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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4-19 (토) 19:25
분 류 사전2
ㆍ조회: 1497      
[조선] 시전 (민족)
시전(市廛)

옛날 전통 사회의 성읍(城邑)이나 도시에 있던 상설 점포. ‘전(廛)’이라고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성읍·부족국가 시대를 거쳐 고대국가가 성립되면서부터였다.

왕이나 지방관이 주재하던 곳에서 생겨난 도시들은 정치·사회·경제 등 모든 면에서 국가의 중심지가 되었다. 따라서 도시에 기반을 둔 도시 상업 기관들도 도시의 발달과 함께 성장, 발전해갔던 것이다.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고구려는 수도인 평양성(平壤城)을 비롯해 국내성(國內城)과 한성(漢城) 등 이른바 3경 제도(三京制度)를 가지고 있었다. 백제 역시 각 지방에 도시가 발달했으므로, 이로 미루어보아 확실한 기록은 없으나 이곳에 일정한 상업 기관들이 존재했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백제에는 외관 10부(外官十部) 중 도시부(都市部)라는 관청이 있었다. 여기서는 각 도시의 행정을 관장하는 한편, 시장의 설치 및 폐지 문제, 상품 판매 규정, 가격 조절, 시장 질서 유지, 상인들 사이의 분쟁 해결, 부정 거래 단속 등을 맡아보았다. 그러므로 백제의 도시에 상업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한편, 신라에서도 통일을 이루기 전부터 수도 경주를 중심으로 도시 상업이 발달하였다. ≪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 제3 소지왕조에는 “소지왕 12년(490) 처음으로 서울에 ‘저자〔市〕’를 열어 각 지방의 상품을 유통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서 저자란 상설적인 시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된다.

5세기 말엽에 설치된 경주 시내의 시전은 6세기 초엽에 들어서면서 설치 범위가 확대되어 509년(지증왕 10)에 동시(東市)가 설치되었고, 삼국통일 후 695년(효소왕 4)에는 서시(西市) 및 남시(南市) 등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동시·서시·남시에는 각각 시전(市典)이라는 기관을 두어 시전(市廛)들을 감독·관리하게 했는데, 주로 상인의 감독, 물가 조절, 도량형 감독, 상인들 사이의 분쟁 해결, 정부 수요품 조달 등의 업무를 관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는 초기부터 시전의 건설이 본격화되었고, 개성의 도시 건설 사업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였다. 개성 시내의 시전 건설은 대부분 관부(官府)에 의해 추진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919년(태조 2) 개성에 수도를 정하고 수도로서 갖추어야 할 여러 시설을 마련할 때, 시전 건물도 함께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때 만들어진 시전 건물의 규모나 위치에 관해서는 기록이 별로 없다. 그러나 13세기경에 이르러 시전 상업이 점차 발달함에 따라 건국 초에 세워졌던 건물들도 다시 확대 건축되었다.

1208년(희종 4)에는 대시(大市)를 개축하였다. 이는 개성의 광화문(廣化門)에서 십자가(十字街)에 이르는 길의 좌우변에 1,008개의 기둥이 있는 연립 장랑(連立長廊)이었다. 고려 조정에서는 도내(都內) 중심부에 길게 건물을 짓고 그것을 일정한 넓이로 칸을 나눈 다음 상인들에게 빌려주어 장사를 하게 하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개성 시민들의 생활 필수품이나 관부의 수요품을 조달하게 하였다.

상인들은 시전 건물을 빌려쓰는 대신 정부에 일정한 액수의 세금을 냈다. ≪고려도경 高麗圖經≫에 의하면, 시전 건물의 높은 부분에 ‘영통(永通)’·‘광덕(廣德)’·‘통상(通商)’ 등의 상호(商號)를 적은 간판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시전의 보호, 감독 기관으로는 경시서(京市署)가 있어 물가 조절과 시정 감독을 담당하였다. 특히 상행위의 감독 뿐만 아니라 상품의 종류에 대해서도 통제를 가해, 관에서 허락한 물품 이외에는 임의로 자유매매를 할 수 없도록 하였다.

[조선시대]

(1) 시전 건설

조선시대에는 건국 초부터 관부가 중심이 되어 다른 여러가지 수도 건설 사업과 함께 시전 건설 계획을 세워 이를 실행에 옮겼다. 간선도로 양측에 막대한 국비와 노동력을 동원해 상설 점포를 짓고, 여기에 상인들을 불러모아 관부 및 일반 시민들의 경제적 수요를 충당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계획이 처음 세워진 것은 1399년(정종 1)이었다. 이 때의 시전 건설 계획은 종로(鐘路)를 중심으로 혜정교(惠政橋)로부터 창덕궁 입구에 이르는 길 양편에 행랑 시전(行廊市廛) 800여 칸을 짓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1차 왕자의 난과 송도 천도 등의 정치적 분규로 인해 이 계획은 실행되지 못하였다.

시전 건설은 한양에 천도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즉, 1410년(태종 10) 2월 먼저 시전의 지역적 경계를 정해, 대시는 장통방(長通坊 : 현재 중구 남대문로 1가), 미곡과 잡물은 동부 연화동(蓮花洞) 입구·남부 훈도동(薰陶洞 : 현재 충무로 2가에서 을지로 2가 일대)·서부 혜정교·북부 안국방(安國坊 : 현재 종로구 화동)·중부 광통교(廣通橋 : 중구 다동에서 을지로 1가 일대), 소와 말 등은 장통방 하천 변에서 각각 매매하도록 하였다.

감독 기관으로서는 경시감(京市監)을 설치해 시내 상업 교역에 관한 물가 조절, 상세(商稅) 징수 등을 주관하게 하고, 별도로 청제감(淸齊監)을 설치해 시가의 청결을 감독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계획에 따라 1412년 2월부터는 시전의 건축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공사는 전후 네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제1차는 그 해 2월부터 4월까지로 혜정교부터 창덕궁 입구에 이르는 양편 길에 800여 칸의 행랑이 완성되었다. 5월부터의 제2차 공사에서는 대궐문에서 정선방(貞善坊 : 현재 종로구 권농동 일대) 동구에까지 420여 칸의 행랑이 건조되었다.

제3차는 7월부터 다음 해인 1413년 5월까지로, 종루(鐘樓)로부터 서북쪽으로 경복궁까지와, 창덕궁으로부터 종묘 앞 누문까지, 그리고 숭례문 부근 등에 총 1,360여 칸이 완성되었다. 1414년 7월의 제4차 공사에서는 종루에서부터 남대문까지와 종묘에서부터 동대문까지의 길 양쪽에 시전 건물이 조성되었다.

정부는 새로 지은 시전 건물을 자신들이 지정한 상인들에게 빌려주고, 그 대가로 공랑세(公廊稅 : 국가에서 지은 상가인 공랑을 상인들에게 빌려주고 그 대가로 받는 세금)를 받았다. ≪경국대전≫에는 시전 상인들이 건물 1칸마다 봄·가을에 각각 저화(楮貨) 20장씩을 납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세금이 나중에는 상행위에 대한 과세를 넘어 국역(國役) 부담으로 변화하면서 어용 상전(御用商廛)인 ‘육의전(六矣廛)’이 발생하게 되었다.

(2) 시전의 기능과 특전

조선시대의 시전이 가지는 주요한 기능은 도내 주민들의 일상 생활용품 공급과 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수요품의 조달 등이었다. 그 밖에 정부가 백성들로부터 받은 공물 중 사용하고 남은 것이나, 중국에서 사신이 가지고 오는 물건 중 일부를 불하받아 시민들에게 판매하는 일도 겸하였다.

시전 상인들은 같은 상품을 판매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일정한 동업자 조합을 이루어 자신들의 상권을 보호하였다. 각 조합에는 대행수(大行首)·도영위(都領位)·부영위(副領位)·차지영위(次知領位)·실무직원인 실임(實任)·의임(矣任)·서기(書記) 등의 임원이 있었다. 그리고 조합원의 자격과 가입 조건은 매우 엄격했고, 특히 혈연 관계를 중요시하였다.

한편, 시전들은 정부로부터 조합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상인들이 자신들과 같은 상품을 판매할 수 없도록 하는 일종의 특권을 부여받았는데, 17세기 초엽에 이것이 ‘금난전권(禁亂廛權)’이라는 강력한 특권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일종의 전매특권은 재정의 궁핍을 느끼게 된 조정과, 점차 늘어나는 사상인(私商人)인 난전(亂廛) 상인들로부터 자신들의 상권을 지키기 위해 조정의 권력을 이용하려는 시전 상인들의 요구가 서로 부합하면서 비롯된 것이었다.

원래 금난전권은 육의전에 대해서만 부여했으나, 나중에는 일반 시전에까지 확대되어 자유로운 상공업의 발전을 저해하였다. 그러나 18세기 후반기에 들어서 민간 상공업이 발전으로 통공발매정책(通共發賣政策)이 시행됨에 따라 시전의 특권은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개항 이후부터 비롯된 외국 상품의 유입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촉진시켰다. 그 결과 봉건적 경제체제 아래에서만 존재가 가능하던 조선시대의 특권 시전들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어 몰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高麗史, 高麗圖經, 朝鮮王朝實錄, 經國大典, 萬機要覽, 增補文獻備考, 韓國商業의 歷史(姜萬吉, 世宗大王記念事業會, 1975), 韓國近代經濟史硏究(劉元東, 一志社, 1977), 朝鮮時代 商人硏究(吳星, 一潮閣, 1989), 李朝時代 서울의 商業槪觀(劉敎聖, 鄕土서울 6, 1959), 朝鮮後期에 있어서의 都市商業의 새로운 展開(金泳鎬, 韓國史硏究 2, 1968), 朝鮮中期의 穀物去來와 그 類型-賣出活動을 中心으로-(崔完基, 韓國史硏究 76, 1992).

<유원동>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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