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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9-01 (수) 17:32
분 류 사전2
ㆍ조회: 306      
[고려] 제술과 (한메)
제술과 製述科

고려 시대 과거(科擧)의 하나.

제술업(製述業) 또는 동당시(東堂試)라고도 한다. 시험 과목은 958년(광종 9) 처음 실시될 당시 시(詩)ㆍ부(賦)ㆍ송(頌)ㆍ시무책(時務策)이었으나 1004년(목종 7)에 경(經)이, 19년(현종 10) 이후에는 논(論)이 추가되었다. 시험은 6과목을 모두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3장(場)에 걸쳐 보통 3ㆍ4과목이 출제되었다.

3장 가운데 가장 중요한 종장(終場)은 충렬왕 이후 공민왕 초기까지는 책문(策問) 중심으로, 1367년(공민왕 16) 이후는 경학 중심으로, 우왕 때에는 다시 시ㆍ부로, 공양왕 이후에는 다시 경학 중심으로 환원하였다. 시와 부는 오늘날의 문학에 가까우며 거의 모든 시기에 출제되었으나, 정치나 철학적 사고체 계를 소홀히 하는 학풍에 젖게 하는 폐단도 있었다.

송은 영웅적이거나 상서로운 일들을 찬미하는 문체였는데 중기 무렵부터 페지되었다. 시무책은 당세(當世)의 급무에 관한 방책을 제시하는 것인데 후기에는 책문으로 바뀌었다. 시무책이 제한 없는 시정 개혁 상소(時政改革上疏)인 반면 책문은 제한된 문제에만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경학은 1004년 《예경(禮經)》을 첩경(貼經)하였고, 1121년(예종 16)부터는 육경(六經;詩經ㆍ書經ㆍ周易ㆍ禮記ㆍ春秋ㆍ周禮)을 출제하였다. 이어 1344년(충목왕 즉위년)부터 사서의(四書疑)를 출제하여 사서가 공식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사서의는 안향(安珦)이 중심이 되어 출제하였는데 이는 국학 교육의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논은 역사적 사실이나 경 가운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부분에 주관적인 견해를 덧붙여 설명해 나가는 것이다.

제술과는 갑(甲)ㆍ을(乙) 2과가 있었는데, 갑과의 1등 합격자를 장원(壯元), 2등을 아원(亞元) 또는 방안(榜眼), 3등을 탐화(探花)라 하였다. 고급 관리의 등용문인 제술과는 양반의 자제들만 응시할 수 있었으며 대체로 주ㆍ군ㆍ현의 차관인 부호장(副戶長) 이상의 자제를 기준으로 하였다. 이는 호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중앙 집권화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한편 무신난 이후에는 급제자가 중앙 관부나 지방관에 등용되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문한관(文翰官)에 무인이 등용되는 등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시가와 문장 중심의 제술과는 후기로 가면서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점차 경학이 중시되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유교 경전을 중시하는 명경과(明經科)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박경하>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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