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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8-27 (금) 07:56
분 류 사전2
ㆍ조회: 275      
[고려] 중추원 (브리)
중추원 中樞院

고려와 조선 시대 왕명 출납과 숙위(宿衛)ㆍ군사 기무를 담당하던 관청.

고려 시대에는 중서문하성과 함께 최고 관부로 취급되어 둘을 합해 양부(兩府)라고 불렀으며, 양부의 고위 관원을 합쳐 재추(宰樞)라고 했다. 991년(성종 10)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다온 병관시랑(兵官侍郞) 한언공(韓彦恭)의 건의에 따라 송의 추밀원(樞密院) 제도를 본떠 설치했다.

1009년(현종 즉위) 현종을 옹립한 강조(康兆)에 의해 폐지되고, 그대신 중대성(中臺省)이 설치되었다. 이것은 강조 일파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1011년에 거란과의 전쟁중에 강조가 죽자 바로 중대성이 폐지되고 다시 중추원이 설치되었다. 1023년(현종 14) 중추원의 일직원(日直員)을 좌ㆍ우 승선(左右承宣)으로 고치고 동시에 좌ㆍ우 부승선을 두어, 부추(副樞:부사) 이하의 관원들이 겸임하게 함으로써 왕명출납의 기능을 강화했다.

관원은 문종의 관제 개혁 때 정비되었는데, 중서문화성과 마찬가지로 상ㆍ하 이중으로 조직되었다. 즉 종2품 판원사(判院事) 1명, 원사 2명, 지원사(知院事) 1명, 동지원사 1명, 정3품관으로 부사 2명, 첨서원사(簽書院事) 1명, 직학사(直學士) 1명이 추칠(樞七:추밀 7직)로서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었던 데 비하여, 정3품 지주사(知奏使) 1명, 좌ㆍ우 승선 각 1명, 좌ㆍ우 부승선 각 1명이 승선으로 호칭되면서 하층부를 이루고 있었다. 그밖의 정7품 당후관(堂後官) 2명이 있었다.

추밀과 승선은 같은 중추원에 소속된 관원이었지만 지위상으로뿐만 아니라 직능상으로도 완전히 구분되어 있어 각각 추부(樞府)와 승선방(承宣房)을 두고 별도로 업무를 집행했다.

추밀 중 3품의 부사ㆍ첨서원사ㆍ직학사는 2품 이상으로 규정된 재상의 범위에 못 들었지만 실질적으로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추밀은 군기(軍機:군사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고려에서는 국가 중대사를 재추가 모여 만장일치(議合)로 처리하게 되어 있었고 재추는 각각 6부의 상서와 그밖의 중요 관직을 겸임하고 있었던 만큼 추밀은 재상의 일군(一群)으로서 군기 이외의 국가 중요 업무에도 관여했다. 승선은 왕의 측근으로 왕명 출납을 담당하며 때로 간쟁ㆍ인사 업무에도 관여했다.

1095년(헌종 1)에 이르러 중추원은 추밀원으로 개칭되었는데, 직제와 기능은 그대로였다. 고려 중기에는 승선의 위상이 강화되어 1116년(예종 11)에는 같은 품의 첫머리에 서게 되었다. 최씨 무인 정권기에는 최고집정자 최충헌(崔忠憲)의 동생인 충수(忠粹)의 건의로 집주(執奏)를 두었다가 충수가 죽은 이후에 이를 없앴다. 1275년(충렬왕 1)에 원의 간섭으로 추밀원은 밀직사(密直司)로 고치고 재추양부로 불리던 중서문하성의 후신인 첨의부보다 격을 떨어뜨렸다. 그 다음해에는 승선을 승지로 고쳤다.

1298년에는 충선왕이 개혁 정치의 일환으로 관제 개혁을 할 때 밀직사를 광정원(光政院)으로 고치면서 직제를 개편했다. 즉 사는 종1품으로, 부사는 종2품으로 승격시킨 반면 도승지는 종5품, 승지ㆍ부승지는 종6품으로 내렸으며, 계의관(計議官)을 정7품, 계의참군(計議參軍)을 정8품으로 했다. 그러다가 곧 충선왕이 물러나고 충렬왕이 복위하면서 관청명은 다시 밀직사로 회복하고 사 1명, 지사사 2명, 동지사사 3명, 부사 4명을 모두 종2품으로 했으며, 지신사 1명, 좌ㆍ우 승지 각 1명, 좌ㆍ우 부승지 각 1명을 모두 정3품으로, 당후관은 정7품으로 했다.

1308년 충선왕이 복위하면서 밀직사를 폐지했지만 바로 그해에 다시 설치했으며 판사사를 더 두었다. 1310년(충선왕 2) 밀직사를 승격시켜 첨의부와 함께 다시 양부라 불렸다. 그때 승지를 대언이라 했으며, 이듬해 부사의 품계를 낮추어 정3품으로 했다.

1354년(공민왕 3) 판사사ㆍ지신사 및 4명의 대언을 모두 녹관(祿官:겸임관직이 아니라 정식으로 해당 품계의 녹봉을 받는 관원)으로 했다. 1356년 공민왕의 반원 정책에 따라 문종 때의 관제로 복귀하여 관청명도 추밀원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1362년 다시 밀직사로 개칭되고 관제도 변동되었다. 이후 조선 건국 때는 중추원으로 계승되었다.

조선에 들어와서 1392년(태조 1) 7월의 관제 제정 때 중추원은 계복(啓復)ㆍ출납ㆍ병기ㆍ숙위ㆍ경비 등을 관장하도록 했다. 그러나 차츰 왕명 출납ㆍ군사ㆍ숙위 업무가 별도의 관청으로 분할되었다. 먼저 1393년(태조 2) 의흥삼군부가 생겨 중추원의 군사적 기능은 위축되었다.

1400년(정종 2) 중추원이 의흥삼군부와 함께 삼군부로 통합되었고 이듬해 승추부(承樞府)로 되었다. 1405년 관제 개혁 때 군정은 병조로 이속되고 왕명 출납 기구로 승정원이 독립하여 왕명 출납과 군사 기능은 완전히 분리되었다. 1432년(세종 14)에는 중추원를 다시 세워 숙위와 경비 업무만 관장하게 했다. 1466년(세조 12)에 중추부(中樞府)로 개칭되었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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