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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9-21 (화) 22:14
분 류 사전2
ㆍ조회: 320      
[고려] 교정도감 (민족)
교정도감 敎定都監

고려 후기 무신 집권 하의 최고 권력 기관. 일명 교정소(敎定所)라고도 한다.

[설립 경위]

1209년(희종 5) 4월, 정권을 장악한 최충헌(崔忠獻) 부자를 살해하기로 모의했던 청교역(靑郊驛 : 경기도 개풍군)의 역리와 승도 등을 수색, 처벌하기 위해 영은관(迎恩館 : 개성 흥국사 남쪽)에 설치했던 임시 기구였다.

그러나 그 뒤 최충헌의 반대 세력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무신 정권 하에서 계속 존속해 서무(庶務)를 관장하고, 모든 지시와 명령을 내리는 등 국정을 총괄하는 중심 기관이 되었다.

[기능]

국가의 비위에 대한 규찰과 전국의 공물과 특별세 등 세정(稅政) 사무 및 인사 행정을 담당하였다.

규찰 기능은 교정도감의 설치 배경이 비상 시국에 대처하기 위함이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으며, 실제로 1257년(고종 44) 몽고로 도망가려던 별장 이성의(李成義)ㆍ유거(劉巨) 등이 이양(李陽)의 고발에 의해 교정소에 잡혀 죽음을 당하였던 실례를 찾아볼 수 있다.

1250년 최항(崔沆)이 교정별감의 공첩으로써 청주ㆍ안동ㆍ경산(京山 :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ㆍ해양(海陽 : 지금의 경상남도 남해) 등지의 각종 별공(別貢)과 금주(金州 :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ㆍ홍주(洪州) 등지의 어량(魚梁) 및 선박세(船舶稅)를 면제하게 하고, 또 각 도에 파견한 교정도감의 수획원(收獲員)을 소환하게 하는 한편, 그 일을 각 도의 안찰사에게 위임해 인심을 수습하도록 하였다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교정도감은 전국의 공물과 특별세 등 세정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1227년 최우(崔瑀)가 교정도감을 시켜 금내육관(禁內六官)에 통첩해 과거 급제자로 아직 관직에 오르지 않은 자 가운데 재행(才行)이 있는 자를 천거하도록 한 사실로 보아, 인사 행정에도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1227년은 최우가 인사 행정 담당 기구인 정방을 설치한 2년 뒤이기 때문에, 이 때는 천거권 뿐이었는지 모르지만 정방(政房) 설치 이전에는 인사 행정권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밖의 기능으로는 1228년 자혜원(慈惠院)을 짓기 위해 강음현(江陰縣)에서 목재를 벌채하였는데, 그 감독관이 이를 금하고 벌채한 목재를 몰수하자, 이 절을 짓던 승려가 최우에게 청해 교정도감의 공첩을 얻어내고, 또 최우에게 호소해 그 관리를 멀리 귀양보냈다는 사실에서 지방 행정에까지도 영향이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용]

교정도감은 비상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기구였지만 그 뒤로도 권신들의 중추부적 구실을 하는 정청(政廳)이 되어 강력한 기능을 발휘하였다. 그리고 그 장(長)인 교정별감은 원칙적으로 장군의 직위에 있는 자만이 임명될 수 있었다. 형식상으로는 왕으로부터 임명되었으나 실제로는 최고 무신 집권자가 자동적으로 계승하였다.

즉, 교정도감을 세운 최충헌이 스스로 교정별감이 된 뒤, 아들 최우가 그 직을 계승하였고, 최항 및 최씨 정권을 무너뜨린 김준(金俊)과 임연(林衍)부자도 교정별감에 임명되고, 그 직권으로써 일국의 정치를 좌우하였다.

그런데 교정별감이 비록 형식적이나마 다른 관직과 마찬가지로 국왕에 의해 임명되었다는 것은 국왕이 이들 권신의 집권을 합법화해 주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데 있었다고 하겠다.

이처럼 무신 집권 시대에 국왕의 권력보다도 상위에서 국정을 마음대로 천단하던 교정도감도 1270년(원종 11) 당시의 집권 무신 임유무(林惟茂)가 피살됨과 동시에 소멸되었다.

[의의]

교정도감은 무신 집권기에 존립했던 다른 지배 기구보다도 더 큰 의의를 가지고 있었다. 즉 무신 집권 초기에는 무신의 합좌 회의 기관인 중방(重房)에 의해 정치가 행해졌는데, 이는 집단적 정권 장악에 의한 지도 체제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경대승(慶大升)의 도방(都房)이나 최씨 집권기의 교정도감은 지도 체제가 일인 체제로 바뀌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방이 일인 체제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등장한 기구라고 한다면, 교정도감은 일인 독재에 영합된 체제로 무신 집권기의 정치 지배 기구의 성격을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내 준 기구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武人政治機構考(金庠基, 東方文化交流史論攷, 1954), 高麗後期의 武班에 대하여(邊太燮, 서울대학교논문집 12, 1966), 崔氏政權의 支配機構(閔丙河, 한국사 7, 1981).

<변태섭>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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