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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03-28 (일)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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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3396      
[사상] 유교-개관 (민족)
유교(儒敎)

관련 항목 : 유학
 
세부항목

유교
유교(한국상고 및 삼국시대와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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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조선 중기와 유교)
유교(조선 후기의 유교)
유교(참고문헌)

1. 유교의 인간학적 특징과 학문의 다면성

유교는 공자(孔子)를 조술(祖述)한다. 공자의 사상은 어떻게 성립되었으며 그의 인간관과 세계관의 특징은 무엇일까? 여러 유교 학파의 원조인 공자의 사상이 함유하고 있는 본질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공자는 “은대(殷代)의 예(禮)는 하(夏)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그 손익(損益)한 바를 알 수 있고, 주대(周代)의 예는 은에서 말미암았기 때문에 그 손익한 바를 알 수 있다. 주(周)를 계승할 이가 있다면 비록 100세가 지나더라도 그 손익한 바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공자 사상의 배경은 하은주(夏殷周) 시대이지만, 하(夏)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은주(殷周)시대를 살펴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공자는 은주 문화를 배경으로 인간의 내면적·관념적 측면과 외면적·경험적 측면을 주체적 자각을 통해 통합적으로 인식하였다.

중국 은대의 종교문화는 은부족(殷部族)의 상고신앙을 중심으로 조상신 및 귀신숭배 사상이 성행하였다. 상제(上帝)는 초월적·절대적 존재로서 인간과 만물을 주재하고 천지자연과 길흉화복을 점지해 인간으로 하여금 이를 좇아서 모든 시책을 결단하게 하는 궁극적 근원이었다.

갑골복사(甲骨卜辭)에 보이듯이 인간은 상제에 대해 수직적 절대 복종의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중요한 일은 점복(占卜)에 의해 결정되었다.

주대(周代)에서도 초인간적 주재자를 숭상한 것은 사실이지만, 천사상(天思想)의 등장과 함께 인간을 중심으로 지상의 사회 현실을 중시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절대적 주재자가 ‘상제’에서 ‘천으로 바뀌어감에 따라 관념적·무형적 존재의 실체와 권위에 대한 회의가 나타났다.

인간적 가치를 존중했던 공자는 초월적 주재자에 대한 교설(敎說)이나 의식(儀式)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천(天)’ 또는 ‘천명(天命)’에 대해 강한 신념과 외경심을 표시하였다.

천은 인간의 의지를 넘어서 그 뜻을 행하는 궁극적 존재라고 생각되었다. 인간은 천의 뜻에 따를 뿐이라는 천명사상(天命思想)이 도덕성과 역사의식의 근거가 되었다.

공자는 은대의 상고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문화와 주대의 합리주의적이고 인문주의적인 예제문화(禮制文化)에 근거해 형이상학적 요소와 사회 역사적 요소를 통합하였다. 공자는 인간성의 주체적 각성을 통해 천사상과 천명사상을 실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다.

공자의 인간관의 핵심은 ‘인사상(仁思想)’이다. ‘인’은 인간의 본질이며 삶 그 자체라고 보았다. 공자는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용어인 ‘성(性)’이나 ‘이(理)’라는 용어보다는 ‘도(道)’·‘직(直)’·‘덕(德)’·‘충(忠)’·‘신(信)’·‘의(義)’ 등의 말들을 자주 사용하였다.

이 낱말들은 인간의 소이(所以)와 당위(當爲)에 관련된 덕목으로 본질적으로는 ‘인(仁)’에 귀속된다고 보았다. 인은 인간의 성취할 바람직한 가능성이며, 어느 일면으로만 규정할 수 없는 유연성과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다.

2. 유교의 종교성

유교의 종교적 측면은 경천사상에서 볼 수 있다. 은주시대에 걸쳐 숭앙의 대상이었던 ‘상제’와 ‘천’은 ≪시경≫·≪서경≫을 비롯한 오경 속에 많이 나타나 있다.

경천사상은 우주와 인간을 주재하는 초인간적·초자연적 절대신에 대한 숭경(崇敬)의 자취를 담고 있다. 상제는 인간을 감찰하고 화복을 내려주는 무한한 권위를 지닌 절대 타자(絶對他者)로서 인식되었다.

상고에는 ‘상제’와 ‘천’에 대한 신앙이 비슷했지만, 주대로 내려오면서 천의 의미가 변화하였다. ‘천(天)’이라는 글자 속에 이미 ‘대(大)’라는 사람의 뜻이 내포되어 있듯이 초월적 권위가 인간에게 내재함으로써 인간과의 관련성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초월적 주재자의 외적 권위를 직접적으로 일컫기보다는 인간의 책무와 도리를 중시해 덕(德)의 개념이 출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제’나 ‘천’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 전환은 공자에 이르러서였다. 공자는 ‘천’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신성성과 구극성을 인간에게 내재화했다.

‘천‘은 외경적 존재임에 틀림없지만, 인간의 성숙(仁)과 주체적 각성(德)에 의해서 ‘천’의 세계가 열릴 수 있다고 보았다.

공자는 천인관계(天人關係)에서 초월과 내재를 동시에 파악하였다. 공자는 초월자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도, 특정한 예배의 형식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상제’에 대한 관념은 ‘천’ 속에 수렴되고, 그것은 다시 인격 속에 내재되어 인간의 실질적 태도와 삶 자체가 중요시되었다. ‘하늘’의 문제를 인간의 삶의 행태 속에 수렴시킴으로써 인간 행위를 떠난 상념의 세계를 건설하지 않았다.

유교에서는 제사를 중요시한다.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행하는 제의는 기복행사(祈福行事)이지만, 유교의 제의는 윤리성과 도덕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유교의 제의는 대가나 보상을 요구하는 구복(求福)으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유교의 제의는 주술적 요구를 배격하고 세속 세계를 도덕화하려고 한다.

전통적인 습속, 오사(五祀)나 절사(節祀)와 같은 국가행사나 민간신앙과 습합(習合)한 부분이 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유교의 제의는 건실한 윤리성을 기반으로 인간의 외형적·절차적 관계를 설정할 뿐만 아니라, ‘고무진신(鼓舞盡神)’하고 ‘신이명지(神而明之)’하는 신명성(神明性)을 다함으로써 인간의 주체적 체험을 강화하려고 하였다.

유교는 인간의 삶을 충실하게 하는 데 힘쓰기를 강조하며, 내세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취한다. 공자는 초인간적 존재나 내세의 삶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표(言表)하지 않았다.

공자는 자신이 처한 곳에서 도리를 다하려고 했을 뿐, 내세의 영원한 삶을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의 문제는 삶 속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인간의 삶이 얼마나 실존적 깊이를 가지며, 어떠한 의미를 가지느냐가 보다 중요한 관심사였다.

공자는 인간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도(道)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할 정도로 인간의 인간다움, 즉 도와의 일치를 추구하였다. 공자는 인생에서 인격적으로 최고의 가치를 성취함으로써만 인생의 의미를 다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공자는 “믿음을 돈독히 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며(篤信好學)”, “죽음을 당하더라도 도를 참되게 하며(守死善道)”,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殺身成仁).”고 말하였다. 누구나 스스로의 본분을 자각하고 실천함으로써 평화와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인간의 도리를 의미하는 인은 자식을 사랑하고(慈) 부모에게 효도하는(孝) 친자관계(親子關係)에서부터 시작한다. 자식은 부모의 몸에서 직접 발생한 관계이므로 부모(親)-자식(子)은 무조건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 관계에서 본질적 특성은 ‘사랑’과 ’존경‘이다.

인간 관계는 일반 사물과 다르게 인격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인격이 없으면 인간 관계가 파괴될 수밖에 없다. 부모-자식 사이의 사랑과 존경이 사회로 확대되지 못하면 이기주의적 상업 정신으로 전락하기 쉽다.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은 부모가 죽어서도 제사의 형태로 유지됨으로써 사회의 정신적 방향이 정립된다. 조선(祖先)에 대한 제사는 자신이 생겨난 근원을 반성해(報本追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자각하는데 있다. 의례는 효성의 정감을 담는 그릇이요 그것이 나타나는 방식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존경으로부터 자신의 존재의의를 느낀다.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그 객관적 존재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현세에 살아 있는 이들의 진실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죽은 이 섬기기를 살아 있는 이 섬기기와 같이 한다(事死如事生).”고 했고, “내가 직접 제사하지 않으면 제사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吾不與祭 如不祭).”고 하였다. 효는 존경의 마음이 조상뿐만 아니라 천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교의 중요한 종교적 덕목이다.

3. 유교의 현실관

공자는 “제 몸을 닦아 백성을 편안히 한다(修己而安百姓).”고 하였다. 이와 같이 유교는 자기도야(修身)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을 평안하게 한다(平天下)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를 이상으로 삼고 있다.

유교의 도는 수도적(修道的) 측면과 행도적(行道的) 측면을 병행하기 때문에, 개인의 수양은 사회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유교의 도는 이 세상을 버리고 은둔하는 은자(隱者)의 출세간과 세상에 영합해 사리(私利)를 도모하는 속물주의를 거부한다. 유교는 이 세상 속에서 인간성을 수양하는 목표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유교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밝은 덕을 세상에 밝히는 것(明明德於天下)’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고 있다.

유교의 현실 지향적 성격은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현실을 개혁하려는 데 특징이 있다. 인간에 내재된 참된 가치를 현실 속에서 보존·함양함으로써 현실에서 현실을 개혁하는 적극적 방법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에 대해 ≪중용≫에서는 “높고 밝은 진리를 극진히 하면서 일상일용을 말미암는다(極高明而道中庸).”고 했고, 풍우란(馮友蘭)은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을 벗어남(卽世間而出世間)”이라고 하였다.

전 시대의 문화 전통을 집대성했던 공자는 요(堯)·순(舜)·우(禹)·탕(湯)·문(文)·무(武)·주공(周公) 등의 인물들을 고성왕(古聖王)으로 칭송하였다. 나중에 도학파(道學派)는 이 인물들을 도통으로 숭상하였다.

공자는 주의 문화가 본래의 모습을 잃어 가는 것을 개탄하였다. 나중에 공자가 과거를 숭상하는(尙古的) 인물로 묘사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유교에서 “요순을 근본으로 삼고 문무를 본받는다(祖述堯舜 憲章文武).”고 하는 정신은 단순한 복고주의가 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부정의 표시이며, 현실을 개변시켜 이상적 목표로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하대는 ‘충(忠)’을, 은대는 ‘질(質)’을, 주대는 ‘문(文)’을 숭상했는데, 공자는 내용과 현실이 균제한 문질빈빈(文質彬彬)한 상태를 가장 바람직하게 보았다.

이러한 개혁과 발전의 논리에 근거하여 공자는 시대에 따라 없앨 것과 새로 보충할 것을 올바로 처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공자의 정신을 ‘시중지도(時中之道)’라고 부른다.

4. 유교의 교화 방법

유교에도 중심 경전이 있지만 일정한 계통을 갖춘 사원이나 교회를 만드는 것과 같은 교조화된 신앙의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후세에 공자와 그 제자들을 비롯한 성현을 제향하고 기념하는 성소(聖所)로서 대성전(大成殿)과 같은 사우(祠宇)를 태학(太學)과 향교에 설치하거나, 선현을 추모하고 학문을 연마하기 위한 터전으로서 서원을 세웠지만, 집단적으로 예배하기 위한 종교적 조직체로 볼 수 없다.

선비들은 국·공립기관인 성균관·향교와 사립 기관인 서원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들은 사제나 승려와 같은 일정한 종교적 신분이 아닌. 혼인도 하고 가정도 돌보는 일반인으로서 생활을 해나갔다. 오히려 인간의 범상한 생활 자체를 중시하고 고양시키면서 일상으로부터의 이탈을 잘못된 것으로 보았다.

또한 인간에게 있는 희로애락의 정서를 존중했기 때문에 금욕주의적 멸정론(滅情論)을 부정하였다. 인간의 감정을 삶의 현장에 알맞게 조절(致中和)해 삶을 가꾸고자 하였다. 이상 세계는 현실 세계를 떠날 수 없다고 봄으로써 일상과 이상, 감성과 이성 등의 이원적(二元的) 분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유교는 성(聖)·속(俗)은 인간의 삶에 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뿌리가 따로 있다고 보지 않았다. 성속이라는 개념 이전의 성속이 하나로 수렴한 상태, 즉 중화를 이룬 상태를 소중하게 보았던 것이다.

이와 관련된 중요한 대목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개인은 부여받은 순수정신(理性, 靈魂)을 확립하고 감정을 순화해 각성된 인격 주체를 이루어야 한다. ‘자기를 이기고 예를 지킴(克己復禮)’, ‘생각을 진실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함(誠意正心)’, ‘몸을 닦음(修身)’과 같은 수양론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 가정의 질서와 행복을 성취하는 일이다. 유교에서 가정은 성과 속이 만나는 매우 중요한 자리이다. 가정의 장로(長老, 尊長)는 사제격이며, 어린이(少幼)는 교인인 셈이다. 이는 대소가족 모두에 해당되는 것이다.

셋째 민생을 보양(保養)하고 교화를 펴기 위한 기반으로서 인도주의 국가의 건설이다. 국가는 인간 생활의 필요에 의해 구성한 조직체이다. ‘군(君)·사(師)·목(牧)’을 통해 기강과 질서를 세우며, 인륜을 가르치며, 의식주를 제공한다.

요·순·우·탕·문·무·주공 등이 통치하던 유교의 이상 국가에서는 교화와 통치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통치 기능과 교화 기능을 동시에 충족시키지 못하면, ‘나라에 도가 없는 상태(邦無道)’를 맞게 된다.

따라서 성인이 통치자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면, 교화의 기능을 현인에게라도 맡겨야 한다. 어떠한 경우이든 국가 경영에서 통치 기능과 교화 기능은 동시에 요구되기 때문이다. 입덕(立德)·입공(立功)·입언(立言)의 근본 취지가 여기에 있다.

공자는 스스로 ‘성인’의 명호(名號)를 사양하였다. 종교를 창설한 교조는 아니었지만, 10철(十哲)·72현(七十二賢)·3,000제자라 불리는 많은 문도를 배출했으며, 2,500년의 유교 전통에서 ‘만세종사(萬世宗師)’로서 숭앙을 받고 있다.

공자는 주대의 지식인 계층인 사인출신(士人出身)이었다. 사인은 지배 귀족으로서의 통치계층도 아니요, 생산자로서의 서인(庶人)도 아닌 중간 계층이었다.

그러나 그는 ‘도’를 행하고자 ‘천하를 돌았으나(轍環天下)’ 뜻을 펴지 못하고 향리로 돌아와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썼다. 부귀 빈천을 가리지 않고 배우려고 하는 자들을 열심히 가르쳤다.

유교는 공자를 종사(宗師)로 하여 조정이나 향리에서 정사를 도모하고 생활 관습을 형성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관학파(官學派)의 정치 참여와 사림파(士林派)의 교육 정신도 공자의 정신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5. 유교의 윤리사상

공자는 인(仁)을 비롯해 덕(德)·예(禮)·의(義)·지(知)·신(信)·용(勇)·충(忠)·서(恕)·효(孝)·제(弟)·경(敬) 등 많은 윤리적 덕목을 말하였다.

그러나 공자는 그의 언행을 통해 모범을 보이고 구체적 사례에 따라 말하였을 뿐 실지의 삶을 떠난 추상적 관념의 체계를 서술하려고 하지 않았다. 공자 설한 가르침(設敎)은 맹자에 의해 더욱 자세하게 밝혀졌다(明敎).

공자의 인은 모든 덕의 총체적 표현이요, 전인성(全人性)을 뜻한다. 인을 추구하는 군자는 인의 극치인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러나 인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

인 개념은 인자(仁慈)라든가 사랑이라는 뜻으로 지·용과 상대적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공자는 “지자(知者)는 의혹하지 않고(不惑) 인자(仁者)는 근심하지 않으며(不憂) 용자(勇者)는 두려워하지 않는다(不懼).”고 하였다.

또한 공자는 제자들이 인에 대해 물었을 때, 안연(顔淵)에게는 ‘극기복례(克己復禮)’라 했고, 자장(子張)에게는 ‘공(恭)·관(寬)·신(信)·민(敏)·혜(惠)’라 했으며, 중궁(仲弓)에게는 “문밖에 나설 때는 큰 손님 맞이하듯,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 받들 듯 할 것이며,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대답하였다.

유교는 효제와 충서를 중요시한다. 전자는 친애 즉 효도와 존경의 원리이고, 후자는 진실 즉 성실과 이해의 원리이다.

효는 만행의 근본으로 경애·자애·우애의 뿌리이다. 종적으로 어버이에 대한 경애로부터 멀리 조상에까지 보본추원하며, 횡적으로 부모와 자녀에 대한 애휼(愛恤)을 확대해 타인의 부모와 자녀에까지 미루어 나가는 방법을 취한다.

유교에서도 보편적인 사랑으로서의 인류애를 말하지만, 방법적으로 자기의 가장 절실한 부모 형제와의 관계를 토대로 궁극적으로 사해동포에까지 추급(推及)하기를 지향하고 있다.

충서는 충실성과 이해심이다. 공자는 ‘충신을 주로한다(主忠信)’고 하여 거짓없는 성실과 믿음을 다할 것을 말했고, 남의 처지와 심경을 나의 것으로 헤아리는 ‘서’의 마음을 중시하였다.

증자(曾子)는 공자의 ‘모든 것에 통하는 하나의 도(一貫之道)’를 “충서일 뿐이다.”고 하였다.

≪대학≫에 의하면, 유교 윤리가 제가·치국·평천하로 연결되어 가정 윤리와 사회 윤리가 관련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가정에서는 효·제·자가 바탕이 되며, 이것을 미루어 효는 임금을 섬기는(事君) 도, 제는 어른을 섬기는(事長) 도, 그리고 자는 백성을 다스리는(使衆) 도가 된다고 보았다.

가정의 윤리는 곧 사회 국가의 윤리로 연결되는 바탕이다. 그 기본 원리를 ‘서’라 하여 자기의 진실한 소망에 비추어 타인에게 한결같이 베풀기를 강조하였다.

이것이 곧 ‘혈구지도(燃矩之道: 자로 헤아리는 방식)’이다. 자기가 진실로 원하는 바는 남도 원하고, 자기가 싫어하는 바는 남도 싫어할 것이니, 자기의 본심을 헤아려 남을 대하라는 명제이다.

요순을 좇고, 걸주(傑紂)를 좇지 않는 까닭이 모두 여기에 있다. 백성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함으로써 민중을 얻을 수 있으며 민중을 얻으면 나라를 얻고, 민중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는 논리이다.

따라서 지도자 자신이 이러한 가치정향(價値定向)의 의식적 기반이 얼마나 튼튼히 되어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남는다.

≪중용≫에서는 인간적 가치의 궁극적 근원을 인간의 본성에 두고 있으며, 인성은 천명에서 유래했다는 형이상학적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지(知)와 행(行)에 과불급이 없는 이상적 상태를 중용이라고 하였다.

상황에 적절한 도를 추구하는 중용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성(誠)’의 덕목이 요구된다. ‘성’은 존재의 원리이며 존재의 방식으로 자기 완성이자 타인 완성이다.

성은 내외 양면의 통합 원리이며, 인간의 주체적 참여에 의해 객관적 상황을 알맞게 처리함을 말한다. 이러한 내외합일의 원리는 인간 관계를 통해 달성된다.

그래서 ≪중용≫에는 ‘삼달덕(三達德)’과 ‘오달도(五達道)’라 하여,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형제(昆弟)·붕우(朋友)’ 등을 말하고, 그 실현을 위한 내면적 실천덕목으로서 지·인·용을 일컫는다.

이상에서 고찰한 것처럼 공자의 윤리사상은 제자들에게 전수되었고, 맹자에 이르러 보다 이론화되었다. 맹자의 사덕(四德:仁義禮智)·사단(四端: 惻隱·羞惡·辭讓·是非)은 윤리설의 기반이 되어 후세의 성리학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6. 유교의 정치사상

유교에서는 사람에 토대를 두고 정치제도를 완비하려고 하였다. 사람들의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고 인간다운 생을 누리도록 하며 이를 수호함을 말한다. 그래서 마구간에 불이 났을 때 사람의 안부를 먼저 묻고 말에 대해 묻지 않았다.

사람에 근거한 사람을 위한 정치가 실현되지 않으면 혼란에 빠진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공자는 ‘안인(安人)’과 ‘안백성(安百姓)’을 말하고,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재 배출에 힘썼다. 백성의 안녕과 행복을 성취함이 지대한 임무였고, 이를 저해하는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인의를 근본으로 하는 유교 정치사상의 취지이다.

유교에서는 위정자들이 바람직한 자질을 갖추는 것을 중시하였다. 위정자들이 본래의 사명을 망각·일탈하지 않도록 뚜렷한 목적 의식을 확인시키고 본래의 사명을 일깨워야 한다.

공자는 살상과 투도(偸盜)가 없는 정치를 추구했고, 맹자 또한 백성의 안업(安業)과 인륜을 근본으로 하는 정치를 주장하였다. 이른바 덕치와 왕도로써 인도주의 국가를 성립시키고자 하였다.

유교의 정치사상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양심과 인격을 존중해 그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인간의 주체적 가치가 존중되지 못하던 당시에 덕치주의와 왕도정치는 매우 계몽적인 것이었다.

공자는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어 뭇별이 그것을 향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감화로써 다스리는 것이 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본 것이다.

따라서 공자는 “명령으로 이끌고 형벌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이 법망을 피하려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지만 양심과 인격(德)으로 이끌고 자율적 정신(禮)으로써 질서 있게 하면 백성들이 잘못을 부끄러워해 바르게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공자는 타율적 명령과 형벌에 의한 강제가 아닌, 양심의 자유와 인격의 자율성을 중심으로 한 인도주의의 정치를 주장하였다.

맹자가 살던 당시에는 부국강병과 패권 국가만을 추구하였다. 이에 맹자는 세력과 부만을 추구하기에 앞서 백성을 근본으로 인의(仁義)의 정치를 실현할 것을 여러 왕들에게 권유하였다.

맹자가 말했던 민본주의와 인의에 의한 왕도정치는 유교 정치원리의 근본 정신이다. 나아가 유교는 이권다툼만을 하는 통치자들을 배격하고, 겸양과 애휼보민(愛恤保民)의 정치 원리를 제시하였다.

국가가 잘 성립하기 위해서는 경제적·군사적 요소보다는 백성들의 신뢰가 가장 본질적이라고 보았다. ‘인의’에 입각해 신뢰를 강화하고 통치자의 도덕성을 확립하는 것이 우선적이라고 생각하였다.

다음으로 인간 존중의 원리에 입각한 정치의 양대 지주로서 예와 악을 꼽을 수 있다. 예는─문물 제도 일반을 일컫기도 하지만─ 이성적 질서의 측면이고, 악은 정서적 자유의 측면이다.

예는 이성적이기 때문에 경건한 엄숙성을 강조하고, 악은 정서적이기 때문에 화열(和悅)을 중시한다. 예는 자기 반성적이고 악은 감정을 발산한다. 구심적인 예와 원심적인 악의 양면을 기초로 생활 방식을 운영하면 자유와 질서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유교에서는 개체와 집단의 조화를 추구한다. 공자는 “군자는 널리 소통하되 편당하지 않으며, 소인은 편당하되 널리 소통하지 않는다(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고 하였다. 사사로운 편당성(偏黨性)을 버리고 보편적으로 널리 소통함을 뜻한다.

한편 전체적인 조화는 개체의 특수성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군자는 화합하되 일률적이지 않고, 소인은 똑같이 하되 조화롭지 못하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고 하였다.

유교에서 개인과 국가의 관계는, 개인의 존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 집단에 예속시키는 전체주의적 사고 방식도 아니며, 동시에 개인을 위주로 사회·국가를 무시하는 개인적 방임주의도 아니다. ‘나라에 도가 있다면(邦有道)’ 즉 질서와 자유가 있다면, ‘가까이 있는 이들은 기뻐하고 멀리 있는 이들이 오고자 할 것(近者悅 遠者來)’이다.

훌륭한 국가는 훌륭한 개인들을 보호하는 고향이어야 한다. 개인은 삶의 터전으로서의 국가를 소중히 여기고, 국가를 수호하고자 의인·열사가 된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과의 관계도 이와 동일한 원리의 적용이 요망된다.

유교는 정치를 명실상부하게 운영하기 위해 정명사상(正名思想)을 제시하고 있다.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政者 正也)”이라고 했듯이 정명이란 명분과 사실이 일치함을 말한다.

“임금(君)은 임금답고, 신하(臣)는 신하다우며, 부모(父)는 부답고, 자식(子)은 자식다워야 한다.” 이것이 뒤바뀌면 기강이 무너지고, 기강이 무너지면 백성이 살 수 없게 된다.

공자의 ≪춘추≫는 노나라 242년간(서기전 722∼481)의 정치사를 시비(是非)한 비판서로 유교의 정명사상에 기초해 여러 사례들을 해석하였다.

<이동준(李東俊)>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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