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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3-24 (월) 11:30
분 류 사전2
ㆍ조회: 862      
[조선] 조병세 (두산)
조병세 趙秉世 (1827~1905.12.1)

조선 후기의 문신·순국열사. 본관 양주(楊州). 자 치현(穉顯). 호 산재(山齋). 시호 충정(忠正).

노론파의 명문에서 태어나 음관(蔭官)으로 참봉(參奉)이 되고, 1859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 사관(史官)을 거쳐 1864년 실록청도청낭청(實錄廳都廳郞廳)으로 《철종실록(哲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874년 함경도 암행어사, 1877년 대사헌에 승진되었고, 이어 의주부윤, 다시 대사헌을 거쳐 1887년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이듬해 예조·이조의 판서가 되고, 1889년 한성부판윤·우의정을 거쳐 1893년 좌의정이 되었다. 1894년 중추원 좌의장(中樞院左議長)이 되었다가 사직하고 은거하였다. 1896년 폐정개혁(弊政改革)을 위하여 시무(時務) 19조를 상소하였고, 1898년 재상에 임명되었으나 사퇴, 1900년 다시 입궐하여 국정의 개혁을 건의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국권회복과 을사5적의 처형을 주청하기 위하여 고종을 만나려 하였으나 일본군의 방해로 거절당하였다. 이어 민영환(閔泳煥) 등과 함께 백관을 인솔하고 입궐하여 조약의 무효와 을사5적의 처형 등을 연소(聯疏)하다가 일본군에 의하여 강제로 해산당하고 표훈원(表勳院)에 연금되었다.

곧 풀려났으나 다시 대한문(大漢門) 앞에서 석고대좌하며 조약의 파기를 주장하다가 또다시 일본헌병에 강제연행되었다. 그후 가평 향제로 추방되었으나 다시 상경하여 표훈원에서 유소(遺疏)와 각국 공사 및 동포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엔싸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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