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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2-29 (일)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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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권근의 심성론과 성리학 (구춘수)
권근의 심성론을 고찰함으로써 본 조선 전기의 성리학

구춘수 (공군사관학교 교수)

1. 권근의 생애와 학문적 경향

권근(權近, 1352-1409)의 호는 양촌(陽村)이며, 자는 가원(可遠) 또는 사숙(思叔)이라 한다. 그는 고려 공민왕 원년(1352)에 명문 귀족인 안동 권씨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사서집주를 간행하여 성리학을 널리 보급한 권보(權溥)이며, 그의 아버지는 검교정승 영가부원군 청숙공 권희(權僖)이다. 권근의 집안은 증조부 때부터 이름있는 성리학자의 집안이었고, 권근의 학문적 경향도 이와 같은 가풍을 잘 반영하고 있다. 권근의 연보에 의하면 초기(고려 말기)의 중앙 정계 진출은 대체로 순조로웠다고 할 수 있다. 17세에 성균관시에 합격하였고, 18세에 춘추 검열에 제수되었다. 권근은 37세까지는 순탄하게 승진하면서 관리 생활을 영위하였다. 38세(창왕 원년) 되던 해에 예부자문(禮部咨文) 사건이 일어났으며, 권근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황해도 우봉으로 유배되었다. 이 사건은 예부자문을 조작하여 이성계를 중심으로 하는 개혁파 세력을 약화시키려 한 것으로 이 사건의 중심 인물은 이색(李穡)이었다. 권근은 이색의 문인으로서 이색의 정치적 노선을 따랐는데, 그렇다면 그는 급진적 개혁파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392년에 조선이 건국되었다. 이듬해에 이 태조가 계룡산으로 와서, 권근을 부르니, 권근은 이에 응하였다. 태조를 따라서 서울로 올라온 권근은 곧 성균관 대사성에 제수되었다. 그리고 계속 관직이 높아져서 집현전 대제학과 세자이사가 되었다. 권근이 거쳐 온 관직들은 주로 정사(政事)를 담당하는 관직이라기보다는 학문과 관련된 관직이었다.

권근의 학문적 업적을 살펴본다면, 그의 저술로는 입학도설(入學圖說),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 경서구결(經書口訣), 동국사략(東國史略) 등이 있는데, 권근의 성리학 사상을 파악할 수 있는 저술은 입학도설과 정도전의 문집인 삼봉집 (三峯集)에 실려 있는 <심기리(心氣理)>편과 <심문천답(心問天答)>편의 권근의 주해와 오경천견록이라 할 수 있으며, 특히 문집인 양촌집(陽村集)에서도 다수의 글들을 찾아볼 수 있다.

권근은 정도전과 함께 조선의 성리학사에서 특기할 만한 존재로서 그 뒤의 철학 사상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조선 초기의 성리학자 가운데서 가장 체계적인 이해를 보이고 있는 자료를 남긴 사람은 정도전과 권근이다. 특히 권근은 성리학이 가지는 난해한 철학적 내용을 도식으로 잘 설명하여서, 성리학에 입문하고자 하는 초학자에게 좀더 쉽게 성리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점에서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16세기에 정추만의 천명도와 도설에 대한 수정에 의해서 퇴계와 고봉 사이에서 시작된 사단칠정론은 멀리 권근의 도설 및 성리학 이론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권근의 심성론을 고찰하면서, 조선 전기 성리학의 철학적 탐구에 있어서의 경향을 살펴보고, 또한 사단칠정론의 선하(先河)로서 권근의 입장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2. 심(心)에 대하여

권근의 심성론(心性論)의 전체적 면모는 입학도설 에 집중되어 있고, 특히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가 중심되는 도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양촌집 과 예기천견록 그리고 삼봉집 에 나타나는 권근의 주석에서 심성론의 이론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심성론이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심성에 대한 연구라기보다 심성에 대한 이기론적인 설명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서 심성은 인간 행위와 관련되어 있고 또한 행위가 말미암는 곳이기도 하기에, 먼저 행위를 문제삼고자 할 때에 연구되어야 할 대상이다. 특히 성리학은 심성론에 입각하여, 도덕적 행위의 정당성을 밝히는 것을 학문의 주요 과제라고 생각하였다. 권근은 인간의 심성에로 나아가야만 이기(理氣)와 선악(善惡)의 다름이 밝혀질 수 있다고 말하였다. <천인심성합일지도>에 의하면 직접적으로 선악이 구분되어서 드러나는 것은 심(心)에 의해서라고 하겠다. 특히 심(心)에 주어진 성(性)은 이(理)에 연원을 두고 있고, 그러한 이(理)가 굴절없이 그대로 드러나게 될 때에 순수한 선(善)이라고 말할 수 있다. 心에 주어진 이(理)를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뛰어난 인물을 성인(聖人)이라고 하였다. 심성론의 귀결점은 인간 이해에 있으며, 이때의 인간이란 철두철미 도덕적 인간을 이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입학도설 은 만물화생(萬物化生)을 설명하는 우주론보다도 사람의 심성 문제에 관심의 촛점을 맞춤으로써 사람의 사람됨을 강구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고 있다.

입학도설 을 비롯하여, 권근의 저술 속에서는 심(心)이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심성론에서의 성(性)은 독자적으로 따로 논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심(心)을 논의하는 가운데서 성(性)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체로 심(心)은 몸과 대비되는 존재를 지칭하고 있다. 우리의 육신이 단순히 움직이는 개체라고 하면, 심(心)은 육신을 움직이게 하는 작용을 수행한다. 권근도 "심(心)은 그 소종래(所從來)가 천(天)이며, 육신을 주재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아울러 심(心)은 이(理)와 기(氣)가 묘하게 결합된 현상적 존재이며, 신명(神明)이란 작용을 가진다. 대체로 성리학에서는 심(心)을 신체와 신명이란 작용과 관련지어서 묘사하고 있으며, 심(心)이 육신보다 위에 있다는 의미가 아니고, 이(理)를 갖추고 있어서 이(理)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천인심성합일지도>에서는 심(心)을 분해하여, 여러 가지 개념들로 나누어 놓았다. 예컨대 성(性)으로 인의예지(仁義禮智)와 정(情)으로는 측은, 수오, 사양, 시비와 칠정(七情)을 들고 있으며, 의(意)에는 선악의 기틀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천인심성합일지도>에서는 심의 중심되는 작용인 신명이나 허령통철(虛靈洞澈)을 표시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림의 내용들을 설명하는 도설에서는 첫머리에서 신명이나 허령통철을 이(理)와 관련지어서 설명하고 있다.

성리학의 본체론은 이기론이라 할 수 있고, 특히 정주(程朱) 계통에서는 주리(主理)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권근의 성리학 이론들은 충실히 정주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권근은 우주의 보편적인 원리인 이(理)가 심(心)에 갖추어져 있고, 이를 성이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성리학자들의 관심은 성으로서의 이(理)를 어떻게 행위로 나타내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권근은 천인 관계를 심성 관계로 환원시켜 보려고 하였으며, 그리고 천인이나 심성의 합일을 강조한다. 이때의 합일이란 사람과 순수한 이(理)인 천(天)과의 합일이며, 심(心)에 부여된 이(理)가 심(心)에 의해서 실현되는 것이 바로 심성의 합일인 것이다. 성리학의 인간론은 주로 심성 합일을 주제로 하고 있다. 성(性)으로써 주어진 이(理)는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심(心)에 의존하여 자신을 드러낸다. 사람이나 사물에 주어진 이(理)는 모두가 동일한 이(理)이며, 단지 그것을 드러내는 심(心)에 의해서 차이가 주어질 뿐이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심(心)은 이(理)와 기(氣)가 결합된 존재이며, 따라서 심(心)은 활동을 하거나 작용을 가진다. 성리학에서의 인간 이해는 허령통철이나 신명에 모아지고, 이들 작용은 인식을 담당하고 있다. 주자(朱子)는 대학장구(大學章句)에서 심(心)이 가지는 작용을 명덕(明德)이라 하여 명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람이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고, 허령불매(虛靈不昧)한 것으로서 모든 이(理)를 갖추고 있어서, 만사에 응대할 수 있다.

심(心)이 가지는 작용은 '허령통철'한 것으로 신명의 집(장소)이라고 하였고, 허령통철은 이기묘합(理氣妙合)으로 생겨난 작용이다. 대학장구 에서는 명덕을 '허령불매'라 하였는데 권근이 말하는 허령통철과 같은 개념이라 생각된다.

성리학에서는 심(心)은 이(理)와 기(氣)가 결합된 존재이다. 심(心)은 다분히 물질적 토대 위에서 생각되는 현상적 존재로서 작용을 지닌다.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을 옛사람들은 오장육부(五臟六腑)라고 하였는데 오장에 심장이 포함되는 것으로 보아서 심(心)은 물질적 존재로서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심(心)의 '허령통철'한 작용은 성정(性情)을 통섭하는 것이며, 명덕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이(理)를 다 갖추고 있어서 모든 일에 응대할 수 있다고 권근은 생각하였다. 특히 "심(心)이 성정을 통섭한다"고 한 권근의 언명은 '이(理)의 실천'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심(心)에 주어져 있는 이(理)를 성(性)이라 하며, 이(理)는 모든 사물이 공유하고 있는 포괄적인 이(理)이며, 사람에게 내재해 있는 이(理)를 특별히 성(性)이라 한다. 권근은 인간론을 밝히는 자리에서 성(性)을 인(仁)이라고 하였고, "사람은 인(仁)을 체득하여, 심덕(心德)을 온전하게 함으로써 생지리(生之理 : 생명체를 태어나게 하고 자라고 운동하게 하는 원리를 말하며, 권근은 이를 仁이라고 하였다)를 언제나 상존하도록 하여, 상실하지 않도록 하여야만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고 하였다.

"심(心)에 모든 이(理)가 갖추어져 있다"는 언명은 결국은 구체적인 행동을 통하여, 이(理)(生理)가 실현될 때에 심(心)에 이(理)가 '상존(常存)'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됨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심(心)에 갖추어진 이(理)가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왜 이(理)가 잘 실현되지 못하는 것일까? 성리학에서는 사람의 생성은 공허한 이(理)만으로는 될 수가 없고, 반드시 기(氣)의 집합체인 형해(形骸)가 있어야만 이(理)를 실을 수가 있다고 하였다. 사람은 형해로 인하여 사람의 형상을 가지게 되며, 즉 기(氣)의 영향을 받게 되므로 이(理)가 온전하게 실현될 수가 없다. 이(理)는 기품에 얽매이는 바와 물욕에 가리우는 바가 있어서, 심(心)이 작용하게 될 때에 혼미함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주어지는 두 가지의 행위 양식은 이(理)에 비롯되는 행위와 물욕이나 기품에 비롯되는 행위라고 하겠는데, 이러한 행위의 갈림은 심(心)의 두 가지 원천에서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이때에 기품이나 물욕에서 말미암는 행위가 바르게 되기 위해서는, 경(敬)으로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권근은 생각하였다.

심(心)에는 두 가지의 원천 즉 '이지원(理之源)'과 '기지원(氣之源)'이 있으며, 이러한 두 가지의 원천은 심(心)을 이해하는 두 개의 기둥이라고 하겠다. 특이한 것은 이(理)와 기(氣)에서 심(心)의 두 가지 작용을 끌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때의 두 가지 작용은 곧 정(情)과 의(意)라고 하겠다. 그런데 <천인심성분석지도(天人心性分析之圖)>의 심(心)을 설명하는 글에서는 오른쪽의 점은 性을 상징하고, 그것이 발하여 정이 되며, 심(心)의 작용이라 했다. 왼쪽의 점은 심(心)을 상징하고 발하여 의가 되며, 역시 심(心)의 작용이라 하였다. 이때 심(心)은 성(性)에 대립되는 심(心)을 말하며, '심통성정(心統性情)'의 심(心)과는 구별된다. 이러한 설명에서 심(心)의 작용을 정과 의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심(心)의 자형에 따라 설명을 하는데, 권근은 심(心)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가운데 있는 점은 성리지원(性理之源)을 상징하고 있으며, 지원지정(至圓至正)하고 치우치는 바가 없는 심(心)의 체(體)를 말한다. 그 아래에 움푹 패인 요자(凹字) 모양은 가운데가 비어 있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허하기 때문에 모든 이(理)를 갖추고 있다. 그 머리가 뾰족하여 위에서 아래로 내려 간 것은 기지원(氣之源)을 상징하고 있으며, 묘하게 결합하여 심(心)을 만든다. 그 꼬리가 예리하여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은 심(心)이 오행중 화(火)에 속하여, 불의 화염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상징한다. 그래서 광명이 발동하여, 모든 일에 응할 수 있다.

실제로 심(心)의 체는 하나이지만 그 작용은 둘이라고 보았다. 그 작용 중에서 성명(性命)에서 발하는 것을 도심(道心)이라고 하였으며, 도심은 정에 속하여서 처음부터 선한 것이며, 그것이 드러나는 끄트머리는 미미하여 나타나기가 어렵기 때문에 마땅히 주경(主敬)으로 널리 퍼뜨려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심(心)의 작용 중에서 형기(形氣)에서 생기는 것을 인심(人心)이라고 하였으며, 인심은 의에 속하나 그 주어지는 계기에 따라 선과 악이 있게 되고, 그 세력은 위태로우며 때로는 욕망에 떨어지기 쉽기 때문에 인심이라 하여 주경으로써 이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였다. 사람의 심(心)이 표출되는 두 가지 계기는 정(情)과 의(意)이다. 정은 이상적인 심(心)의 작용을 말하며, 예컨대 성인의 경우에만 해당된다. 앞에서 정을 '미미하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 정 자체의 특성이라고 하기보다는 평범한 인간에게서는 미미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라 하겠다. 정(情)은 언제나 이상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만, 반면에 의에서 일어나는 행동에는 선악으로 갈라지는 계기가 주어지며, 그때 이(理)가 실현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도 심(心)의 작용이라 하겠다.

권근은 도심과 인심의 관계를 논하여, "인심은 오직 위태하여 마땅히 주경(主敬)으로써 다스려 이겨야 한다. 인욕(人欲)의 맹아를 막고, 천리(天理)의 바른 것을 확충하여 언제나 도심으로 주인이 되게 하고, 인심으로 도심의 명령을 듣게 한다면 위태한 것이 편안하게 되고, 은미한 것이 드러나게 된다"고 하였다.

천리가 인욕의 세력을 이기지 못하면, "인욕은 날로 성장하게 되고, 천리는 날로 소멸하게 된다. 이 같은 마음의 작용은 정욕과 이해의 일에만 매달리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비록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해도 그 틀림이 금수와 다르지 아니하다"고 하여 사람의 사람다움은 천리(天理)의 확충에 있다고 했고, 이것은 경(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인간을 이해함에 있어서 현실의 평범한 사람들은 인심을 가진 것으로 이해되며, 특히 선악을 선택해야 할 갈림길에서 우리가 선을 택하도록 하는 심리적 기재가 요구되는데, 권근은 그것을 경(敬)이라고 하였다. <천인심성합일지도>에는 선택지로서 선악이 좌우에 포진하고 있고, 그 양자 사이에서 선으로 유도하는 것이 경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경이 가지는 구체적인 행동 양식은 성찰과 존양이라고도 표시하고 있다.

심(心)의 두 가지 작용에서 순수하게 선한 행위와 선악이 있는 행위로 나누어지는 계기가 주어진다. 순수하게 선한 행위는 성에서 도출되는 행위로 사람이 추구하는 실천 목표라고 하겠다. 그리고 심(心)의 두 가지 작용에 의해서 성인과 보통 사람의 구분이 생긴다. 보통 사람도 심(心)에 주어진 작용에 의해서 성인이 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심(心)의 작용, 즉 허령통찰을 잘 사용하기만 한다면 선을 이룰 수가 있다. 그렇다면 심(心)이란 이(理)를 드러내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권근은 심(心)의 인식 기능을 '허령통찰'이라 하였다. 허(虛)와 영(靈)을 설명하여,허해서 모든 이(理)가 갖추어져 있고, 영해서 모든 일에 응대할 수 있다 하였다. 또 심(心)을 설명하면서 거울을 비유로 들고 있는데, 마음의 영이란 거울의 반사하는 능력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영하기에 모든 일에 응대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울이 사물을 반영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이해된다. 영은 기(氣)에서 비롯되는 인식 기능이며, 형기(形氣)에서 파생되는 인심이 도심의 명령을 따라서 바르게 되는 것이 영의 지각이다. 심(心)의 작용 중의 하나인 의가 선악 중에서 선을 실현할 수 있는 것도 심(心)의 인식 기능 때문이다.

권근은 "불교의 심(心)은 외계의 변화에 대하여 수용하는 태도(객관 세계를 가상으로 보기에)를 취하지만, 변화에 대하여 어떠한 대응도 하지않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심관(心觀)은 현실을 도외시하는 소극적인 태도이며, 외부 세계의 변화를 허망한 것으로 보며, 이(理)의 실현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심(心)의 허령통철한 작용만 강조되며, 이러한 세계관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이(理)의 세계관(이(理)가 세계의 확실함을 보증하기 때문에 세계가 허망하지 않음) 확립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심(心)에 이(理)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심(心)이 가지는 허령한 기능들이 한쪽으로 치우쳐 흐르고, 모든 일이 잘못될 수 있다고 권근은 생각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것은 의리(義理)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의리는 인간의 도덕성을 총칭하는 것이라 하겠다. 도덕적 가치를 성립시키는 근거는 이(理)이며, 인간의 도덕성은 이(理)의 실천을 통하여 실현된다고 하겠다. 성리학의 제반 이론들은 이(理)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어떤 경로를 밟아야 하는지를, 달리 표현하자면 이(理)의 인식과 실현을 밝히는 데에 있다. 성리학에서는 인식론보다는 실천론에 치중하였기 때문에 이(理)의 인식 문제는 깊이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심(心)에는 충족적으로 이(理)가 갖추어져 있어서, 인식론에 치중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심(心)은 모든 이(理)가 갖추어진 곳이며, 또한 여러 가지의 다양한 변화에 대하여 언제나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존재로 파악된다. 심(心)의 활동은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사유라든지 의식이라든지 하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기에 단적으로 한정하여 말할 수 없지만, 포괄적으로 '심통성정(心統性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려말과 이조 초기의 성리학자들은 사회의 변화에 대하여 주목하고 있었으며,사회 변화란 인간 행위를 통하여서만 가능하다고 했을 때에 사회의 발전은 곧 이(理)의 실현과 일치한다는 등식이 성립된다. 또한 이(理)는 삶의 이치라고 하였으니, 이(理)의 실현을 통하여 사회 속에서 삶의 보편적 근거를 확립하게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理)의 실천은 개인의 완성뿐만 아니라 역사 발전으로 확대된다고 하겠다.

3. 성(性)에 대하여

권근의 철학에서 성이 강조되는 것은 바로 인간의 본성은 성의 발현을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성이란 항상 우주의 근본 원리인 천명(天命)이 사람에게 내재된 이(理)를 특별하게 부르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정이천(程伊川)은 선악을 묻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본래의 원리가 하늘에 있을 때 명(命)이라 하고, 의와 관계될 때 이(理)라 하고, 사람에게서는 성이 되며, 육신을 주재할 때는 심(心)이라 하는데 이러한 이름들은 모두 하나(근본 원리)를 다르게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권근도 성(性)이란 하늘이 명한 바이고 사람이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며, 생지리(生之理)가 우리 마음에 구비된 것이라고 하였다. 권근의 性에 대한 견해는 정주(程朱) 계통의 견해를 수용한 것이며, 특이한 것은 생지리(生之理)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본질을 논하면서, 단적으로 권근은 사람의 본질을 仁이라고 하였다. 또한 인(仁)을 설명하여 천지가 만물을 태어나게 하는 이치라고 하였다. 앞에서 말한 生之理란 인(仁)을 말하며, 생지리(生之理)의 이(理)는 사람과 사물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보편적 원리이며, 특히 사람에게서는 이러한 이(理)가 심(心)에 구비되어 있으며 이를 성이라고 한다. 글자가 가지는 모양으로 보아도 성이란 심(心)과 生이 결합된 글자이기 때문에 성은 삶과 심(心)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도출된 개념이라고 하겠다. 권근의 철학적 경향을 감안하여 볼 때 삶이란 사회적인 의미를 지닌 개인의 삶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한 개인의 안심 입명(安心立命)을 위한 삶일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이룩하려는 삶이라는 의미이다. 성리학의 삶은 불교나 다른 학파의 삶과 비교하여 현실 지향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하겠다.

또한 권근은 고자(告子), 한자(韓子), 석가가 말하는 성과 성리학에서 말하는 성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고자(告子)는 삶을 성이라고 하였고, 한자(韓子)는 삶과 더불어 주어지는 것을, 석가는 작용을 성이라 하였다. 이러한 성론은 기(氣)에 빠져서 이(理)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라고 권근은 비판하고 있다. 氣에 치우친 삶은 대자적(對自的)이고, 심(心)에 치우친 삶은 즉자적(卽自的)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理)의 인식을 통하여, 이러한 삶들에서 파생되는 결함을 치유할 수 있으며, 이것이 곧 성리학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고자와 한자는 삶과 연결되어 있는 물질적 관계에만 관심을 쏟았고, 삶이 지향해 가야 할 목표는 방기되었다고 권근은 생각하였다.

권근은 성(性)이란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덕목으로 보았다. 또한 인간의 본성을 개념적인 틀 속에 집어 넣어서 이해하려는 정체된 입장을 거부하고 있다. 성리학을 실천 철학으로 이해하고 있는 권근은 성(性)을 드러내는 구체적인 활동(덕목의 실현)을 통하여 인간다움이 확립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구체적인 덕목의 실현을 진심(盡心)이라 하였으며, 진심을 통하여 성(性)을 알게 되고, 지성(知性)은 곧 지천(知天)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고 하였다. 맹자 에서 말하는 진심이란 심(心)의 작용을 온전하게 드러내는 것이며, 성이 이상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말한다. 성의 실현을 통하여 인간이 선한 존재라는 것이 인식되는 경로를 밟는 것이 성리학에서의 인식론적 특성이라고 하겠다. 근원적 존재와 원리에 대한 인식은 진심이라는 실천 활동으로 완성된다. 성리학의 목적은 개인적인 심성의 수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관심이 우주라는 범주로까지 확대될 때 비로소 인간은 우주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즉 인간은 우주와 대등하게 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이 이루어진다고 하겠다.

권근의 성론은 인간성의 규명에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인간의 실천 능력을 강조하여, 그 실천적인 힘을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 쓰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고려 말기의 성리학의 성격을 찾아볼 수가 있겠다. 성(性)에 관련된 이론은 다분히 이기(理氣) 개념에 입각한 형이상학적으로 번쇄한 이론 전개가 아니라, 실천의 당위성을 제공해 주는 근거로서의 이기론에 또다른 의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4. 사단칠정론

권근은 심성론 속에서 용어법이나 논의의 형식이 좀 다르긴 하지만 사단칠정론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엄밀하게 이기론에 입각하여 성정을 논하고 있지는 않지만, 심(心)의 작용을 이(理)에서 비롯되는 것과 형기(形氣)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또 권근은 성과 심(心)을 구별하면서 성은 이지원(理之源)에서, 심(心)은 기지원(氣之源)과의 관계에서 유래한다고 보았다. 심(心)은 이(理)와 기(氣)가 결합된 것이기에 도심으로도 인심으로도 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심(心)은 발하여 정(情)으로도 의(意)로도 갈 수 있다고 하였고, 정은 성(理)에서, 의는 기(氣)에서 비롯된다고 보아 둘을 구별하고 있는 것이다. 정은 순수한 이(理)에서 발하기 때문에 불선(不善)이 없다 하였고, 의는 심(心)에서 발하기 때문에 선악의 기미가 있다고 하였다. 도심은 정에 속하여 나타나기가 어렵기 때문에 미미하다고 하였고, 인심은 의에 속하여 욕망에 떨어지기 때문에 위태롭다고 하였다.

도심, 인심을 이(理)와 기(氣)에 분속하여 말하고 있지만, 성(性)과 심(心)은 이기(理氣)로 반듯하게 나눌 수가 없다. 그리고 심발(心發)에는 선악의 차이가 주어지며, 심(心)의 발함에 있어서 이(理)가 순수하여 기(氣)가 섞이지 않으면, 그 발함에 불선(不善)이 있겠는가 하여, 심발에도 선한 경우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심발에서의 선과 성발에서의 선은 결과적으로 같은 것이지만, 그것의 시작과 과정은 다르다고 하겠다.

사람에게는 삶의 이치로 생지리(生之理)가 주어져 있고, 삶의 이치로서 순수한 이(理)는 성발을 통하여 발현된다. 성발은 정이며, 정은 구체적으로 측은, 사양, 수오, 시비의 사단(四端)을 말하며, 사단의 드러남을 인지단(仁之端), 예지단(禮之端), 의지단(義之端), 지지단(智之端)이라고 하여, 심(心)으로 표현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 이러한 권근의 태도는 심성론에서 심(心)과 성(性)을 구분하는 것과 연관된다고 하겠다.

심자(心字)의 가운데 아랫 부분에다 칠정(七情)인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을 열거하고 있어서, 칠정은 심(心)에서 말미암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칠정은 심(心)의 발현이며, 그래서 선악의 구분이 생기게 된다. 권근은 "칠정은 언제나 선악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 계기를 지니며, 심(心)의 작용인 의에 의해서 선 또는 악으로 이행되어 간다"고 하였다. 사단이나 칠정은 모두 이(理)를 드러내려는 심(心)의 활동에 포함될 수 있다.

권근은 성정에 대한 용어법에서 한자(韓子)나 정자(程子)와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즉 정자의 경우 칠정을 성이라 하고, 그 발한 것이 정이라고 하였으나, 칠정을 성이라 볼 수 없다는 견해를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당나라 한자(韓子)는 성을 연구하면서 예서 (禮書)를 본으로 하였으며, 희노애락애오욕 칠자를 성이라 하였고,발하면 칠정이 된다고 하였다. 정자(程子)도 이를 취하여 말하였다. 요즘 선생(권근)께서 사단을 성발에 소속된다고 하면서, 칠정을 심자(心字) 아래에 열거해 놓은 것은 왜입니까? 권근이 대답하여 "사람에게 있어서 칠정의 활용은 본래부터 당연한 법칙이 있게 마련이다. 칠정이 발하여 중절(中節)하면, 그것은 중용 에서 말하는 달도(達道)의 화(和)가 되니, 어찌 성발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칠정이 발하여 부중절(不中節)한 것은 곧바로 성발이라 말할 수도 없고 사단과 더불어서 가운데 배열할 수 없다"고 하였다.

권근은 칠정도 중절(中節)하면 사단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칠정 중에서 중절하지 못한 정은 성발이 아니라고 하여, 사단과 칠정을 구별하고 있다. 권근은 사단은 순수한 이(理)인 성이 발한 것이기에 순선(純善)한 것이며, 칠정은 선악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단과 구별된다고 하였다. 칠정 중에서 선으로 드러나는 것은 사단과 같은 순수한 선으로 간주될 수 있다. 칠정은 정이되 기품이나 물욕의 방해로 해서 악한 정으로 될 수 있기에 사단과 구분된다. 크게 보면 사단이나 칠정을 심발에 포함시킬 수가 있으며, 사단과 성도 마음 속에 뒤섞여 있으며, 그것이 행위로 쓰여지면 (외물에) 감(感)하는 바에 따라서 동하게 되니, 측은, 사양, 수오, 시비의 심(心)이 되며, 이러한 심(心)이 곧 사단이니 둘이 아니다. 여기서 사단과 심(心)을 둘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선한 행위의 결과로 볼 때에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사람은 밖으로 기질을 품부받아 형(形)을 이루고, 안으로는 이기(理氣)가 결합하여 심(心)이 되니, 심(心)은 성우현부(聖愚賢否)가 같으며, (<천인심성합일지도>에서) 성(聖)·경(敬)·욕(欲) 세 부분으로 나누는 것은 심(心)이 생겨나서 일을 이루는 것에서 선악 고하의 세 단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여, 심(心)의 활용 여하에 따라서 성인이나 중인이 결정된다. 권근에 의하면 선악은 심(心)의 작용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여하에 따라서 결정되며, 물론 심(心)의 작용은 물욕이나 인욕에 의해서 작용을 받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氣)를 악의 근원으로 지목할 수는 없다. 그리고 권근은 이기론에서 이기(理氣)를 좀 색다르게 인식하고 있는데, 이(理)는 무위(無爲)하나 그 영명한 것으로 이(理)를 사용하는 것이 氣라고 하여, 이기(理氣)는 서로 상호 보완적이며, 선악에다 이기(理氣)를 이분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정자(程子)는 심발을 설명하여, "외물(外物)에 감촉되어서 중(中)을 동하게 하므로, 중이 동해서 칠정이 생겨나게 된다. 칠정이 불길처럼 왕성하게 되어 성에 흠집을 낸다. 이렇게 정(情)이 발하는 것은 성발이라고 할 수 없으니 잘 관찰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칠정은 순수한 성을 다치게 하여, 성을 온전하게 발현하지 못하도록 해서, 부중절(不中節)함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심(心)의 지각 작용이 사단을 체(體)로 하고있는 한 칠정의 발현은 모든 사물의 이치를 관장하게 된다고 하여, 칠정이 사단과 일치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다. 이때에 칠정이 선하게 되는 것은 심(心)의 지각 작용과 체로서의 사단 때문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권근의 사단칠정론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⑴ 사단과 칠정을 이분법적으로 이(理)와 기(氣)에 연결시키지 아니하였다. 사단은 성이 발하여, 칠정은 심(心)이 발하여 된 것이라 하였고, 사단은 무불선(無不善)한 것, 칠정은 유선유악(有善有惡)한 것이라고 하였다.

⑵ 따라서 사단과 칠정은 서로 독립된 개념들이며, 사단을 칠정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물론 칠정이 사단으로 발전해 갈 수 있고, 그러할 경우 성발이라 하였지만, 권근의 경우에 있어서 사단과 칠정을 명백하게 구분하고 있다.

⑶ 사단과 칠정은 성발과 심발에 의해서 설명되기 때문에 이발(理發) 기발(氣發)이라는 용어의 사용이 불필요하였고, 또한 퇴계가 고심하던 이발(理發)이라는 논리적 모순은 야기되지 않았다. 이(理)는 언제나 체(體)로서 존재하며, 작용이 주어지지 않았다.

⑷ 심성론을 논함에 있어서 권근은 주리론에 서 있고, 그리고 사칠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는 점을 들어서 퇴계 철학의 선구로서 권근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다.

5. 맺음말

우리는 권근의 심성론을 간략하게 고찰해 보았다. 성리학의 목적이 심성론의 이기론적인 해명에 있다고 했을 때, 권근의 철학은 그를 성리학자로 부를 수 있을 만큼 이기론적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

권근의 심성론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기론에 입각한 인간론이라 하겠는데, 특히 이(理)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고 있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인간에게 주어진 理致(生之理)로서 仁을 실현함으로써 그것을 언제나 상존하게 하는 데에 있다고 본 것이다.

이(理)의 실천을 설명해 내기 위한 심성론에서의 심(心)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다른 성리학자와 비교하여, 권근은 심(心)을 대단히 중요시하고 있음을 논의를 통하여 알 수 있는데, 그 핵심은 '심(心)의 체는 하나인데 그 작용은 둘'이라는 언명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체는 성(性)을 의미하며, 성은 순선(純善)하다. 심(心)은 성(性)을 체로 하면서도 심(心)의 작용을 둘로 구분하여, '도심과 인심'이라고 하였다. 또한 심(心)의 작용은 순수히 선으로만 발현되지 않음을 밝히고 있으며, 인심에는 유선유악(有善有惡)한 측면이 있는데, 이를 도심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에서 인간의 고귀함을 찾고 있다. 체(體)로서의 성(性)이 선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 작용에는 선악이 있게 됨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논의는 이기론으로 환원된다. 순수한 선으로서의 이(理)가 기(氣)의 영향을 받아서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있음을 인간의 특성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심(心)의 작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이 사단칠정론이다. 권근은 사람에게 주어진 이(理)가 제대로 실현될 수 없는 이유를 밝히면서, 심발(心發)에서의 의(意)의 의미를 새롭게 밝히고 있다. 심(心)에서 발하는 칠정은 의(意)의 작용을 매개로 선으로 유도될 수 있으며, 선으로서의 정은 성발(性發)인 사단과 동일한 정(情)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사단과 칠정을 분명하게 구분하며, 심(心)의 작용은 이(理)를 실현하는 것을 위주로 한다는 주리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서, 퇴계의 철학에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전 : http://my.netian.com/~dk628/etc/mind.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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