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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8-04-09 (수) 14:38
분 류 사전2
ㆍ조회: 904      
[조선] 남연군묘도굴사건 (한메)
남연군묘도굴사건 南延君墓盜掘事件

1868년(고종 5)의 남연군묘 도굴미수사건.

독일인 E.J.오페르트는 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의 통상교섭에 실패한 뒤 기회를 노리다가, 병인사옥 때 탈출하여 프랑스제독 로즈의 조선원정 때 향도 및 수로안내인이었던 프랑스신부 페롱과 조선인 천주교도의 의견에 따라,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구(球)의 묘를 발굴해서 시체와 부장품을 이용하여 대원군과 통상문제를 흥정하고자 하였다.

이에 오페르트는 배후인물로 자금을 전담하였던 미국인 F.젠킨스와 페롱, 선장 묄러(Moeller), 조선인 모리배 2명, 유럽·필리핀·중국선원 등 총 140명으로 도굴단을 구성하였다. 그들은 1868년 5월 차이나호·그레타호 등 1000t급 기선 두 척을 이끌고 충청남도 덕산군 구만포에 상륙, 러시아인이라 사칭하면서 남연군묘로 행군하였다. 도굴단은 덕산군청을 습격, 군기를 탈취하고, 민가로부터 발굴도구를 약탈하여 가동(伽洞)의 남연군묘로 직행, 밤에 도굴에 착수하였으나 묘광이 견고하여 실패, 날이 밝아오자 철수하였다.

이 사건으로 젠킨스는 미국인에 의하여 고발당하였고, 페롱은 프랑스정부로부터 소환당하였다. 조선은 조상숭배사상이 강하여 묘를 신성시하였는데, 더욱이 국왕의 할아버지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자 흥선대원군이 크게 노하였다. 결국 대외적으로는 서양인의 위신이 떨어졌고, 대내적으로는 대원군의 쇄국양이정책의 강화와 천주교탄압이 가중되었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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