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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9-01 (수) 01:48
분 류 사전2
ㆍ조회: 371      
[고려] 2군6위=이군육위 (브리)
2군6위 二軍六衛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군사 조직인 2군(二軍)과 6위(六衛)를 통칭하여 부르는 말.

고려 시대의 군사 조직을 '2군 6위 체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기원은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정부가 지방의 호족들이 사적으로 유지하던 군사력을 일원적인 중앙군 조직으로 재편성하려고 노력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중앙군 조직의 재편성은 태조 때부터 시도되었는데, 성종 때를 전후하여 지방의 군사력이 해체되고 2군과 6위의 새로운 군사 조직이 마련되었다.

먼저 2군은 태조 휘하에 있던 군사력을 기원으로 해서 6위에 비하여 보다 전문적이고 상급의 군인층으로 충원되었으며, 조직으로는 응양군(鷹揚軍)과 용호군(龍虎軍)의 2개 부대가 있었다. 2군은 근장(近仗) 또는 친종(親從)이라 하여 6위보다 상위의 기구로 인식되었고, 주로 왕실의 친위군(親衛軍) 또는 시위군(侍衛軍)의 임무를 띠었다.

2군 중에서도 특히 응양군의 지휘관인 상장군(上將軍)은 반주(班主)라 하여 무반의 대표자 구실을 했는데, 2군과 6위의 지휘관들인 상장군과 대장군(大將軍)의 회의 기구인 중방(重房) 회의를 주재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군사력의 규모는 응양군이 1령(領)으로 1,000명이었고, 용호군은 2령으로 2,000명이었다.

6위는 성종 때의 군사 제도 정비 과정에서 이전의 군사 조직을 해체하고 번상입역(番上立役)이라는 새로운 충군(充軍) 원리에 의해 충원되었다. 조직으로는 좌우위(左右衛)ㆍ신호위(神虎衛)ㆍ흥위위(興威衛)ㆍ금오위(金吾衛)ㆍ천우위(千牛衛)ㆍ감문위(監門衛)의 6개 부대가 있었다.

이들 중에서 좌우위ㆍ신호위ㆍ흥위위 등 3위는 가장 규모가 크고 핵심을 이루는 실질적인 군사력으로서 이 3위에 소속된 군인 수가 2군과 6위 전체 군인수의 거의 3/4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수도인 개경(開京)의 시위, 출정(出征)과 변방의 방수(防戍) 등이 임무였다. 3위의 조직 내에는 보승(保勝)ㆍ정용(精勇)의 병종(兵種)이 있었는데, 이들은 지방군(地方軍)인 주현군(州縣軍)의 보승ㆍ정용과 번상입역의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좌우위에는 보승 10령, 정용 3령이 있었고, 신호위에는 보승 5령, 정용 2령이 있었으며, 흥위위에는 보승 7령, 정용 5령이 있었다. 금오위는 비순위(備巡衛)라고도 하여 수도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부대였는데, 정용 6령과 역령(役領) 1령이 있었다. 천우위는 의위(儀衛)에서 왕을 시종하는 의장대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상령(常領) 1령과 해령(海領) 1령이 있었다. 감문위는 궁성(宮城) 내외의 여러 문들을 수위하는 수문군(守門軍)이었는데, 부모의 봉양이나 군인 자신의 노쇠, 질병 등 특별한 사정으로 현역에 복무하지 않는 군인들이 임시로 소속되기도 했고, 단지 1령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2군 6위의 각 군과 각 위에는 최고 지휘관으로서 상장군(정3품) 1명과, 부지휘관으로 대장군(종3품) 1명이 각각 있었다. 그리고 각 군과 각 위의 조직 내에서 1,000명의 인원으로 구성되는 1령을 지휘하는 장군(將軍:정4품) 1명과, 장군을 보좌하는 중랑장(中郞將:정5품) 2명이 있었고, 이들 밑에 200명의 부대를 지휘하는 낭장(郞將:정6품) 5명이 있었다. 이들 낭장은 부지휘관으로서 별장(別將:정7품) 1명씩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또한 산원(散員:정8품)도 1명씩 있었다.

그 이하의 하급 장교로는 50명의 군인으로 편성된 부대 단위인 오(伍)를 지휘하는 교위(校尉:정9품)가 있었고, 25명으로 편성된 부대 단위인 대(隊)를 지휘하는 대정(隊正:品外)이 있었다. 이들 무반들은 각각 자신의 등급에 따라 중방ㆍ장군방(將軍房)ㆍ낭장방(郞將房)ㆍ산원방(散員房)ㆍ교위방(校尉房) 등의 합좌 회의 기구를 가지고 있었다.

2군6위 체제는 숙종 때 여진족의 침입을 계기로 윤관(尹瓘)에 의해 별무반(別武班)이 구성되면서 변화되기 시작하여 1170년 무인란 이후 삼별초(三別抄)가 실질적인 군사력으로 기능하면서 유명무실해졌고, 원의 간섭기에는 더욱 그러했다. 이후 공민왕 때에 다시 고려 전기의 군사 제도를 정비하려는 노력이 시도되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조선 초기에 이르러 군사 제도의 정비가 이루어졌다.

참고문헌

조선초기 군사제도와 정치 : 민현구, 한국연구원, 1983
근세조선사연구 : 천관우, 일조각,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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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회의 군호에 대한 소고 <경대사론> 창간호 : 김종현, 경남대학교 사학회, 1985
군사조직 <한국사 5> : 이기백, 국사편찬위원회, 1975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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