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8-27 (금) 09:03
분 류 사전2
ㆍ조회: 382      
[고려] 고려귀족제사회설 (브리)
고려귀족제사회설 高麗貴族制社會說

1970년대 고려 시대 연구자들이 고려 사회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일련의 논의를 진행하는 가운데 제기되었던 학설의 하나.

고려 사회를 귀족제 사회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오랜 연원을 지니고 있다. 1920년대와 40년대에 안확과 손진태가 고려 사회를 귀족 사회로 규정했으며, 해방 이후 우리 학계의 정설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1970년대 관료제 사회설이 새로이 제창되면서 그동안 정설로 보아왔던 귀족제 사회설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양론이 논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귀족제 사회설은 이전보다 확고한 논리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귀족제 사회설이나 관료제 사회설은 모두 고려 시대 지배 세력의 성격이 귀족적인가 아니면 관료적인가 하는 데 초점이 모아져 있어, 이 시기 사회 성격의 전반에 관해서라기보다는 당시 지배 세력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의 성격이 짙었다.

귀족제설은 관직의 세습, 토지의 사적인 영유와 사유, 폐쇄적인 통혼권(通婚圈)의 형성을 제도적인 기반으로 했던 서양의 귀족(Aristocracy) 개념을 원용하여, 고려 시대 지배 세력의 실체를 설명하고자 했다.

먼저 고려 시대 지배 세력 가운데 5품 이상의 관료는 과거 시험을 거치지 않고 음서제를 통하여 그 자손들이 자동으로 관직에 진출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았다. 다음 5품 이상의 관료는 일반 관료와 같이 관직에 나가 일한 대가로 국가로부터 전시과라는 토지를 지급받았을 뿐만 아니라, 양반공음전시(兩班功蔭田柴)라는 토지를 더 지급받았다. 전시과는 관리의 재직기간에 한정하여 지급되었으나 공음전은 자손에게 상속이 허용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왕실이나 유력한 가문과 폐쇄적인 통혼권을 형성, 서로 인척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과 정치적으로 밀착하여 자신들의 가문을 유지하고자 했다. 이들은 혼인 관계를 이용하여 귀족 가문을 형성했으며, 그러한 가문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정치ㆍ경제 기반을 확고히 했다. 이를 달리 문벌 귀족이라고도 했다.

고려의 귀족은 특권 신분층에서 출생하여 그 지위를 자손에게 세습하는 존재였다. 구체적으로 귀족 가문은 5품 이상의 관료가 3대 이상 배출된 가문을 뜻한다. 귀족제 사회설은 이러한 귀족 가문이 당시 고려 국가를 실제로 주도했다는 것이다. 또한 귀족제 사회설은 고려의 귀족 정치가 정점에 도달했던 12세기 무렵에 편찬된 <송사 宋史> 고려전에 나오는 기사―당시 고려에 귀종(貴種:귀족가문)이 존재했는데 구체적으로 유(柳)ㆍ이(李)ㆍ김(金)ㆍ최(崔)씨의 4가문을 거론한 것─를 주요한 실증적 근거로 든다.

귀족제 사회론은 당시 정치 기구와 그 운영 방식에서도 귀족적인 특성이 나타난다고 했다. 즉 고려 시대 국가의 중요한 정책 결정은 당시 귀족들인 재상(宰相)들이 했으며, 정치 기구 또한 그러한 방식에 합당하도록 운영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귀족적인 정치 기구의 존재를 구체적인 예로 들고 있다.

재상은 2품 이상의 관원이었으며, 이들이 소속된 관부(官府)는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宰府)과 중추원(中樞院)이었다. 중서문하성에는 5명의 재신(宰臣)이, 중추원에는 7명의 추신(樞臣)이 각각 소속되었는데, 이 기구가 당시 최고의 권력 기구였으며 이를 귀족적 정치 기구라 했다. 또한 이들이 합좌(合坐)한 재추회의(宰樞會議)에서 국가의 모든 중요한 정책을 결정했다. 이들이 합좌한 회의 기구를 고려 전기에는 도병마사(都兵馬使), 고려 후기에는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라 했다. 한편 재추회의의 구성원이었던 재상은 이(吏)ㆍ호(戶)ㆍ예(禮)ㆍ병(兵)ㆍ형(刑)ㆍ공(工) 6부의 장관직과 국왕에 대한 간쟁과 관리의 비행, 관리의 임면, 풍속의 교정을 관장했던 대간(臺諫)의 장관직을 겸임했을 정도로 이들에게 권력이 집중되었다.

귀족제 사회론은 귀족들의 특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했던 음서제뿐만 아니라 나아가 과거 제도 또한 그러한 기능을 수행했다고 한다. 당시 과거제는 단순히 개인의 인품이나 실력에 입각하여 인재를 선발하는 데 목적을 두었던 것이 아니다. 과거제는 보다 넓은 사회 계층을 중앙 정부에 흡수하여 귀족제 사회를 유지하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고려의 귀족 사회는 성종대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문물 제도가 완비된 문종대를 거쳐 예종ㆍ인종대에 전형적인 모습을 나타냈으나, 1170년(의종 24) 무인 정변으로 무인 세력이 실권을 장악하면서 점차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박종기(朴宗基) 글

참고문헌

고려사의 제문제 : 박용운, 삼영사, 1986
고려사회의 귀족제설과 관료제론 : 김의규 편, 지식산업사, 1985
고려 벌족에 관한 연구 : 황운룡, 친학사, 1978
고려사회의 성격론 <한국사론> 18 : 김의규, 국사편찬위원회, 1988
고려 문음제도의 몇가지 문제 <역사교육논집> 6 : 남인국, 경북대학교, 1984
고려시대의 승음혈족과 귀족층의 음서기회 <김철준 박사 화갑기념사학논총> : 노명호, 지식산업사, 1983
고려전기사회의 성격에 대하여 - 과거 음서출신의 역관분석을 중심으로 <한국학논집> 9 : 한충희,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82
고려시대의 음서제에 대한 재검토 <진단학보> 53ㆍ54 : 김용선, 진단학회, 1982
고려의 과거와 문음제도와의 비교 <한국사연구> 27 : 허흥식, 한국사연구회, 1979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윗글 [고려] 정방 (민족)
아래글 [근대] 수신사 (브리)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260 사전2 [신라] 집사부 (브리) 이창호 2010-08-29 387
259 사전2 [고려] 2군6위=이군육위 (브리) 이창호 2010-09-01 385
258 사전2 [신라] 집사부 (두산) 이창호 2010-08-29 385
257 사전2 [고려/조선] 백정 (브리) 이창호 2010-09-02 383
256 사전2 [고려] 고려귀족제사회설 (브리) 이창호 2010-08-27 382
255 사전2 [고려] 정방 (민족) 이창호 2010-09-21 381
254 사전2 [근대] 수신사 (브리) 이창호 2011-04-24 379
253 사전2 [고려] 3성6부=삼성육부 (브리) 이창호 2010-08-27 377
252 사전2 [조선] 신임사화 (민족) 이창호 2011-02-02 374
251 사전2 [고려/조선] 사대주의 (민족) 이창호 2010-09-08 374
1,,,51525354555657585960,,,8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