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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8-28 (토)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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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449      
[고려] 최승로 (브리)
최승로 崔承老 927(태조 10)~989(성종 8)

고려 초기의 문신.

유교적 정치 이념을 체계화하여 개혁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성종대의 새로운 국가 체제 정비에 크게 기여했다 (→ 색인 : 고려의 유학).

생애

아버지는 신라 6두품인 은함(殷含)이다. 신라말 경주에서 태어나 935년(태조 18)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할 때 아버지를 따라 고려에 왔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글을 잘 지었다. 12세 때 태조에게 불려가 <논어>를 읽었는데, 태조가 매우 가상히 여겨 염분(鹽盆)을 하사하고 원봉성(元鳳省)의 학생이 되게 했으며, 안마(鞍馬)와 예식(例食) 20석을 하사했다.

이후 주로 문장과 학문 계통의 관직에 종사했다. 광종대에는 중용되지 못했으나 경종대를 거쳐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982년(성종 1) 정광 행선관어사 상주국(正匡行選官御事上柱國)이 되었다. 그해 6월 왕이 5품 이상 경관(京官)에게 봉사(封事)를 올려 시정(時政)의 득실(得失)을 논하게 하자 28조의 시무(時務)를 올렸다. 이듬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가 되었으며, 988년에는 문하수시중(門下守侍中)이 되고, 청하후(淸河侯)로 봉해져 식읍(食邑) 700호를 받았다.

여러 차례 벼슬을 그만두기를 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989년 63세의 나이로 죽자 성종이 몹시 슬퍼하며 포(布) 1,000필, 면(麵) 300석, 갱미(粳米) 500석, 유향(乳香) 100냥 등을 내렸다. 태사(太師)에 추증되었으며, 998년(목종 1) 성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1033년(덕종 2) 대광 내사령(大匡內史令)이 더해졌다.

시무 28조

최승로의 사상은 982년 성종에게 올린 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는 우선 5조치적평(五朝治績評)을 통해 태조에서 경종에 이르는 다섯 왕의 치적을 평가하고, 이상적인 군주의 상을 태조에게서 찾았다. 최승로는 태조가 깊고 원대한 계책, 포섭력, 사람을 잘 알아 등용하고 소원한 사람을 회유하는 역량, 예양심(禮讓心), 넓은 도량을 두루 갖춘 군주라고 높이 평가하고, 성종이 그러한 이상적인 군주로서의 자질과 덕망을 갖출 것을 희구했다.

한편 정치 운영에 있어서는 왕권과 신권 중 어느 한쪽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반대했다.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정치 형태는 군주가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하되, 신권과의 대화를 통한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지며 아울러 어느 한쪽의 독주도 상호 견제할 수 있는 안정된 정치 형태였다.

시무 28조는 당면 과제들에 대한 최승로 자신의 견해를 개진하여 정책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원래 28개조였다고 하나 22개조만 전한다. 내용은 크게 국방, 대호족 정책, 지방 제도 개혁, 복식ㆍ가옥 제도, 중국 관계, 불교, 토착 신앙, 왕실 및 왕자(王者)의 태도 등에 관한 것으로 나누어진다.

우선 국방과 관련하여 제1조에서 북방의 중요한 곳에 요새를 설치하고 그 지역 토박이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여 경군의 수고를 덜 것을 주장했다. 호족 및 공신 세력에 대해서는 제19조에서 그 자손들에게 관직과 품계를 내려 적절히 포용하도록 했으며, 제22조에서는 광종 때 실시했던 노비안검법(奴婢按檢法)의 중단을 건의했다.

이는 광종 때의 숙청을 통하여 약화된 호족 및 삼한 공신(三韓功臣) 세력의 정치적ㆍ경제적 입장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한편 지방 제도의 개혁을 통하여 호족적 지배 기반을 억제하는 조치를 건의했다. 즉 제7조에서 지방의 중요한 지역에 대한 외관 파견을 주장하고, 제12조에서 섬 지역 주민의 부담을 줄이도록 주장했다. 제9ㆍ17조에서는 각기 복식ㆍ가옥 제도를 신분에 맞게 엄격히 운영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중앙과 지방의 유력자들을 국왕 중심의 관료 체제와 봉건적 신분 제도 하에 서열화하려는 의도였으며, 그 정비 기준은 신라 이래의 전통적인 것에서 구했다. 제11조에서는 중국 문물의 수용과 관련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즉 예악시서(禮樂詩書)의 가르침이나 군신부자(君臣父子)의 윤리 등 도덕적ㆍ이념적 측면에서의 기준은 중국의 것을 따르지만, 일상 생활에서는 전통적인 풍속을 따를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제5조에서는 중국과의 사무역(私貿易)을 금할 것을 요구했다.

불교와 관련해서도 여러 조에 걸쳐 언급했다(→ 색인 : 고려의 불교). 제2조에서는 공덕재(功德齋)를 그만두도록 간언하고 있으며, 제4조에서는 군주가 힘쓸 것은 상벌(賞罰)을 분명히 하고 권선징악을 행하는 것이지 작은 보시 행위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제8조에서는 승려의 궁중 출입을 금하도록 요청하고 있으며, 제20조에서는 불교는 내생(來生)을 위해 수신(修身)하는 것이고, 유교는 현재를 위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므로, 현재 필요한 일을 버리고 먼 내생을 위해 힘쓰는 불교에 몰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이는 불교 자체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군주는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 행위를 개인적 신앙에 우선시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정치 이념으로서의 유교의 위치를 확고히 하려는 것이었다.

제10조에서는 승려가 지방에 왕래하면서 관역(館驛)에 머물며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를 금하도록 하고, 제18조에서는 불경과 불상을 만드는 데 금ㆍ은을 쓰지 못하게 할 것을 주장했다. 또 제6조에서는 사원의 고리대 행위를 금지하도록 하고, 제16조에서는 백성들을 부려 도처에서 사원을 세우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할 것을 건의했다.

제13ㆍ21조에서는 산악(山嶽)과 성수(星宿)에 대한 제사나 연등회(燃燈會)ㆍ팔관회(八關會) 등을 제한할 것을 주장했다. 이들 제사나 행사들 때문에 백성들이 괴로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종묘와 사직의 제사가 법도대로 행해지기 어렵게 된다는 것을 반대의 이유로 들고 있다.

왕실과 관련해서는 제3조에서 시위군(侍衛軍)을 축소할 것을 주장했고, 제15조에서도 왕실 소속 노비를 줄이도록 건의했다. 이는 시위군을 대폭 증강시켰던 광종 때와 달리 왕권이 비교적 안정되었던 당시 사정과, 노비보다는 농노로부터 수취하는 것이 유리해진 경제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왕의 태도에 대하여서는 제14조에서 스스로 교만하지 말며, 신하를 예로 대우하며, 죄있는 자는 모두 법을 따라 처리하게 되면 태평한 나라를 이룰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의 시무28조는 고려 건국 후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사상 등 제부문에서의 과도기적 시행 착오를 정리하고 이를 토대로 유교 이념에 입각한 치세(治世)의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서, 성종을 크게 공감시켜 당시 실시된 새로운 국가 체제 정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인물로 본 한국사 : 김철준, 중앙일보사, 1973
인물한국사 2 : 안계현, 전우사, 1965
최치원과 최승로 〈경주사학〉 11 : 김복순, 동국대학교 경주대학 사학회, 1992
최승로의 유교적 이상국가 〈한국사시민강좌 10〉 : 이기백, 일조각, 1992
최승로의 시무책과 유불관 〈동방학지논고〉 : 조남국, 1983
최승로의 상소문에서 보이는 광종대의 후생과 경종원년 전시과 〈고려광종연구〉 : 김당택, 일조각, 1981
고려초기 최승로의 정치사상연구 〈이대사원〉 12 : 하현강, 이화여자대학교 사학회, 1975
신라통일기 및 고려초기의 유교적 정치이념 〈대동문화연구〉 6ㆍ7 : 이기백,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1970
최승로의 시무28조에 대하여 〈조명기박사화갑기념불교사학논총〉 : 김철준, 중앙도서출판사, 1965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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