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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1-01-23 (일) 18:15
분 류 사전2
ㆍ조회: 360      
[조선] 탕평파 (두산)
탕평파 蕩平派

조선 후기 영조(英祖)ㆍ정조(正祖) 대에 당파 사이의 정치적 균형을 꾀하기 위해 추진한 탕평책에 적극 호응한 인물들.

탕평책은 숙종(肅宗) 후반기에 소론(少論)의 박세채(朴世采)ㆍ최석정(崔錫鼎) 등이 주창하였다. 이어 1724년 영조(英祖)가 즉위한 뒤, 왕권 강화와 붕당(朋黨) 사이의 과도한 경쟁을 막기 위해 노론(老論)과 소론을 구분하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는 완론(緩論) 중심의 탕평책을 추진하면서 시작되었다.

완론은 온건한 정파라는 뜻으로 영조 후반기에는 이들 완론 정파를 중심으로 탕평당(蕩平黨)이라는 정파가 형성되었는데, 이들이 탕평파의 시초이다. 주요 인물은 박세채의 탕평론을 계승한 소론의 이광좌(李光佐)ㆍ조문명(趙文命)ㆍ서명균(徐命均)ㆍ송인명(宋寅明) 외에 노론의 민진원(閔鎭遠)ㆍ홍치중(洪致中)ㆍ김재로(金在魯) 등이다.

이들은 쌍거호대(雙擧互對)를 인사 원칙으로 삼아 한쪽의 인물을 등용하면 반드시 대등한 직위에 상대 당의 인물을 기용함으로써 붕당 간의 의리나 공론(公論)을 부정하였다. 뒤에 조현명(趙顯命)ㆍ원경하(元景夏)ㆍ이주진(李周鎭)ㆍ오광운(吳光運) 등이 가세해 붕당 자체를 타파하자는 유재시용(惟才是用:재주만 있으면 노론ㆍ소론ㆍ남인ㆍ북인을 가리지 않고 등용한다는 원칙)의 탕평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영조 후반기에 탕평파가 정국을 주도하면서 붕당의 의미가 없어지기는 했으나, 탕평파가 새로운 세도가로 부상하고, 노론의 전제화를 불러오는 등 역기능도 생겼다. 영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정조(正祖)도 탕평책을 계승해 노론ㆍ소론은 물론, 재능이 있는 인물이면 서얼도 등용하는 등 영조보다 더욱 적극적인 탕평책을 실시하였다.

특히 정조는 완론과 달리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준론(峻論)을 중심으로 탕평책을 추진하였다. 정조와 함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인 인물은 오광운의 문인인 채제공(蔡濟恭)이다. 그 밖에 노론의 김종수(金鍾秀)ㆍ윤시동(尹蓍東)도 탕평책을 지지하였고, 채제공이 죽은 후에는 이가환(李家煥)ㆍ정약용(丁若鏞)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붕당 사이의 융화나 붕당 자체의 해체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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