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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9-02 (목) 09:26
분 류 사전2
ㆍ조회: 486      
[행정] 향리 (브리)
향리 鄕吏

전근대 사회에서 지방 행정 실무를 담당하던 계층.

향리는 고려 시대 군현에서 지방관의 지휘와 통제를 받으면서 민(民)에 대한 조세 수취와 역역(力役) 징발에 관한 행정 실무를 실질적으로 수행했다. 이들은 소속된 군현의 관격(官格)에 따라 부리(府吏)ㆍ군리(郡吏)ㆍ현리(縣吏)ㆍ부곡리(部曲吏) 등으로 호칭되었고, 장리(長吏)ㆍ외리(外吏)로 총칭되었다.

기원

향리라 불리는 세력은 원래 신라 하대 이래 지방에 토착 기반을 가진 촌주(村主) 또는 호족 세력으로, 당시 중앙 정부가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자 이들이 당대등(堂大等)ㆍ대등(大等)과 같은 독자적 행정 조직인 관반 체제(官班體制)를 갖추고 각각 주변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려 건국 직후 중앙 정부는 이들 호족 세력을 국가의 관료 기구 속에 포섭시키는 일련의 적극적인 대책을 펴나갔다. 이에 결국 지방 세력은 외관(外官)을 보좌하면서 실질적으로 군현의 행정 실무를 전담하는 향리층으로 자리잡았다.

고려 시대

고려 시대 향리제는 태조 때부터 일부 지역에서 시행되기 시작했으며, 983년(성종 2)에는 당대등ㆍ대등과 같은 지방 세력의 독자적인 통치 기구를 호장(戶長)ㆍ부호장(副戶長) 등으로 개편한 향리 직제를 마련해 그 제도적인 골격이 형성되었다. 이후 일련의 군현 개편과 함께 향리제는 제도적으로 정비되어갔다.

1018년(현종 9) 군현의 규모에 따라 향리의 정원을 제정했는데, 주ㆍ부ㆍ군ㆍ현의 경우에 최고 84명(1,000정 이상의 군현)에서 각각 61명(500정 이상)ㆍ51명(300정 이상)ㆍ31명(100정 이하)까지, 방어군ㆍ진의 경우 최고 52명(100정 이상)에서 각각 50명(100정 이상)ㆍ29명(100정 이하)을 두었다.

같은 해에 향리의 공복(公服)도 제정했다. 한편 1051년(문종 5)에는 9단계의 승진 규정을 마련했다. 구체적으로 '제단사(諸壇史)-병사(兵史)ㆍ창사(倉史)-주ㆍ부ㆍ군ㆍ현의 사(史)-부병정(副兵正)ㆍ부창정(副倉正)-부호정(副戶正)-호정(戶正)-병정ㆍ창정-부호장-호장'의 순서로 승진했다.

이러한 향리는 크게 호장층ㆍ기관층(記官層)ㆍ색리층(色吏層)의 3계층으로 구성되었다. 호장층은 지방관을 보좌하면서 그의 지시를 받아 기관층 이하의 향리층을 지휘ㆍ통제하는 향리 집단의 수장층(首長層)이었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향직(鄕職)과 동정직(同正職)을 제수받았으며, 수령의 추천(擧望)을 받아 임명되었다.

기관층(記官層)은 부호장ㆍ병정ㆍ창정에서 주ㆍ부ㆍ군ㆍ현 사(史)급에 이르렀으며 조세ㆍ역역 등의 행정 실무를 전담했다. 한편 색리층(色吏層)은 병사ㆍ창사에서 제단사층까지이며, 이들은 기관층을 보좌하면서 잡무를 전담했다. 이들 향리는 국가에 대하여 향역(鄕役)을 지는 대가로 외역전(外役田)을 지급받았으며, 기인(其人)으로 중앙에 선상(選上)되어 역을 부담하기도 했다. 향리는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으나 제술업과 명경업에 응시할 수 있는 계층은 부호정 이상의 손(孫)과 부호정 이상의 자(子)로 제한되었다.

이와 같은 향리 직제 정비와 함께 기인 제도ㆍ 사심관(事審官) 제도 등 중앙 정부의 강력한 향리 통제책은 지방 토호적인 성격의 향리를 국가 관료 말단 기구 내의 유역인(有役人)으로 변모시켰다. 기인 제도는 원래 토호적인 성격의 향리를 견제하기 위해 향리의 자제를 중앙에 머물게 하여 출신 지역의 일에 대한 고문을 맡긴 것이었는데, 그후 기인은 중앙 기관의 잡무를 전담하는 등 사역인으로 전락했다. 이에 따라 기인을 선상하는 자체가 향리의 고역이 되었고, 기인 역(役) 자체도 천역화(賤役化)되었다.

또한 중앙 정부는 중앙의 관료들을 그들의 본관에 파견하여 해당 지역의 향리들을 지휘ㆍ통제하게 한 사심관 제도를 시행했으며, 고려 중기 이후 농민 항쟁, 몽골과의 전쟁 등으로 국가의 역역 동원이 가중되면서 향리들은 과중한 역을 피하기 위해 도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무인 정변 후 무인 집정자들은 시문(詩文)과 행정 사무 능력을 겸비한 능문능리(能文能吏)의 관료를 이상적인 관인층으로 생각함에 따라, 행정 사무 능력을 갖추었던 향리들은 과거를 통해 중앙 정계에 대량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기인 제도, 사심관 제도, 과중한 역부담, 대내외적인 정세 변동 등으로 향리층은 고려 중기 이후 크게 분화되기 시작했으며, 향리제 자체도 동요되었다.

조선 시대

고려 중기 이후 향리 제도가 변하기 시작했는데, 그 추세는 고려말ㆍ조선초에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를 더욱 부추긴 것은 속현과 부곡제의 해체, 군현의 영역 조정과 병합과 같은 대대적인 군현 개편이었다.

속현이나 부곡, 병합된 군현에 거주한 향리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상실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속됨으로써 정치적ㆍ경제적 입지가 크게 축소되었다. 따라서 경제적으로는 1445년(세종 27)에 그들에게 지급되던 외역전마저 철폐되었고, 그 대신 군현 자체 내의 수입 가운데 일정한 삭료(朔料)만을 지급받게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향리층 가운데 기관층의 경우 일부는 6방층(六房層)으로, 나머지는 색리층으로 분화되었다.

또한 정부에서 원악향리처벌법과 부민고소법을 제정하여 향리에 대한 통제를 강화시켜 그들의 입지를 축소시켰고 향리의 차역(差役)도 강화시켰다. 향리는 고유의 향역 외에도 땔나무를 공급하는 시탄공납(柴炭貢納)의 역이 있었다. 비상시를 대비한 군사 편제인 잡색군(雜色軍)에 편성되었으며, 북계 지역이 개척된 이후에는 그 지역의 향리가 입마역(立馬役)인 관군역(館軍役)을 부담하기도 했다.

향리가 전락해가는 현실 속에서, 향촌 사회는 양반 출신의 사족(士族)이 유향소를 통해 각 군현의 행정에서 수령의 자문 역을 맡으면서 사족 지배 체제를 구축했다.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사족이 고려 시대 향리의 지위에 버금 가는 향촌 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함에 따라 향리는 토호적인 성격이 거의 사라지고 사족의 지휘와 통제를 받는 군현의 행정 사역인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나 18세기 중반 이후 생산력의 발달로 인하여 사회가 점차 변화되면서 사족 지배 체제가 무너지고, 그대신 수령권이 강화되어 중앙 정부의 군현에 대한 지배가 보다 강화되어갔다. 이런 추세 속에서 부를 축적한 향리층은 수령층과 결탁하여 부세 수취 기구에 참여하면서 향촌 사회의 새로운 지배 세력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족과 향리층 간에 향촌 지배를 둘러싸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사족층은 자신들의 가계나 집단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사우를 건립하거나 안일방(安逸坊) 등을 설립해 향리 사회를 통제하고 향리에 대한 임면권을 가졌다. 이러한 가운데 향리층 내부에도 상당한 분화가 있었다. 수령권과 결탁한 향리는 이를 계기로 지배 신분으로 편입되었고, 그렇지 못한 향리는 몰락하기도 했다. 특히 수령권과 결탁한 향리층의 지나친 대민 수탈은 19세기 농민 항쟁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박종기(朴宗基) 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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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의 향리 <한국사연구> 5 : 이성무, 한국사연구회, 1970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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