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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5-13 (목) 22:00
분 류 사전2
ㆍ조회: 626      
[고대] 삼한 (한메)
삼한 三韓

삼국 시대 이전 한반도 한강 유역으로부터 중남부 지방에 걸쳐 형성되어 있었던 여러 부족에 대한 통칭.

마한(馬韓)ㆍ진한(辰韓)ㆍ변한(弁韓)을 말한다. 삼한의 지리적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마한은 한강 유역으로부터 충청ㆍ전라도에 걸쳐 있었으며, 진한은 경기ㆍ강원도 일부, 변한은 낙동강 유역 경상도에 비정된다. 삼한 사회에 대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기록은 《후한서》 <동이전(東夷傳)>이며, 이를 부연하여 정리한 것이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동이전이다. 이에 의하면 마한은 55개, 진한과 변한은 각각 12개의 소국으로 구성되었다.

[형성]

《사기(史記)》 <조선전>과 《한서(漢書)》 <조선전>에 의하면 BC 2세기 경까지도 한반도 중남부 지역은 <진국(辰國)> 또는 <중국(衆國)>으로 기록되었으며, 진한 또는 삼한 모두가 이 진국으로부터 발전된 것으로 되어 있다. 삼한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양하나,

종래 마한족ㆍ진한족ㆍ변한족의 별개 종족 집단이 한반도 남부 지역으로 이주, 정착하여 이루어졌다는 주장보다는 선주 토착 집단의 점진적인 발전 결과로 삼한이 대두하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고고학적 자료를 근거로 할 때 한강 유역을 경계로 남부 지역이 특색있는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한 때는 청동기 시대이며, 이들이 <한족(韓族)>으로 불리게 된 것은 초기 철기시대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따라서 <한>이라는 칭호가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와는 별개로 한족 사회의 형성과 토착화 과정은 청동기 문화 단계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삼한과 소국(小國)]

삼한사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인 각 소국의 형성 과정은 민무늬토기문화 단계의 대소규모 단위집단들이 다수 통합되어 단일한 정치 집단으로 기능하게 되는 역사적 발전 과정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삼한 사회의 70여 소국들은 지역과 문화 배경, 형성 주체에 따라 시기와 과정이 다양하게 대두하였다.

종래 삼한의 각 소국들은 <부족국가>로 통칭되어 왔는데, 1970년대 이후 고대 국가의 기원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성읍국가(城邑國家)> <읍락국가(邑落國家)> <군장사회(君長社會)>와 같은 새로운 용어와 개념의 설정이 시도되고 있다. 실제로 마한ㆍ진한이 지역별 소국 연맹체(小國聯盟體)로 성립된 것은 철기가 보편화된 1세기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소국의 구성과 지배 기능]

마한은 삼한의 기간(基幹)으로서 가장 넓은 지역에 걸쳐 있었는데, 목지(目支;지금의 稷山)ㆍ백제(伯濟;慶州지방이 중심임) 등 54개국의 지역적 연합체를 이루고 있었다. 마한의 각 소국의 총 호수는 10만여 호였으며, 큰 나라는 1만여 호였고 작은 나라는 수천호였다. 특히 목지국은 진국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그 왕은 진왕(辰王)이라 일컬어 마한 여러 나라의 맹주처럼 군림하였으며, 삼한 초기에는 진왕의 세력이 진한ㆍ변한에까지 미쳤다고 한다.

진한과 변한은 총 호수가 4∼5만인데, 큰 나라는 4000∼5000호였고 작은 나라는 600∼700호에 불과하였다. 이와 같은 삼한 78개의 소국은 다수 읍락(邑落)을 포괄하는 씨족적 지연집단(地緣集團)으로서, 국읍에는 소국의 규모에 따라서 신지(臣智)ㆍ험측(險側)ㆍ번예(樊濊)ㆍ살해(殺奚)ㆍ읍차(邑借) 등의 정치적 통솔자를 세우고 대내외적으로 단일한 단위 집단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다.

국읍의 주수(主帥)는 읍락간의 교역과 소국간의 교역 활동을 주관하는 경제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고, 읍락 거수(渠帥)가 개별적으로 행사하던 군사력을 전체적으로 통솔하는 군사 책임자였다. 이와 함께 마한의 여러 국읍에는 정치를 맡은 군장 이외에 천신을 제사하는 <천군(天君)>을 두어, 5월과 10월 곡식의 파종과 추수가 끝날 때마다 행하는 제천 의식(祭天儀式)을 주관하게 하였다.

정치ㆍ경제적인 지배 권력 못지않게 종교적인 영향력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던 이러한 상태는 국읍의 지배 권력이 미약한 초기 단계의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며, 제정(祭政)이 기능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던 삼한 사회의 지배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 뒤 BC 2세기 이후에는 정치적 지배기능만을 가지는 새로운 성격의 지배자가 대두되기 시작하여 삼한사회의 보편적이고 주도적인 지배세력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는 철기문화의 보급을 배경으로 단위집단 지배자로서 제사장의 기능보다 정치ㆍ군사적 통솔자로서의 구실이 중요시된 전반적인 추세를 반영한다.

[소국의 성장과 삼한의 분립]

삼한에서는 철이 많이 산출되었는데, BC 1세기 후반 이래 철기사용이 보편화되고 철을 매개로 활발한 물자교역이 전개되면서 각 집단간의 세력격차가 심화되었다. 이러한 사회ㆍ경제적인 변화를 배경으로 소국의 정치적 지배기능의 강화와 새로운 편제질서의 확립이 이루어졌다.

국읍의 주수는 유력한 읍락과의 혼인, 교역의 성공적 수행, 대외국적인 군사 활동의 전개를 통하여 지배 권력을 강화하고, 거수를 지배 세력으로 흡수하면서, 읍락 집단에 대한 통제력으로 한계를 극복하게 된다. 또 군대 지휘, 조세 징수와 관리 등 중요 통치 기능이 전문화되면서 지배조직의 체계화도 진행되었다.

이와 동시에 소국의 대내적 성장과 대외적 팽창, 무력 대립 등에서 상승 작용을 거듭함에 따라 지역별로 유력한 소국을 중심으로 소국 연맹체가 대두되었다. 그 중에서 변진(弁辰)의 미오야마국(彌烏邪馬國)ㆍ구야국(狗邪國)ㆍ안야국(安邪國)과 같은 소국들처럼 5∼6세기 무렵까지 독자적으로 존속한 것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일정한 맹주국을 주축으로 하는 지역별 소국 연맹체의 구성원으로 편제되어 2, 3세기경에는 경주 사로국을 중심으로 하는 진한 소국 연맹체, 한강 유역의 백제국 중심의 소국 연맹체, 마한 지역의 목지국 중심의 소국 연맹체로 통합되었다.

[산업과 풍속]

삼한은 평야가 많고 토지가 비옥하여 일찍부터 벼농사가 행해졌고, 수리 시설로서 저수지가 많이 마련되었으며, 길쌈과 양잠도 널리 행해졌다. 목축도 성했으며 해안 지대에서는 어업이 성행하였다. 혼인과 예절에 있어서 남녀의 구별이 있었으며, 법과 형벌은 일반적으로 엄하였다.

장례는 대개 후하게 지냈는데, 마한에서는 장사에 관(棺)만 쓰고 곽(槨;外棺)을 쓰지 않았으며 소와 말을 순장(殉葬)하는 풍속이 있었다. 변진에서는 큰 새의 깃털을 장례에 사용하고 죽은 자가 승천하는 것으로 믿었다 한다. 남부 지방에서는 남자 가운데 편두 및 문신(文身)을 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이것은 남방 해양 족속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한의 여러 나라에서는 소도(蘇塗)라고 하는 신역(神域)을 두고 제사하였는데, 소도는 도망하여 들어간 죄인도 잡지 못할 정도로 법률의 힘이 미치지 못하던 곳이었다. 이러한 삼한의 풍속은 뒷날 신라ㆍ백제ㆍ가야 문화의 기초가 되었다.

<윤현>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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