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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8-29 (일) 22:53
분 류 사전2
ㆍ조회: 284      
[고려] 삼사 (한메)
삼사 三司

고려 시대 국가 전곡(錢穀)의 출납ㆍ회계를 맡아보던 관청. 중서문하성ㆍ중추원(中樞院)과 함께 재상관서(宰相官署)에 속하였다.

본래 태조가 태봉(泰封)의 조위부(調位府)를 개칭한 것으로, 1014년(현종 5) 삼사를 폐하고 도정사(都正司)를 두었으며, 23년 다시 삼사를 두었다. 1356년(공민왕 5) 상서성(尙書省)으로 고쳤다가 62년 다시 삼사로 고쳤다.

고려의 삼사는 송(宋)나라 제도를 본떴으나 그 기구 조직이나 기능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고려의 삼사가 실행한 직책을 보면 조세ㆍ조세감면ㆍ세공(歲貢) 등 국가의 수입과 사곡(賜穀)ㆍ진휼(賑恤)ㆍ녹봉(祿俸) 등 지출을 총괄하였지만, 당제(唐制)를 기본으로 한 3성 6 부의 공식 기구가 정상적으로 운용되었기 때문에 일원적인 최고 재정 기관이 되지 못했다.

더욱이 송나라의 삼사처럼 염철(鹽鐵)ㆍ호부(戶部)ㆍ탁지(度支)의 3부로 나뉘어 전문적으로 국가의 이재(理財)를 담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그 기능에 제약이 있었다.

충렬왕 이후 겸직이 아닌 단독직으로 독립되고, 관원의 품질(品秩)과 지위가 상승되었으며 삼사원도 도당(都堂)의 구성원이 되어 국사를 논의ㆍ결정할 수 있게 되고 정원이 증가하는 등 기구상의 개편과 승격이 있었다. 그러나 기구편성의 상승ㆍ강화로 기능이 확대ㆍ강화될 것을 예상하였으나, 실제로 관서로서의 기능은 오히려 전보다 약화되었다.

그러므로 고려 후기의 삼사는 녹패(祿牌)나 서급(署給)하였을 뿐 그 기능이 유명무실하게 되었고, 그 본래의 임무라 할 수 있는 전곡에 관한 출납ㆍ회계의 기능은 도당인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로 옮겨져 있었다. 이후 조선 시대에 들어와 1401년(대종1) 사평부(司平府)로 개칭되었다가 1405년 호조에 병합되었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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