반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도 설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원시불교의 사상이다.

2. 부파불교

불멸(佛滅) 후 100년까지 교단은 착실하게 확대ㆍ발전을 이루어, BC 3세기에는 마우리아왕조의 아소카왕[阿育王]이 귀의하여 불교는 거의 인도 전체에 퍼져 교세는 비약적으로 커졌다. 그러나 교단의 확대에 따라 내부에 의견의 대립이 나타나 불멸 후 100년이 지난 무렵부터 교단은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와 혁신적인 대중부(大衆部)의 두 집단으로 분열되었다.

또한 불멸 후 200년 무렵에는 대중부 속에서 재분열이 일어나, 먼저 일설부(一說部)ㆍ설출세부(說出世部)ㆍ계윤부(鷄胤部)로 갈리고, 이어서 다문부(多聞部)ㆍ설가부(說假部)가, 또 제다산부(制多山部)ㆍ서산주부(西山住部)ㆍ북산주부(北山住部) 등으로 분파되었다.

한편 상좌부도 불멸 후 300년 무렵부터 분열이 시작되어 먼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ㆍ설산부(雪山部)로 갈리고, 설일체유부에서 독자부(犢子部)가, 독자부에서 법상부(法上部)ㆍ현주부(賢胄部)ㆍ정량부(正量部)ㆍ밀림산부(密林山部)가 분출(分出)되고, 또 설일체유부에서 화지부(化地部)가, 화지부에서 법장부(法藏部)가, 다시 설일체유부에서 음광부(飮光部)가, 이어서 경량부(經量部)가 분출되었다.

이들 20개의 부파는 소승 20부(小乘二十部)라고도 부르며 이들을 총칭하여 부파불교(部派佛敎)라고 한다. 상좌부ㆍ대중부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는 별로 없으나 혁신적인 대중부에는 후일 대승불교(大乘佛敎)로 발전할 기미가 엿보인다.

또한 상좌부 불교는 남방불교로서 오늘에 전한다. 〈대승불교〉 출가신자(승려) 중심인 종래의 불교에 대항하여 기원 전후부터 재가신자를 포함하는 신앙으로의 탈피를 원하는 대승(大乘)의 운동이 인도 각지에서 일어났다.

그 밖에 불탑을 중심으로 모여 불탑에 예배함으로써 불타에 대한 신앙을 높이는 재가신자의 집단인 보살단(菩薩團)이 있어, 이것도 대중운동에 합체하여 초기 대승불교가 성립되었다.

BC 1세기부터 AD 2세기에 걸쳐 《반야경(般若經)》 《법화경(法華經)》 《유마경(維摩經)》 《화엄경(華嚴經)》 《무량수경(無量壽經)》 등의 대승경전이 차례로 성립되어, 이것들은 3세기 전후에 나가르주나(N嚆g嚆rjuna:龍樹)에 의해 이론적 근거가 부여되면서 대승불교의 확립을 보았다.

용수는 《중론(中論)》에서 모든 존재는 연기에 의하여 생기는 것으로 단독으로 존재하는 일은 없으니, 이것을 깨달으면 진공중도(眞空中道)의 정관(正觀)을 얻을 수 있다는 반야공관(般若空觀)을 설하였는데, 이 설에 기초를 둔 학파를 중관파(中觀派)라고 한다. 또 미륵(彌勒)이 시작하고 무착(無着)ㆍ세친(世親) 등이 전개시킨 학파를 유가파(瑜伽派) 또는 유식파(唯識派)라고 한다.

이 학파는 용수의 반야공관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관상(觀想) 등에 의한 수행(修行)인 유가행(瑜伽行), 외계(外界)의 실재한다고 생각되는 것은 다만 심식(心識)의 투영이며, 심식만이 실재한다는 유식설(唯識說), 불성(佛性)은 중생도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것으로 중생 모두가 여래(如來)가 될 수 있다는 여래장연기(如來藏緣起) 등을 설하고 있다.

이 두 학파가 중기 대승불교를 형성하였으며 그 후 세친의 학통을 이은 진나(陳那) 등에 의하여 인명(因明:불교논리학)이 확립되었다. 후기 대승불교에 이르면 인도교 등의 영향을 받아 다라니(陀羅尼)나 진언(眞言)을 중심으로 하는 밀교(密敎)가 주류를 이루어 점차 타락의 길을 걷다가 이슬람교의 인도 침입으로 13세기에 쇠멸하기 시작했다.

대승불교의 근본사상은 모든 존재에 실체(實體)ㆍ아(我)와 같은 것은 없다고 하는 ‘공(空)’의 사상이다. 또 보살(각성을 구하는 사람)의 실천윤리덕목으로서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지혜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내세우는데, 그 첫째가 보시로 되어 있어 이타행위(利他行爲)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대승불교는 주로 북쪽으로 퍼져 중국과 한국ㆍ일본 등에 전해졌다.

lll. 남방

스리랑카ㆍ미얀마ㆍ타이 등 동남아시아에 전파된 불교를 남방불교라 한다. 이 지역으로 불교를 전파하는 기지가 된 곳은 스리랑카이며 BC 3세기 중엽, 아소카왕의 왕자 마힌다(Mahinda)가 파견되어 상좌부 불교를 전한 것이 효시가 된다. 이 불교는 팔리어(語) 경전을 믿기 때문에 팔리불교라고도 한다.

5세기에는 불음(佛音)이 인도로부터 건너와 팔리어 경전의 주석(注釋)을 집대성함으로써 상좌부 불교의 기초가 굳어지고 활기를 띠게 되었다. 미얀마와 타이에는 이 스리랑카의 상좌부 불교가 전해졌다. 5세기에 미얀마로 건너간 상좌부 불교는 그 후 밀교[大乘]로 바뀌었다가 11세기 파간조(朝)의 전(全)국토통일과 함께 재흥되었고, 후에 본가인 스리랑카불교가 쇠퇴하자 상좌부 불교가 스리랑카로 역수입되었다.

한편 타이에는 8세기 무렵에 밀교가 전해져 번창하다가 후에 미얀마로부터 상좌부 불교가 진출하였고, 13세기 말에는 스리랑카의 상좌부 불교가 전해져, 그 후 왕조의 보호 밑에 발전하여 지금은 이 지역 제1의 불교국이 되었다. 자바에는 8세기경 인도로부터 밀교가 전해져 번창하였으나 후에 이슬람권으로 바뀌었다.

캄보디아ㆍ라오스는 13세기 말부터 타이족의 침입으로 상좌부 불교가 전해져 오늘에 이른다. 인도차이나반도의 또 하나의 지역인 베트남은 옛날부터 중국과의 교섭으로 6∼7세기경 대승불교가 전해져 선종(禪宗)을 중심으로 번영하였다.

lV. 티베트 및 몽골

티베트ㆍ몽골의 불교는 라마교라고도 한다. 티베트에는 일찍이 네팔 등의 불교가 들어온 것으로 생각되는데 토속적 샤머니즘인 분교(훑敎)가 성행하여 교세를 넓히지 못하였다. 6∼7세기 인도에서 공식적으로 불교가 들어왔고, 8세기경에는 다시 인도로부터 밀교와 중관계(中觀系) 대승불교가 전해졌고, 경전의 티베트어 번역도 진척되면서 불교는 널리 전파되었다.

10세기에 한때 쇠퇴하였으나 11세기에 다시 일어나 밀교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15세기 초 종객파(宗喀巴)가 나와 종풍(宗風)을 쇄신, 교세를 크게 높였으며, 이후 그 법계(法系)는 대대로 다라이라마(‘큰 라마’라는 뜻)가 되어 종교와 정치의 실권을 잡았다. 한편 몽골에는 13세기 파스파(’Pags-pa:八思巴)가 티베트불교를 원(元)나라 조정으로 전해왔고, 그 후 각지로 퍼져 청(淸)나라 때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V. 중국

처음 불교가 전해진 연대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체로 1세기 중엽 한(漢)나라 때 서역(西域:티베트)지방을 경유하여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서역지방은 옛날부터 인도와 중국을 연결하는 요로에 있어 양쪽 문화의 접촉장소가 되어왔으므로 인도의 불교가 재빨리 서역에 전해지고 다시 중국으로 전래되었다.

서역지방에도 독특한 불교문화가 개화하였는데, 그 서역불교의 발자취는 둔황[敦煌]을 비롯한 여러 곳의 유적에서 엿볼 수 있다. 초전기(初傳期)에서 4세기까지를 중국불교의 제1기라 할 수 있으며, 이 시대에는 서역방면으로부터의 내입승(來入僧)의 활약이 눈에 띈다.

즉 안세고(安世高)ㆍ지루가참(支婁迦懺)ㆍ축법호(竺法護)ㆍ불도징(佛圖澄) 등이며 그들은 대승ㆍ소승의 경전을 번역하여 불교에 대한 중국인의 이해를 넓히는 데 노력하였다. 중국인 불도(佛徒)로 주사행(朱士行)ㆍ도안(道安)ㆍ혜원(慧遠) 등이 나왔고, 특히 도안ㆍ혜원 등은 학문적이고 이론적이었던 불교를 실천으로써 이해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불교가 무조건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며 고래의 사상과의 유사점 때문에 받아들여지는 일도 있었다. 불타가 황제(黃帝)ㆍ노자(老子)와 나란히 제향되는 예가 그것이며, 4세기 무렵부터는 불교의 ‘공(空)’을 노자의 ‘무(無)’로 해석하려는 격의불교(格義佛敎)도 생겨났다.

401년 구마라습[鳩摩羅什]이 장안(長安)에 들어와 대승경전의 번역을 시작한 때부터 중국불교는 제2기에 들어선다. 구마라습은 여러 경전의 뛰어난 한역(漢譯)을 행하여, 그 한문경전에 의한 불교 본래의 교리연구가 진행되었고, 중국인의 불교에 대한 이해도 넓어져, 이후 중국불교의 사상적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 그 문하생은 3,000여 명이라 하며 그 계통은 일대 교세를 이루고 제2기 불교의 중심세력이 되었다. 구마라습 외에도 각현(覺賢) 담무참(曇無讖)ㆍ보리류지[菩提流支]ㆍ진제(眞諦) 등이 도래하여 경전의 한역을 행하고, 그 경전 연구에 따라 삼론(三論)ㆍ사론(四論)ㆍ성실(成實)ㆍ법화(法華) 등 많은 학파가 발생하였다.

또 우발적으로 전래된 여러 경전을 본래의 역사적 발전의 순서로 정리하고 체계를 세우기 위한 교판(敎判:敎相判釋)도 성행하게 되어 교학연구는 더욱 진전하였다. 수(隋)ㆍ당(唐)시대에는 전대의 교학연구를 기초로 소의(所依)의 경론(經論)에 의한 종파가 확립되어 국민의 올바른 이해와 실천에 입각한 불교의 성립을 보았으며, 이 시대는 중국불교의 황금시대가 되었다.

수나라 때는 우선 지의(智勞)가 《법화경》에 의하여 천태종(天台宗)을 개종(開宗)하고, 이어서 길장(吉藏)은 용수의 삼론(三論)에 의한 삼론종(三論宗)을 확립시켰다. 당대(唐代)에는 화엄종ㆍ선종(禪宗)ㆍ정토종(淨土宗)ㆍ법상종(法相宗)ㆍ율종(律宗)ㆍ밀교의 각 파가 성립하였다.

화엄종은 《화엄경》 소의(所依)의 종파로 법장(法藏)이 그 교학의 대성자이며, 선종은 이전부터 달마(達磨)에 의하여 전해져 오다가 5조(祖) 홍인(弘忍)에 이르러 크게 발전하였고, 다시 그 제자인 혜능(慧能)과 신수(神秀)에 의하여 남종ㆍ북종의 2대 분파가 생겼다.

특히 남종파는 임제(臨濟)ㆍ위앙(셌仰)ㆍ조동(曹洞)ㆍ운문(雲門)ㆍ법안(法眼)과 임제에서 분파된 양기(楊岐)ㆍ황룡(黃龍) 등 이른바 5가(家) 7종(宗)이 나와 크게 번영하였다. 정토종은 담란(曇鸞)ㆍ도작(道綽)ㆍ선도(善導) 등에 의하여 확립되었는데, 부처의 명호(名號)를 외우며 오로지 아미타불에 귀의하라는 간단한 교의(敎義)로써 민중 사이에 널리 퍼졌다.

법상종은 현장(玄奘)이 인도에서 가져온 유식론(唯識論) 관계의 경전을 기초로 그의 제자 규기(窺基)가 개종하였고, 율종에서는 도선(道宣)의 계통, 즉 남산종(南山宗)이 번창하였다. 밀교도 선무외(善無畏)ㆍ금강지(金剛智)ㆍ불공(不空) 등에 의하여 인도에서 전래되었다.

수ㆍ당의 황금기를 지난 중국불교는 그 후 쇠퇴하기 시작하여 몇 차례의 파불(破佛)을 겪고 또 명(明)나라 때는 중앙에서 통제가 가해지는 등, 활발한 불교활동은 차차 자취를 감추고 다만 선종과 정토종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의 중국 본토에서는 불교활동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Vl. 일본

일본의 불교는 538년 백제 성왕(聖王) 때 도장(道藏)이 불상과 경전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성실종(成實宗)의 개조가 된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백제는 일본과의 접촉이 빈번하여 관륵(觀勒)은 역법(曆法)ㆍ천문ㆍ지리ㆍ술수(術數) 등을 일본에 전하였고, 혜총(惠聰)ㆍ도림(道琳)ㆍ담혜(曇慧)ㆍ혜미(慧彌) 등 많은 고승이 일본에 건너가 불교와 문화에 크게 공헌하였다.

일본에 전해진 불교는 여러 호족(豪族)들의 지지를 얻어 마침내는 쇼토쿠 태자[聖德太子]가 불교장려책을 쓰게 됨으로써 공식적인 지위를 굳혔다. 나라[奈良] 시대에는 불교가 국가와의 연관을 더욱 굳혀 고쿠분사[國分寺]의 제도도 이 무렵의 산물이다.

이 시대는 중국불교가 황금시대를 이룬 때였으므로 그들의 여러 종지(宗旨)가 차례로 건너와 삼론(三論)ㆍ법상ㆍ성실ㆍ구사(俱舍)ㆍ율ㆍ화엄 등 이른바 남부6종(宗)이 성립하였다. 헤이안[平安] 시대에 이르러 불교는 천태(天台)ㆍ진언(眞言)의 2종이 중심이 되어 전개된다.

천태종의 사이초[最澄], 진언종의 구카이[空海] 등은 모두 입당(入唐)하여 새로운 불법을 구한 개조들이다. 남부6종은 이들 2개 종파의 발전에 따라 점차로 그 세력을 잃게 되었고, 특히 사이초가 대승계단(大乘戒壇)을 개설하고 그가 죽자 이것이 국가의 공인을 얻음으로써 남부6종의 몰락은 결정적으로 되었다.

또 헤이안불교는 귀족들의 열성적인 귀의와 보호를 받아 귀족불교라 일컬어졌는데, 귀족들은 조정의 본을 떠 조사(造寺)ㆍ조탑(造塔)에 힘쓰는 한편 기도(祈禱)와 법회를 자주 열어 그 권세를 자랑하였다.

한편 이렇게 귀족들과 깊은 관련을 갖게 된 승려들은 세속적 권위와 결탁하게 되었고, 절은 귀족으로부터 기부받은 토지를 지키기 위하여 승병(僧兵)을 두게 됨으로써 많은 폐단을 낳게 되는 근원이 되었다. 일본불교가 민중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가마쿠라[鎌倉] 시대이다.

말법사상(末法思想)을 배경으로 일어난 정토종이,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는 일만이 정토왕생(淨土往生)의 정정업(正定業)이라고 설하면서 급속히 교세를 넓히다가 기성종파의 반감을 사고 박해를 받게 되었다.

정토종을 확립한 겐쿠[源空:法然]의 문하에는 많은 인재가 모여 여러 종파로 분립되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것은 정토진종(淨土眞宗)을 개설한 신란[親鸞]이다. 그도 스승과 마찬가지로 유형에 처해졌으나 그는 유형지에서 저술과 포교에 주력하였다.

한편 에이사이[榮西]ㆍ도겐[道元] 등에 의하여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선종(禪宗)은 계율에 엄격한 수양의 교법으로서 무사계급과 결부되어 발전하였다. 가마쿠라불교의 최후를 장식한 것은 니치렌종[日蓮宗]이다. 니치렌은 처음 진언밀교(眞言密敎)를 배우고 이어 천태(天台)를 배워 《법화경》의 진리를 깨닫고 니치렌종을 개종하였다.

이 종파는 천태 이외의 종파를 부정하는 도전적인 언동 때문에 자주 법난(法難)을 받았다. 그러나 후에 민중들 사이에 교세가 확장되어 지금은 진종(眞宗)과 나란히 대종파를 이루고 있다. 무로마치[室町] 시대 이후 불교는 점차 쇠퇴하다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천하를 통일하자 완전히 교세가 꺾였으며, 에도[江戶] 시대에는 정권의 도구로 타락하였다.

이렇게 침체ㆍ부패한 불교에 대하여 비난ㆍ배척의 운동도 자주 일어났으나,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뜻있는 불제자들에 의하여 혁신의 기운도 높아지고 여러 종파의 부흥운동도 추진되어 근대적 종교로서의 불교발전이 이룩되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윗글 [근대] 동도서기론 (민족)
아래글 [근대] 7. 민족 운동의 이해 (지도서)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630 사전2 [고려/조선] 중추원 (브리) 이창호 2003-06-04 1733
629 사전2 [종교] 천도교 (브리) 이창호 2003-05-23 1733
628 사전2 [조선] 순종 (브리) 이창호 2003-06-30 1718
627 사전2 [조선] 조미수호통상조약 (한메) 이창호 2008-04-14 1691
626 사전2 [현대] 한국의 현대사회 개관 (한메) 이창호 2003-03-14 1686
625 사전2 [조선] 박규수 (브리) 이창호 2003-04-18 1666
624 사전2 [근대] 동도서기론 (민족) 이창호 2003-04-15 1665
623 사전2 [불교] 불교-불교 개관, 동양의 불교 (두산) 이창호 2003-12-31 1659
622 시대 [근대] 7. 민족 운동의 이해 (지도서) 이창호 2001-06-20 1653
621 사전2 [한국] 한국사의 시대구분 (한메) 이창호 2003-03-12 1620
1,,,11121314151617181920,,,8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