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8-29 (일) 17:50
분 류 사전2
ㆍ조회: 326      
[고려] 고려시대의 과거 (브리)
고려시대의 과거

관련 문서 : 조선시대의 과거

우리 나라에서는 958년(고려 광종 9)에 중국 후주(後周)의 귀화인 쌍기(雙冀)의 건의에 의해서 시행되었다.

고려의 과거 제도는 크게 제술과(製述科)ㆍ명경과(明經科)ㆍ잡과(雜科)ㆍ승과(僧科)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제술과와 명경과를 중시해서 양대업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전자는 유교 사상에 입각한 여러 가지 글을 짓는 시험이었고, 후자는 유교 경전을 해석하는 시험이었다.

잡과는 여러 분야의 기술관들을 등용하기 위한 시험이었다. 우선 법률 전문가를 뽑는 명법업(明法業), 계산을 전문으로 하는 명산업(明算業), 글씨쓰기를 위한 명서업(明書業), 의학의 의업(醫業), 점치는 것을 담당한 주금업(呪禁業:卜業), 풍수의 지리업(地理業), 그밖에 이속(吏屬)을 선발하는 하륜업(何論業)ㆍ삼례(三禮)ㆍ정요업(政要業) 등이 있었다.

승과는 승려들에게 승계를 주기 위해 실시했는데, 교종시와 선종시로 나누어져 있었다. 1390년(공양왕 2)에 무신을 선발하기 위해 무과를 설치했으나 실제적으로 운영되지 못한 채 고려가 멸망했기 때문에 없었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고려 초기 과거 시험에는 예비 시험인 학교시가 발달되지 않았는데 이것은 학교 제도와 지방 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앙의 국학생(國學生:士貢)과 지방에서 천거하는 호족 자제(豪族子弟:鄕貢)들이 아무런 예비 시험을 거치지 않고 직접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도 정비가 이루어짐에 따라 각종 예비 시험이 생겨나게 되었다. 1024년(현종 15) 각 지방에서 시행하는 예비 시험(1차시험)인 향시(鄕試:界首官試)가 생겼는데, 이것을 통과한 자는 개경의 국자감에서 재시험을 보아 합격하면 본시험인 예부시(禮部試)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받았다.

또한 귀족 관료의 자제들만 입학할 수 있었던 국자감 유생들은 일반 응시자들과 달리 별도의 예비 시험을 보았는데, 이를 국자감시(國子監試)라고 부르며, 1031년(덕종 즉위)에 설치했다. 1147년(의종 1)부터 시행한 승보시(升補試)는 국자감이라는 최고의 교육 기관 안에서 상사(上舍)에 진급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고시였다.

과거 시험 절차를 보면, 초기에는 계수관시에 합격한 향공진사, 개경시(開京試)ㆍ서경시(西京試)의 통과자, 관직에 있는 자, 국학생, 사학(私學)인 12도생(十二徒生)들은 본고사의 예비 고사인 국자감시에 응시해서 합격할 경우에만 본시험인 예부시(일명 東堂試)에 응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과하면 국왕이 주재하는 복시(覆試:親試)를 치렀는데 이것은 예부시 급제자의 순위만을 결정하는 시험으로 상설되어 있던 것이 아니었으므로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와 같은 체제는 1369년(공민왕 18)에 이르러 중국 원(元)의 제도를 모방한 향시(鄕試)ㆍ회시(會試)ㆍ전시(殿試)의 과거삼층제(科擧三層制)로 바뀌었다.

시험 시기를 보면, 1084년(선종 1)에는 3년에 1회씩 시험을 치르는 식년시제(式年試制)를 채택했으나 그대로 시행되지 않았고, 수시로 필요에 따라 실시했다. 본고사의 최종 시험에 합격한 자에게는 홍패(紅牌)를 지급했다. 과거 시험관을 지공거(知貢擧)라고 하고 합격자를 문생(門生)이라고 부르는데, 양자 사이의 관계는 부자 관계와 같아 평생 동안 지속되었으며, 그들 사이에 학벌이 형성되어 출세의 배경이 되었다.

과거의 응시 자격은 규정상 노비와 같은 천인들과 불효ㆍ불충 등의 큰 죄를 지은 자 및 일부 향리들을 제외한 양인 이상 신분은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고, 응시자 중에서 재능있는 자를 선발하여 등용한다고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 지배층 내부에서도 엄격한 신분 제한을 가함으로써 일부 제한된 문벌 출신만이 합격해서 높은 관직을 차지했다.

특히 좌주(坐主)와 문생 간의 관계는 이러한 조건들을 더욱 더 촉진시켜서 권세가들이 권력을 독점할 수 있게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통치 체제를 문란케 하는 요인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도 고려 말기의 제도와 역대 중국 왕조의 시행 방식을 고려하여 자기 나름대로 과거제를 채택ㆍ운영했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1 '과거' 항목에서
   
윗글 [고려] 척준경 (민족)
아래글 [고려] 최의 (두산)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210 사전2 [조선] 갑술옥사=갑술환국 (브리) 이창호 2010-11-30 325
209 사전2 [고려] 북진정책 (민족) 이창호 2010-10-01 325
208 사전2 [고려] 척준경 (민족) 이창호 2010-09-01 325
207 사전2 [고려] 최의 (두산) 이창호 2010-09-29 323
206 사전2 [조선] 탕평정치 (두산) 이창호 2011-01-23 322
205 사전2 [고려] 중방 (두산) 이창호 2010-09-21 320
204 사전2 [조선] 조선2 (두산) 이창호 2010-12-08 319
203 사전2 [고려] 교정도감 (민족) 이창호 2010-09-21 319
202 사전2 [고려] 중방 (한메) 이창호 2010-09-21 317
201 사전2 [고려] 강동육주=강동6주 (브리) 이창호 2010-09-14 317
1,,,51525354555657585960,,,8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