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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8-27 (금) 09:19
분 류 사전2
ㆍ조회: 538      
[고려] 고려관료제사회설 (브리)
고려관료제사회설 高麗官僚制社會說

1970년대 초반 고려 시대 연구자들이 고려 사회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일련의 논의를 진행하는 가운데 제기되었던 학설의 하나.

이 논의가 있기 이전 에는 고려 시대가 귀족제 사회였다는 것이 1930년대 이래의 통설이었다(고려귀족제사회설). 관료제 사회설은 그러한 통설에 최초의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이른바 '고려 사회 성격론'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게 되고, 고려 사회를 더 심층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른바 '고려 사회 성격론'은 고려 시대의 정치 지배 세력의 성격이 귀족적인가 아니면 관료적인가 하는 데 초점이 놓여 있었으며, 엄밀한 의미에서 고려 사회 전반의 성격을 해명하는 수준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관료제 사회설은 귀족제 사회론자들이 고려 사회가 귀족제 사회였음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제도 장치로 지적하여 왔던 5품 이상 관료의 자손에게 관직 진출을 보장하였던 음서제(蔭敍制)와 5품 이상 관료의 경제적 보장책이었던 양반공음전시(兩班功蔭田柴)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귀족제 사회설을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또한 관료제 사회설은 고려 사회는 과거의 가치 체계가 더 보편적이었고, 정치 지배 세력의 대부분은 과거를 통하여 관계에 진출한 관료제 사회였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관료제 사회설은 막스 베버의 가산 관료제(家産官僚制) 개념을 원용하여 고려 사회를 역시 가산 관료제 사회로 규정하였다. 구체적으로 고려 시대 관료들의 전기를 실은 <고려사> 열전에 기재된 650명의 인물 가운데 340명이 과거 출신자였다. 반면에 귀족제 사회론의 근거가 되었던 음서제를 통하여 관직에 진출한 자는 40여 명에 불과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추세는 공신의 후손, 고위 관직자의 대부분이 과거 출신자라는 데서 뒷받침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고려 시대 관리 선발의 정도는 과거제였으며, 음서제는 과거제에 대해 부차적·종속적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고려 사회는 이와 같이 관리 등용에 있어서 과거라는 가치 체계가 전국가·전역사적으로 확립되어 있었으며, 고려 시대 정치 주도 세력의 압도적인 다수가 과거 출신자로 이루어진 관료제 사회였다고 보았다. 관료제 사회설은 이러한 사실에 기초하여 과거 제도는 본질상 유능한 관리를 확보하는 데 목표가 있으며, 과거 시험의 당락은 개인의 인품이나 능력이 결정적인 척도가 되며 자신의 가문이나 출신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과거는 귀족적인 요소가 개입될 수 없으며 개인능력주의가 관철되는 것으로 귀족제 파괴의 속성을 갖는 반귀족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다음 관료제 사회설은 귀족제의 제도적 보장책으로 5품 이상 관료의 자손에게 관직 진출을 보장하였던 음서제에 대해 서양 귀족 사회의 습관제(襲官制)와는 다른 것으로, 이 제도는 고위 관료에 대하여 단순히 초직(初職)만을 제수한 데 불과한 것이었다고 해석하였다. 음직을 제수받은 관료는 그 이후 음서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인품에 의해 고관으로 진출하는 것을 보장받았다고 하였다.

결국 고려 시대 음서제는 능력이 있거나 국가에 공이 있었던 고위 관료에 대한 국가적 보은의 의미로서 그 자제들이 관직 진출을 보장하기 위하여 초직을 제수하는 데 그쳤던 것이며, 서양의 귀족제와 같이 여러 대에 걸쳐 관직을 승계하는 제도가 아니었다고 하였다. 또한 음직을 제수받은 자 가운데 과거 출신자가 상당수 있었던 것도 당시 과거제가 관직 진출에 더 유리한 제도였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양반공음전시(혹은 공음전)는 그동안 귀족제 사회설에 입각하여 5품 이상의 모든 관료에게 지급되어 자손에게 세습되었으며(5품 이상 일반관리설), 그것이 귀족제 사회를 유지하는 경제적인 기반이 되었다고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관료제 사회론자들은 1품에서 5품까지 지급된 공음전을 그 품(品)이 관품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공음의 내용에 따른 단계·등급을 뜻하는 것으로 재해설하였다. 또한 양반공음전시라는 자의(字意)에서 나타나듯 공음전은 5품 이상의 관리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지급된 것이 아니라 국가에 공훈(功勳)이 있는 모든 관리들에게 지급되었다는 것이다(전관리공훈관리설).

결국 관료제 사회설은 고려 시대 귀족제 사회설과는 달리 공음전은 국가에 공이 있는 모든 관리들에게 지급되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입론은 그동안 귀족제 사회설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제도적 장치의 하나로 간주되어왔던 양반공음전시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귀족제 사회론을 극복하는 이론적인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1970년대 초반 관료제 사회설의 제기는 그 타당성의 여부를 떠나 고려사 연구를 재점검하고 반성하는 동시에 이 방면 연구를 한층 심도있고 체계적으로 진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구체적으로 이후에 고려시대 과거제와 음서제, 토지 제도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된 것도 이러한 논쟁에 힘입은 바 크다.

박종기(朴宗基) 글

참고문헌

고려사회의 귀족제설과 관료제론 : 김의규 편, 지식산업사, 1985
고려사회의 성격론 〈한국사론 18〉 : 김의규, 국사편찬위원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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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음서제에 대한 재검토 <진단학보> 53·54 : 김용선, 진단학회, 1982
고려시대의 승음혈족과 귀족층의 음서기회 <김철준 박사 화갑기념사학논총> : 노명호, 지식산업사, 1982
고려의 과거와 문음제도와의 비교 <한국사연구> 27 : 허흥식, 한국사연구회, 1979
고려시대 귀족제사회설에 대한 재검토 <백산학보> 23 : 박창희, 백산학회, 1977
고려가산관료제설과 귀족제설에 대한 검토 <사총> 21·22 : 박용운, 고려대학교 사학회, 1977
과거제와 지배세력 <한국사 4> : 이기백, 국사편찬위원회, 1974
고려의 '공음전시법'의 해석에 대한 재검토 <한국문화연구원논총> 22 : 박창희,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973
고려관인사회의 성격에 대한 시고 <역사학보> 58 : 김의규, 역사학회, 1973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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