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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8-04-04 (금) 07:52
분 류 사전2
ㆍ조회: 749      
[조선] 호포제 (한메)
호포 戶布

고려 충렬왕 이후 조선시대까지 호를 단위로 포를 징수하던 세.

1296년(충렬왕 22) 홍자번(洪子藩)의 주장으로 처음 실시하였으며 1328년(충숙왕 15)에는 개경(開京)과 경기 8현의 민가를 대상으로 잡공(雜貢)을 대신하여 저포(苧布)를 징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때 충청도·황해도·경상도·전라도·강원도의 민호를 대상으로 요역을 대신하여 부과하였다. 액수는 각 민호를 대·중·소로 구분하여 각각 2필·1필·반필씩 부과하다가 태종 때 폐지되었다. 그 뒤 필요에 따라 수시로 시행되다가 숙종 때는 본격적인 호포법 시행이 논의되었다. 즉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병법의 변화에 따라 모병제가 제도화되자 조선의 모든 양인(良人)·인정(人丁)을 대상으로 부과되던 군역이 신역에서 1년에 2필의 군포를 바치는 납포군화(納布軍化)되었다.

그러나 총액제에 의한 군역의 징수는 군포징수를 연대책임으로 몰아갔고, 그 결과 인징(隣徵)·족징(族徵)·백골징포(白骨徵布)·황구첨정(黃口簽丁) 등과 같은 폐단을 가져왔다. 또한 재정 부족을 타개하기 위한 양반의 징세가 논의되다가 숙종초 양역변통(良役變通) 논의로 신분을 초월한 호포 징수로 양역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논의가 채택되어 이를 실시하였다. 이 정책은 양반의 반대에 부딪쳐 실시되지 못하였다. 1750년(영조 26) 종래 2필인 군포를 1필로 감해 주고, 부족한 재원은 각종 부가세로 보충하려는 균역법(均役法) 시행으로 군역부담이 어느 정도 평준화되었다.

조선말 고종 즉위와 함께 대원군의 주도로 실시된 삼정(三政)개혁의 하나로 종래의 군포를 호포로 개칭하고 양반의 면세특권을 폐지하면서 포납(布納)을 전납(錢納)으로 고쳐 각 호당 2냥씩 부과하도록 하였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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