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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9-02 (목) 19:46
분 류 사전2
ㆍ조회: 286      
[고려/조선] 백정 (두산)
백정 白丁

고려 시대에 특정한 직역(職役)을 부담하지 않고 농업에 종사하던 농민층.

본래 중국의 남북조(南北朝)와 수나라에서 일반 백성을 가리키던 말로, 고려 시대의 토지 제도는 일정한 직역에 대한 반대 급부로서 토지, 즉 명전(名田)을 지급하게 되었으므로 백정은 이러한 명전을 지급받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들 명전 지급은 실제적인 토지 지급이기보다는 그 토지에 대한 조세 면제라고 이해하고 있으므로 백정은 토지에 대한 면세의 혜택을 받지 못하였을 뿐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소유한 토지는 대대로 전래받은 토지거나 개간으로 확보한 토지였다. 그러나 모두가 이러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며, 대부분은 양반전ㆍ군인전ㆍ사원전을 빌려 경작하는 전호(佃戶)였다. 그럼에도 때로는 한인(閑人)ㆍ학생 등과 함께 군역에 차출되었고, 이 경우에 전정(田丁)이 지급되었다. 이것이 백정대전(白丁代田)이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재인백정 才人白丁

고려의 화척(禾尺)ㆍ재인(才人)을 조선 시대에 고쳐 부르던 이름.

화척ㆍ재인은 타타르[韃靼]의 유민(流民)으로 고려 시대에 흘러들어와 전국을 유람하며 온갖 재주를 부리거나 풍악을 울리며 잡가를 부르고 춤을 추며, 여가에 사냥과 버들고리[柳器]를 만들어 생활하였다. 농본 원칙을 견지하던 조선 시대에는 이들을 정착시켜 농민으로 전환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들을 이류(異類)로 보고 혼인도 기피하였으므로 그들의 명칭을 고려 시대 농민의 칭호였던 백정(白丁)으로 고쳐 부르게 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정책도 실패로 들아가 백정의 명칭은 재백정(才白丁)ㆍ재인 백정ㆍ신백정(新白丁)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들은 다시 노래와 춤을 파는 재인으로 되돌아갔으며 생계 유지의 방편으로 택한 대표적인 직업이 도살업(屠殺業)이었다. 그들은 원래 육류가 주식이었으므로 가축을 잡는 데도 능숙하여 도살업자로 전환된 것이나 16세기 이후로는 정착 생활을 하고, 그 직업도 거의 세습적으로 유지되어 고려 시대의 백정과는 다른 개념의 백정이 되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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