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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9-21 (화) 17:43
분 류 사전2
ㆍ조회: 299      
[고려] 도방 (브리)
도방 都房

고려 무인 정권기(武人政權期)에 무력 지배 기구로 새로이 조직된 사병 집단.

무인 정권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절대적인 배경은 사적인 무력 집단이었는데, 당시 사적인 무력 집단으로는 도방 이외에도 삼별초(三別抄)와 마별초(馬別抄)를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조직적인 사병 집단이 생기기 이전에도 유력한 무장들은 제각기 사병을 소유하고 있었다.

사병은 사료에 문객(門客)ㆍ가동(家)이나 악소(惡少) 또는 사사(死士)ㆍ용사(勇士)ㆍ장사(壯士) 등으로 표현된 사람들인데, 신변의 보호나 정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도방은 그와 같은 단계를 넘어서서 사병으로 조직된 하나의 기구이다.

도방을 처음 조직한 사람은 1179년(명종 9) 정중부(鄭仲夫) 일파를 제거하고 집권한 경대승(慶大升)이었다. 그는 정권 탈취 과정에서 대부분의 무인들을 적으로 돌려야 했기 때문에 신변 보호를 위하여 결사대 백수십 명을 불러모아 사제(私第)에 머물게 하고, 이를 도방이라 불렀다. 이 도방은 1183년(명종 13) 경대승이 죽자 곧 폐지되었다.

그러나 최충헌(崔忠獻)에 의해 그전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규모로 재건되었는데, 이후 최씨 정권을 지탱하는 중요한 무력 기반이 되었다. 최충헌은 이의민(李義旼)을 타도할 때부터 사병을 많이 양성했으며, 1200년(신종 3) 6번도방(六番都房)이란 이름으로 사병제(私兵制)를 권력 기구의 하나로 제도화했다.

최충헌의 도방은 그의 아들인 최우(崔瑀)에 이르러 내외도방(內外都房)으로 확대ㆍ개편되었다. 이때 내도방은 최우 자신이 거느리던 가병(家兵)으로 조직하고, 외도방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도방을 재편한 것 같다. 임무도 구별되어 내도방은 주로 최우와 그의 저택에 대한 호위를 맡았고, 외도방은 주로 친척과 기타 외부에 대한 경비를 담당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 편성은 6번도방처럼 내외도방 모두가 각기 6번(番)으로 조직되어 분번 체숙(分番遞宿)했으리라 짐작된다. 이는 다음 집정인 최항(崔沆) 때 36번으로 확장되었다가 최씨 정권이 무너지고 김준(金俊)이 집권한 뒤에 종래의 6번제로 되돌아갔다.

임무는 주인인 무인 집정의 신변을 호위하고 그 집권 체제를 무력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한편 이곳 소속의 도방원이면서 국가의 공적인 관직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도방과 같은 사병의 확충은 국가의 공적인 병제가 무너지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도방은 무인 집정의 사병 집단이었기 때문에 무인 정권의 몰락과 더불어 해체되었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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