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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8-29 (일) 20:03
분 류 사전2
ㆍ조회: 313      
[고려] 상서 (민족)
상서(尙書)

고려 시대 상서성의 정3품 관직.

995년(성종 14) 이부ㆍ병부ㆍ호부ㆍ형부ㆍ예부ㆍ공부 등 상서6부가 정비된 이후, 문종 관제에서 각 부에 정3품, 정원 1인의 관직으로 고정되었다. 형식상으로는 상서6부의 장관이지만, 중서문하성의 재신(宰臣)이 각 부의 판사를 겸임한 탓에 그 기능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상서6부가 독립성을 잃고 중서문하성에 예속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상서성의 좌우복야(左右僕射)와 함께 8좌(座)라 일컬어지면서 곧 재추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우위직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추밀원의 추신(樞臣)이 겸임하는 경우도 많았다.

1275년(충렬왕 1) 상서성이 폐지되고, 6부가 전리사(典理司)ㆍ군부사(軍簿司)ㆍ판도사(版圖司)ㆍ전법사(典法司) 등 4사로 개편되면서 각 사의 판서(判書)로 고쳐졌다. 1298년 충선왕이 즉위해 관제를 개혁할 때, 4사가 전조(銓曹)ㆍ병조ㆍ민조(民曹)ㆍ형조ㆍ의조(儀曹) 등 5조로 개편되자 판서도 각 조의 상서로 바뀌었다.

이때 병조의 경우, 정원이 2인으로 늘어나고, 그 가운데 하나는 반주(班主)가 겸하도록 되었다. 같은 해 충선왕이 퇴위하자 다시 4사 체제가 들어서고 상서는 판서로 개칭되었다. 그러다가 1308년 충선왕의 복위와 함께 4사가 선부(選部)ㆍ민부(民部)ㆍ언부(嵋部)로 개편되면서는 각 부의 전서(典書)로 되었다.

그 정원은 1인이었지만 언부만은 2인이었다. 그 뒤 1327년(충숙왕 14) 다시 4사가 두어지고 전서는 판서로 환원되었다. 1356년(공민왕 5) 반원개혁으로 문종 관제가 복구되면서 상서6부가 부활되고 다시 상서로 고쳐졌다.

그러나 1362년 상서6부가 이전의 4사에 예의사(禮儀司)와 전공사(典工司)를 합친 6사로 바뀌었다. 따라서, 상서도 판서로 되었다. 이것이 1369년 상서6부의 상서로 다시 고쳐졌다가 1372년 6사로 되면서 판서로 되돌아갔다. 1389년(공양왕 1)에는 6사가 이조ㆍ호조ㆍ예조ㆍ병조ㆍ형조ㆍ공조 등 6조로 재정비되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1392년(태조 1) 각 조에 전서 2인씩이 두어졌다. 그러다가 1405년(태종 5) 전서가 혁파되고 판서가 설치되어 정2품 정원 1인의 관직으로 고정되었다. 따라서, 고려 시대의 상서가 조선 시대의 6조 판서의 전신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太祖實錄, 太宗實錄, 經國大典.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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