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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8-04-14 (월) 16:53
분 류 사전2
ㆍ조회: 1779      
[조선] 조선책략 (브리)
조선책략 朝鮮策略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비하기 위한 조선ㆍ일본ㆍ청 등 동양 3국의 외교정책에 대해 서술한 책.

1책. 1880년경 일본 주재 청국공사관 참찬관(參贊官)인 황쭌셴[黃遵憲]이 지은 것으로, 원래의 제목은 〈사의조선책략 私擬朝鮮策略〉이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러시아를 방어하기 위한 조선의 외교정책에 대한 서술이다. 황쭌셴은 세계정세를 논하면서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경계하고, 조선이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친중국(親中國)하고 결일본(結日本)하며 연미국(聯美國)하여 자체의 자강을 도모해야 러시아의 침입을 방어할 수 있다고 했다.

친중국의 이유는 중국이 물질이나 형세에서 러시아를 능가하고, 조선은 중국의 번속국(藩屬國)으로 1,000년이라는 세월을 지내왔기 때문에 금일에도 더욱 우호를 증대하여 러시아를 공동으로 방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조선이 중국 이외에 수호한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에 서로 결합해야 하며, 미국은 독립정신이 남아 있는 민주국가로서 약소국을 돕고 서양의 침략적인 악행을 막아주고 있으니 비록 조선과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 연합하면 화를 면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이나 일본도 선진국 세력에 적대하고서는 국가의 안위가 위태롭기 때문에 개국한 것이므로, 조선의 쇄국정책도 끝까지 고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대외세력의 방어에 자신이 없으면 개국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ㆍ일본ㆍ미국과의 연합이 이루어지면, 곧바로 중국과 일본에 학생을 파견하여 병기제조ㆍ군대편성ㆍ외국어교육과 천문ㆍ화학 등 서구의 여러 학문을 습득하게 하는 한편, 부산 등지에 학교를 세워 서구의 기술을 교육하고 무기를 구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은 친중국ㆍ결일본ㆍ연미국의 외교정책은 서구의 침략으로부터 무사할 때에 공평한 조약을 맺게 해주며, 통상에도 이익을 가져다주고, 국가 부의 축적 및 군비강화에도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므로, 결국 조선이 자강하는 기초가 될 것이라고 했다.

1880년(고종 17) 제2차 수신사로 일본에 갔던 김홍집(金弘集)이 청국 공관을 왕래하면서 외교정책에 관해 황쭌셴과 의견을 교환하고, 귀국하는 길에 이 책을 얻어와 고종에게 바쳤다. 이에 대하여 조선정부에서는 찬반 논의가 격렬하게 전개되었고, 특히 위정척사론을 기반으로 하는 유생들은 이듬해 영남유생 이만손(李晩孫) 등이 주동이 되어 〈영남만인소 嶺南萬人疏〉를 올려 김홍집 일파를 탄핵했다. 여기에서 이만손 등은 〈조선책략〉이 패륜망덕한 불온문서라고 단정하고 그 8대불가론(八大不可論)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책은 당시 외교정책에 대해 무지하던 조선정부의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주어 1880년대 정부가 주도적으로 서구문물을 수용하는 개화정책을 활발하게 시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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