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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4-05 (목) 06:51
분 류 뒤안길
ㆍ조회: 3548      
[고려] 왕건의 조상들과 그들에 얽힌 설화
왕건의 조상들과 그들에 얽힌 설화

[고려사] 편자들은 김관의(고려 문종 때 문신)의 [편년통록]에 실린 왕건 조상들에 얽힌 민담들을 함께 소개해 놓았다. 편자들은 이 민담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일축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사실적인 부분들이 있는 만큼 분석해 볼 만한 가치는 있다.

[고려사]에 인용된 [편년통록]은 왕건의 조상을 당나라 왕실과 연관시키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엣날에 자칭 성골장군(聖骨將軍)이라고 부르며 백두산으로부터 전국 산천을 유람하고 다니던 호경(虎景)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전국을 떠돌다가 부소산 왼편에 자리잡은 산골마을에서 장가를 들어 그곳에 정착하였다.

그는 체격이 우람하고 기골이 장대하여 활을 잘 쏘았고, 집안도 부유한 편이었다. 아들을 얻지 못해 사냥을 유일한 즐거움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마을 사람 아홉 명과 함께 근처에 있는 평나산에 매를 잡으러 갔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돌아오지 못하고 굴 속에서 잠을 첨하게 됐는데, 그 굴로 호랑이 한 마리가 찾아들어 입구를 막고 울부짓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자신들 중에 한 명의 목숨을 호랑이에게 바치기로 결심하고 각자의 모자를 던지기로 하였다. 호랑이 입으로 들어가는 모자의 주인이 희생양이 되기로 한 것이다.

열 사람이 일제히 모자를 던지자, 호랑이는 호경의 모자를 물었다. 그래서 호경은 약속대로 굴 밖으로 뛰쳐나가 호랑이와 싸울 채비를 하였다. 그런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입구를 막고 있던 호랑이는 호경이 굴을 뛰쳐나가자 곧장 달아나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등 뒤에서 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때서야 호경은 호랑이가 자신들을 잡아먹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굴에서 구출하기 위해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산을 내려온 호경은 평나군청에 가서 굴이 무너져 아홉 명의 사람이 몰사한 사실을 알리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 그들의 장사를 지내주었다. 장사를 지낼 때 산신(산귀신)에게도 제사를 지냈는데, 그때 홀연히 산신이 호경 앞에 나타났다. 산신은 홀로 산을 주관하는 과부인데 다행히 성골장군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면서 부부의 연을 맺을 것을 청하였다. 이렇게 하여 호경은 산신과 부부가 되어 산의 대왕이 되었고 사람들은 더 이상 호경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호경이 산신과 결혼한 것을 안 평나군 사람들은 그를 대왕으로 섬기기 위해 사당을 세우고 아홉 사람이 함께 죽은 그곳 산 이름도 구룡산이라고 고쳤다. 하지만 그 후에도 호경은 옛 처를 잊지 못하여 항상 처의 꿈에 나타나 그녀와 동침하였고, 그러던 중 처가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강충이라 하였다.

강충은 자태가 단정하고 재주가 비상하였다. 그는 (개성의) 서강 영안촌의 부잣집 딸 구치의에게 장가들어 오관산 마가갑에 살았다. 그 즈음 풍수에 능통한 신라의 감간(지방관) 팔원이라는 사람이 부소군을 방문하였다. 팔원은 부소산이 형세는 좋지만 나무가 없는 것이 흠이라면서 강충에게 부소군을 부소산 남쪽으로 옮기고 소나무를 심어 바위가 보이지 않도록 하면 삼한을 통일할 왕이 태어날 것이라고 하였다.

부소군은 원래 산 복쪽에 있었는데, 강충은 팔원의 말을 믿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산 남쪽으로 이사하여 온 산에 소나무를 심고 지명을 송악군으로 고쳤다.

그 후 강충은 벼슬이 높아지고 재산도 많이 모았다. 그는 두 아들을 낳았는데 첫아들의 이름을 이제건, 둘째 아들의 이름을 손호술이라 하였다.

손호술은 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지리산으로 출가하여 중이 되었으며, 이름을 보육으로 고쳤다.

보육은 후에 다시 평나산 북쪽 기슭으로 돌아와 살다가 다시 마가갑으로 옮겼는데, 어느날 이상한 꿈을 꾸었다. 곡령재에 올라 남쪽을 향해 오줌을 누었더니 그 오줌이 온 땅에 가득 차 산천이 은(銀) 바다로 변하였다.

이튿날 그는 형 이제건을 찾아가 꿈 이야기를 하였다. 동생의 꿈 이야기를 들은 이제건은 그 꿈이 비상한 인물을 낳을 태몽이라고 하면서 자기 딸 덕주를 동생의 아내로 주었다.

이렇게 하여 보육은 처를 거느린 거사중이 되어 마가갑에 암자를 짓고 살았다. 그때 신라 술사 한 사람이 찾아와 그에게 말하길 그곳에서 살면 반드시 당나라 천자를 사위로 맞을 것이라고 했다.

보육은 두 명의 딸을 낳았다. 둘째딸의 이름은 진의였는데, 그녀는 얼굴이 곱고 재주와 지혜가 많은 여자였다.

진의가 성년이 되었을 무렵, 어느날 그녀의 언니가 이상한 꿈을 꾸었다. 언니는 꿈에서 오관산 마루턱에 앉아 오줌을 누었는데, 그 오줌이 흘러 천하에 가득 차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진의는 언니에게 비단치마를 주고 꿈을 사기로 하였다.

당 현종 12년(753년)에 아직 왕자로 있던 당의 숙종이 산천을 두루 유람하다가 패강(예성강) 강나루에 도착하였다. 그는 동방의 산천을 구경하다가 송악에 도착하여 한떄 보육이 꿈 속에서 올랐던 곡령재 위에 섰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방이 고요하고 위풍이 서려 있어 나라의 도읍으로 부족함이 없는 듯했다.

그날 당 숙종은 마가갑 양자동으로 와서 보육의 집에 묶게 되었다. 보육의 집에 묵게 된 그는 두 처녀를 보고 좋아하며 자기의 터진 옷을 꿰메달라고 하였다. 보육은 숙종을 보고 술사가 말한 중국의 귀인이라고 판단했고, 곧 자신의 큰 딸을 그의 방으로 들여보냈다. 하지만 큰 딸은 문지방을 넘자마자 코피가 터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엔 둘째딸 진의가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숙종은 보육의 집에 머무른 지 한 달 만에 진의에게 태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이 내용에 대하여 고려 충숙왕 때 민지가 쓴 [편년강목]에는 1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숙종은 당나라로 떠나야 했다. 그는 이별할 때 진의에게 자신이 당나라 귀족임을 밝히면서, 아들이 태어나면 자신의 활과 화살을 전해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 후 진의는 아들을 낳았고, 이름을 작제건이라고 하였다. 작제건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용맹이 있었다.

작제건은 다섯 살을 넘기자 어머니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다. 이에 진의는 남편의 이름을 몰랐으므로 단지 그의 아버지가 당나라 사람이라고만 대답했다.

작제건이 자라 열여섯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 진의는 아들에게 남편이 두고 간 활과 화살을 주었다. 그것을 받은 작제건은 기뻐하며 매일같이 활과 화살을 가까이 하여 신궁이 되었다.

어느날 작제건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상선을 타고 당나라로 떠났다.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서 짙은 안개를 만나 배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뱃사람들은 점을 친 후 함께 탄 고려인을 내려놓고 가기로 결정했다.

뱃사람들의 결정에 따라 작제건은 활과 화살을 몸에 지닌 채 바다로 뛰어내려야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안개가 걷히고 배는 나는 듯이 가볍게 가버렸다.

배가 가고 나자 작제건 앞에 용왕이 나타났다. 용왕은 매일 저녁 늙은 여우 한 마리가 부처의 형상을 하고는, 소라나팔을 불고 경을 읽어 자신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하소연하면서 작제건에게 그 여우를 잡아줄 것을 간청했다.

작제건은 용왕의 청에 따라 관음보살로 변장해온 늙은 여우를 죽이게 되었고, 용왕은 그 답례로 작제건의 소원을 하나 들어주기로 하였다. 용왕이 작제건에게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자 작제건은 동방의 왕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용왕은 동방의 왕이 되려면 세울 '건(健)'자가 붙은 이름으로 자손까지 3대를 거쳐야만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작제건은 아직 자신이 왕이 될 때가 오지 않았음을 깨닫고 동방의 왕이 될 것을 포기하는 대신 용왕의 사위가 되고자 하였다. 작제건이 사위되기를 청하자, 용왕은 장녀 처민의를 그에게 내주었다.

용왕의 사위가 된 작제건은 아내 용녀와 함께 다시 개성으로 돌아왔다. 작제건은 송악 남쪽 기슭에 터전을 잡았는데, 그곳은 곧 옛날에 강충이 살던 곳이었다.

작제건은 용녀에게서 네 아들을 얻었는데 장남을 용건(龍建)이라고 하였다. 용건은 후에 이름을 융(隆)으로 고치고 자는 문명이라고 하였으니 이가 곧 왕건의 아버지이다.

용건은 어느날 꿈에 한 미인을 만나 부부가 될 것을 약속했다. 꿈을 깨고 송악산 영안성으로 가는 길에 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가 바로 꿈에서 본 여자였다. 그래서 용건은 그녀와 혼인하였다.

사람들은 용건이 꿈에서 보았다 하여 그녀를 몽부인이라 불렀다. 그리고 혹자는 말하길 그녀가 삼한의 어머니가 되었기에 성을 한씨라고 했다고 한다. 그녀가 곧 왕건의 어머니 한씨이다.

출전 :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들녘, 1996, pp.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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