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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4-28 (월)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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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3413      
[고려] 고려의 지방행정제도 (민족)
지방행정제도(고려의 지방행정제도)

세부항목

지방행정제도
지방행정제도(고대의 지방행정제도)
지방행정제도(고려의 지방행정제도)
지방행정제도(조선의 지방행정제도)
지방행정제도(근대이후의 지방행정제도)
지방행정제도(일제강점기의 지방행정제도)
지방행정제도(미군정기의 지방행정제도)
지방행정제도(대한민국의 지방행정제도)
지방행정제도(참고문헌)

[고려]

후삼국의 하나로 출발한 고려는 후삼국 시대의 혼란과 지방 호족 세력의 난립, 그리고 중앙 행정력의 미성장 등으로 체계적인 지방 제도를 갖출 겨를이 없었다. 고려의 지방 제도 정비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제6대 성종(981∼997)과 제8대 현종(1009∼1031)이 취한 일련의 조치이다.

(1) 태조대의 지방제도

이에 앞서 태조 때에도 지방에 대한 여러 가지 시책이 있었다. 평양 즉, 서경에 대한 적극적 경영과 아울러 군사적 필요에 의한 조처가 취해졌다. 즉, 군사적 요지에 진(鎭)들을 두었으며, 930년(태조 13)에는 천안도독부(天安都督府)를 설치하였다.

후삼국 통일 직후 후백제의 수도였던 완산(完山 : 지금의 전주)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940년에는 신라의 고도인 경주(慶주)에 안동대도독부(安東大都督府)를 두었다.

이와 같은 군사적 거점에는 중앙군의 군사들을 배치했으며, 이들을 지휘하는 군정적(軍政的)인 외관이 파견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의 외관은 후대까지 존속되었다.

이 밖에 고려 국초에는 금유(今有)ㆍ조장(租藏)이라고 하는 외읍사자(外邑使者)가 있었다. 이들의 임무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들이 중앙에서 파견해 지방에 상주하는 외관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전체적으로 보아, 국초의 지방경영은 주로 군사적 목적으로 행해졌으며, 체계적인 지방행정조직이 정비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2) 성종대의 정비

지방제도의 정비에 처음으로 착수한 것은 983년(성종 2) 2월이었다. 이 때 처음으로 전국에 12목(牧)을 설치하고, 금유ㆍ조장을 혁파하였다. 12목이 설치된 곳은 양주ㆍ광주ㆍ충주ㆍ청주ㆍ공주ㆍ진주ㆍ상주ㆍ전주ㆍ나주ㆍ승주ㆍ해주ㆍ황주였다. 12목의 설치를 계기로 고려의 지방 제도가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다는 점에서 설치 의의는 매우 크다.

12목 설치 당시에는 지방관만이 임지에 부임하고 가족의 동반은 허용되지 않았으나, 986년 8월에 12목에 대해 가족과 함께 부임하는 제도적 조처가 이루어졌다. 그 뒤 987년 8월에는 12목마다 경학박사(經學博士)ㆍ의학박사(醫學博士) 각 1인씩을 보내어 지방 교육을 맡게 하는 한편, 유교적 교양이나 의술이 있는 인재를 중앙에 천거하도록 하였다.

993년에는 양경(兩京)과 함께 12목에 상평창(常平倉)을 두어 물가조절의 기능을 맡아보게 하였다. 또한, 이 해 8월 주ㆍ부ㆍ군ㆍ현과 역로(驛路)에 공수시지(公須柴地)를 지급했는데, 이미 983년 6월에 주ㆍ부ㆍ군ㆍ현과 관(館)ㆍ역(驛)에 전지(田地)를 지급한 사실을 감안하면, 993년에는 지방 각 관아의 경비 지출을 위한 공해전시(公力田柴)의 법이 정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성종대에 지방 제도의 정비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어, 지방 행정의 기능이 크게 강화되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지방 제도의 정비와 함께 중앙 행정력이 각 지방에 직접 침투하게 되면서 각 지방의 호칭에 대한 개정 작업이 이루어졌다. 즉, 992년 11월에는 주ㆍ부ㆍ군ㆍ현 및 관(關)ㆍ역ㆍ강(江)ㆍ포 (浦)의 호칭을 고쳤다.

995년에는 지방 제도에 관한 중요한 조처가 취해졌다. 10도제(道制)의 실시와 절도사체제(節度使體制)로의 개편이 그것이다. 먼저 10도제는 당나라의 10도제를 본받아 제정했던 것 같다. 당나라의 10도제는 당나라 태종(太宗)이 원년에 산천의 형편에 따라 천하를 10도로 나누었다고 한다. 고려의 10도도 그 도명으로 보아, 지리적인 조건을 고려해 제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 10도의 명칭은 관내(關內)ㆍ중원(中原)ㆍ하남(河南)ㆍ강남(江南)ㆍ영남(嶺南)ㆍ영동(嶺東)ㆍ산남 (山南)ㆍ해양(海陽)ㆍ삭방(朔方)ㆍ패서(浿西)였다. 10도제는 실시 이후 지속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운용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10도제는 우리 나라 지방 제도상 도제를 수용하는 선구가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다음으로 절도사 체제로의 개편은 995년에 이미 앞서 983년에 설치했던 12목에 절도사를 두게 되었음을 말한다. 983년 이래 지방 행정의 근간이 되어오던 12목을 12절도사로 개편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지방 행정에 있어 군사적인 면이 크게 강조되었다. 목을 파하고 군(軍)을 두고 있는 데에서 그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이를 도표화하면 〔표 4〕와 같다.

12절도사와 아울러 7도단련사(都團練使)ㆍ11단련사ㆍ21방어사(防禦使)ㆍ15자사(刺使) 등의 지방관제가 새로 설치되었다. 따라서, 995년의 지방 관제 개편의 근본 목표가 당나라에서 안사(安史)의 난 이후에 편성한 것과 동일한 군사적인 절도사 체제로의 지방 관제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체제 개편은 군정적인 지방 행정을 통해 지방의 호족 세력을 통제함으로써 중앙 집권을 이룩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10년 뒤인 1005년(목종 8)의 지방 관제 재정비 과정에서 12절도사ㆍ4도호부와 동서북계방어진사(東西北界防禦鎭使)ㆍ현령ㆍ진장(鎭將)만을 두고, 그 나머지 관찰사ㆍ도단련사ㆍ단련사ㆍ자사는 모두 혁파된 사실이 주목된다. 이것은 당시 그러한 외관이 설치된 지방 행정 단위까지 장악할 수 없었던 중앙 행정력의 한계성을 나타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3) 현종대의 정비

고려의 지방 제도는 제8대 현종대(1009∼1031)에 대대적인 정비 작업이 있었다. 현종 초에 995년 이래의 12절도사를 혁파하고, 대신 5도호ㆍ75도안무사(道安撫使)를 설치하였다. 여기에서 75도 안무사는 7주(州) 안무사의 잘못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12절도사 체제를 5도호 7주안무사 체제로 개편한 것이 아닌가 한다.

1018년(현종 9) 2월에는 다시 4도호 8목 체제로 개편하고, 56지주군사(知州郡事)ㆍ28진장ㆍ20현령을 설치하였다. 이로써 고려의 지방 제도는 4도호 8목을 중심으로 그 아래에 56개의 주ㆍ군, 28개의 진(鎭), 20개의 현으로 편성되었다. 이것은 중앙의 행정력이 1018년에 군ㆍ현급의 행정 단위에까지 본격적으로 침투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유의할 것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군ㆍ속현의 수는 훨씬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고려사≫ 지리지에 기재된 현은 모두 335개소인데, 이 중 지방관이 배치된 현, 즉 현령관(縣令官)은 30개소에 불과했고, 속현은 305개소나 되었다.

이러한 속군ㆍ속현에 대한 지방관의 설치는 오랜 기간에 걸쳐 점차적으로 행해졌다. 또, 조선 시대에 비로소 감무(監務)가 설치되는 속군현(屬郡縣)의 수도 많았던 것이다.

고려의 정치 체제상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유수관(留守官)이다. 유수관은 서경(西京 : 지금의 평양)ㆍ동경(東京 : 지금의 경주)ㆍ남경(南京 : 지금의 양주)으로서, 이들은 수도인 개경(開京 : 지금의 개성)과 더불어 중앙 정치 제도상 큰 몫을 차지하였고, 4도호부 8목과 함께 지방 통치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이와 아울러 생각해 볼 것은 이른바 오도양계(五道兩界)에 관한 문제이다. 고려에서는 남쪽의 일반 행정 지역과 북쪽의 군정 지역의 둘로 크게 나누어져 있었다. 오도양계 중 오도가 전자에, 그리고 양계가 후자에 해당된다. 양계 지방은 국방상의 중요성 때문에 고려 초기부터 병마사를 장관으로 하는 군정적 체제가 형성, 운영되었다.

그러나 오도제의 성립시기에 대해 고려 중기설, 혹은 고려 후기설 등으로 아직 정설이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종래 통설로 되어왔던 현종조설, 혹은 고려 초기설은 잘못되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각 도에 파견되었던 안찰사가 종래의 통설처럼 도의 행정 책임자였는가, 아니면 주로 감찰의 기능을 띠고 파견된 외직이었는가의 문제도 앞으로 더 연구되어야 할 과제인 것 같다. 다만, 고려의 안찰사제가 뒤에 조선 시대 관찰사제 성립의 선구가 되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편, 고려 말기의 지방 제도 개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새로이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가 5도뿐만 아니라 양계 및 경기 지방에도 파견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고려의 전국 각 도는 다같이 도관찰출척사의 통제 아래 들어가게 되었고, 전국이 단일적인 행정 조직으로 편성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고려 시대 지방 제도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조선 시대의 팔도제(八道制)는 이를 기반으로 성립된 것이라 생각된다.

고려의 지방 토착 세력들은 지방 통치상, 매우 큰 비중을 가지고 있었다. 지방관 설치 이전에 이들은 그 관할 지역에 독자적인 행정 조직을 갖추어 직접 지배하고 있었다. 그 뒤 성종대의 지방 제도 정비와 함께 점차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12목이 설치되던 983년의 지방 이직(吏職)에 대한 개편을 기점으로 하여 지방 세력에 대한 중앙의 통제책이 계속 추진되었다.

987년 9월에는 이직 개정이 현 아래의 단위에까지 미치고 있었다. 즉, 제촌(諸村)의 대감(大監)ㆍ제감(弟監)을 고쳐 촌장(村長)ㆍ촌정(村正)으로 삼았다. 또한, 995년의 12절도사 체제로의 개편도 그것이 지방 세력 통제책의 일환이었다. 그 뒤 1018년의 대대적인 지방제도 정비와 아울러 지방 세력에 대한 구체적인 통제책이 단행되었다.

현종 이후 지방 세력에 대한 통제책은 더욱 보강되어 제11대 문종대(1046∼1083)에는 지방 세력→향리(鄕吏)의 정치적ㆍ사회적 지위에 대해 법적 제약이 따르게 되었다.

요컨대, 성종ㆍ현종ㆍ문종대의 여러 시책을 통해 지방 세력은 지방에 있어서 중앙 행정력의 보조자로서의 지위로 떨어지게 되었고, 제도적으로는 지방 세력이 향직(鄕職)으로 편제되어 중앙 행정력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상의 통제책에도 불구하고 지방 세력이 지방에 미치는 영향력이 실제로는 상당히 강대하였다. 이미 고려 시대에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군현이 훨씬 더 많았음을 지적한 바 있다. 이 속군현들은 전국 각처, 특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남도 지방에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이 속군현 모두가 지방 세력의 직접 지배 아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와 아울러 생각할 것은 향ㆍ부곡이라는 특수 행정 구획이다. 향ㆍ부곡들은 신라 시대 이래 고려 시대에도 전국 각처에 널리 존속하고 있었다. 향ㆍ부곡들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직접 지배 세력도 중앙 행정력이 아닌 지방 세력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비록 지방 세력이 중앙 통제를 받았다 할지라도 지방 행정에 있어서 지방 세력의 중요성은 여전히 큰 것이었다.

지방 세력에 대한 중앙 통제의 또 다른 시책인 사심관 제도(事審官制度)나 기인 제도(其人制度)가 국초부터 말기까지 존속했던 사실은 고려 사회에 미치고 있던 지방 세력의 커다란 영향력을 단적으로 입증해주고 있다. 요컨대, 고려는 지방 제도 성립과정에서부터 지방 세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포섭ㆍ통제하고, 또 이들을 지방 행정에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 큰 과제의 하나였다.

<하현강>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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