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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12-08 (수)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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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조선5 (두산)
조선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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Ⅸ. 종교

조선은 성리학을 치국의 지도이념으로 내세움으로써 어느 왕조보다도 뚜렷한 유교국가(儒敎國家)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었으나, 유교가 종교의 기능을 담당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초기에는 불교ㆍ도교ㆍ민간신앙을 국가신앙으로 다시 흡수하기도 하였으나, 16세기 이래 사림에 의한 성리학이 융성하면서 교조주의화하자, 다른 일체의 사상과 종교를 이단(異端)과 사교(邪敎)로 규정, 유교에서의 조상숭배 사상을 종교적 단계로 끌어올려 제사를 매우 중시하였다. 그리하여 종교활동은 민간에서 전승되었다.

1. 불교

배불주의(排佛主義)를 내세운 조선은 고려에서 폐단이 심하였던 불교를 교(敎)ㆍ선(禪) 양종으로 통합하고, 사찰의 수효를 대폭 줄이는 동시에 사원의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여 불교의 사원경제를 약화시키고, 도첩제(度牒制)를 실시하여 승려의 수를 제한하였다. 그러나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축원하는 종교행사는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불교경전을 새로이 간행하고 언해(諺解)에 힘썼다.

세조 때의 간경도감(刊經都監)은 불경을 언해하기 위하여 설립한 기구이다. 또한 국왕 중에도 태조ㆍ세종ㆍ세조는 개인적으로 불교를 신봉하였다. 그러나 점차 그 세력이 약화되어 민간 부녀자층에 의해서 겨우 명맥이 유지되었다. 그 후 명종 때에 문정왕후(文定王后)가 그 보호에 힘썼고, 임진왜란 때 휴정(休靜)ㆍ유정(惟政) 등이 교세를 확장하고 의병운동에 참여하여 호국불교로 인정받기도 하였으나 사림들에 의한 배척이 강화되면서 점차 산간 불교로 밀려났다.

2. 도교

도교도 불교와 마찬가지로 조선 초기에 난립된 도관(道觀)을 정비하여 소격서(昭格署)로 하여금 제천행사를 주관하게 하였는데, 마리산의 초제(醮祭)가 가장 유명하다. 소격서에서는 도학(道學)을 잡학의 하나로 가르치고, 도류(道流)라는 관리를 두어 도교행사를 집행하게 하였는데, 세조는 특히 도교를 숭상하였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와서 사림에 의해 도교 배척운동이 일어나 소격서가 폐지되고 조정으로부터 소외되어 갔는데, 다만 왜란을 전후하여 일부 재야 지식층은 도교를 신봉하면서 사대(事大)와 문약에 빠진 성리학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도인(道人)들은 환인(桓因)ㆍ단군을 한국 도교의 시조로, 김시습(金時習)을 중조로 각각 내세우면서 점차 독자적인 계보를 형성하여 일반 서민들에게 큰 영향과 자극을 주었다. 도교와 관련된 예언사상은 각종의 비기(秘記)ㆍ참서(讖書)에 반영되어 《정감록(鄭鑑錄)》 《토정비결(土亭祕訣)》 등이 민간에 널리 유행하였다.

3. 무격신앙

고대로부터 전승되어 온 민간신앙으로부터 민족종교의 바탕이 된 무격신앙(巫覡信仰)은 조선시대에 들어서 유교의 합리정신 때문에 크게 위축되었으나, 그 민족자각적인 측면과 의술적인 측면은 국가의 보호를 받았다. 예컨대, 환인ㆍ환웅ㆍ단군은 옛날부터 조물주이자 인간 길흉화복의 주재자로서 민간에 널리 신앙되어 왔고, 황해도 구월산에는 이른바 삼신(三神)을 제사하는 삼성사(三聖祠)가 전부터 있었는데, 고려 말 조선 초에 단군이 국조(國祖)로 인식되면서 조선 초기에는 삼성사에 대한 제사를 국가에서 주관하였다.

무당에 의한 질병치료는 민간에 많은 폐단을 일으켜, 조선 초기에는 미신이 억제되면서 보다 과학적인 치료법이 개발되었으나, 무당 치료가 지닌 긍정적 요소를 흡수하여 이를 국가의 각종 제사와 질병치료에 부분적으로 원용하였으며, 이들을 국무당(國巫堂)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사림의 집권으로 미신으로 배척되어 민간신앙으로서만 전승되었다. 진료수단이 거의 없고 문맹이 극심한 서민사회에서는 무당이 곧 길흉화복의 주재자로서 맹신되었다.

4. 천주교

조선왕조 18세기 후반에 이익의 문인들을 중심으로 한 일부 학자들은 서학(西學)에 대한 학문적 이해를 넓혔는데, 그 중의 일부는 신앙의 차원에서 천주교를 믿기 시작하였다. 이벽(李檗)ㆍ이가환(李家煥)ㆍ이승훈(李承薰) 등은 천주교를 신봉한 대표적인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유교의 근본원리인 충효(忠孝)를 바탕으로 하여 천주교의 구세복음사상(救世福音思想)을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윤리체계를 수립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중인(中人)ㆍ상민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전개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이리하여 천주교는 서양의 선교사가 들어오기도 전에 주체적으로 수용되어 신앙의 터전을 닦았으나, 신자가 늘어갈수록 유교적 전례문제와 기존 가치관과의 갈등을 보였다.

또한, 만민평등을 주장하여 양반 중심의 신분질서에도 위협을 주게 되어, 마침내 조정에서는 사교로 규정하여 금령을 내리고, 순조 때의 신유교난(辛酉敎難), 헌종 때의 기해교난(己亥敎難), 고종 때의 병인교난(丙寅敎難) 등 세 차례의 큰 박해를 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세는 갈수록 번성하여, 1821년에는 조선교구(朝鮮敎區)가 독립되었고, 1846년에는 한국 최초로 김대건(金大建)이 신부가 되었다.

5. 동학

조선 후기 세도정치 아래서 사회가 동요되고 민심이 불안해 가고 있을 때, 1860년 농촌에서는 최제우(崔濟愚)가 동학(東學)을 창시하였다. 동학사상은 이미 서민에 대한 지도력을 상실하고 있던 성리학과 불교를 배척하는 동시에 천주교도 배척하였다. 동학은 그 후 최시형(崔時亨)에 의해 교리가 정리되어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龍潭遺詞)》로 전해졌고, 포(包)ㆍ접(接) 등의 교단조직이 강화되면서 삼남을 중심으로 교세가 급격히 확장되었다.

동학의 교세가 확대되자, 많은 동학교도들은 억울하게 처형된 교조(敎祖)에 대한 신원과 포교의 자유를 추구하여 전라도의 삼례, 충청도의 보은에서 집단적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점차 그 양상이 종교운동에서 사회운동으로 전화되어 갔다. 동학운동은 1894년 전라도 고부민란을 계기로, 안으로는 유교적 전통사회를 부정하고 개혁정치를 요구하였으며, 밖으로는 외국의 침략을 배격하며 반봉건ㆍ반민족운동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한때 전라도 일대를 장악하고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하여 치안과 행정을 바로잡고 각종 개혁안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일본군과 관군의 개입으로 동학의 교세는 크게 꺾여 손병희(孫秉熙)에 의해 명맥만 유지되다가, 1905년 동학교도인 이용구(李容九)가 일진회(一進會)를 조직하여 매국활동에 앞장서자, 손병희는 이용구와 손을 끊고 천도교(天道敎)를 일으켜, 이로부터 동학은 천도교라는 이름으로 정통성을 유지하였다.

Ⅹ. 예술

1. 건축ㆍ회화ㆍ서예

조선의 건축은 크게 목조건축과 석조건축으로 나눌 수 있다. 목조건축은 초기에는 주심포(株心包) 양식이 우세하였으나 차차 다포(多包)집이 성행하였다. 석조건축은 석탑ㆍ부도(浮屠) 등이 있으나, 불교의 침체와 더불어 별다른 발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2. 공예

조선시대 공예의 특색으로는 인공적인 면의 배격과 공간(空間)ㆍ백색(白色)의 존중을 들 수 있으며, 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든 공예 부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도자기도 회화와 마찬가지로 임진왜란을 계기로 전ㆍ후기로 나뉘어지는데, 전기는 분청사기와 백자가, 후기는 청화백자가 성행하였다.

3. 음악

조선은 의례의 일환으로 음악을 중요시하여 국초부터 음악을 담당하는 관청으로 아악서(雅樂署)와 전악서(典樂署)를 설치하였다. 특히, 세종 때 박연(朴堧)을 비롯한 음악가들은 수십 종의 악기를 새로 만들어내거나 개량하고, 악곡과 악보를 새로 정리하여 궁중음악의 기초를 확립, 마침내 아악(雅樂)을 대성시켰다.

이 무렵 동양음악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인 《악학궤범(樂學軌範)》을 편찬하였으며, 그 후 《악장가사(樂章歌詞)》도 간행되었다. 궁중음악과 별도로 민간에서는 당악(唐樂)ㆍ향악(鄕樂) 등의 속악도 발달하였고, 농악무ㆍ무당춤ㆍ승무 등의 민속무용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한편, 산대놀이라는 가면극과, 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이 민간사회에 보급되면서 조선 후기에 걸쳐 널리 유행하였다. 산대놀이는 양주ㆍ통영ㆍ안동 등의 것이 특히 유명하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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