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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9-21 (화) 17:09
분 류 사전2
ㆍ조회: 273      
[고려] 중방 (브리)
중방 重房

고려 시대 2군6위(二軍六衛)의 상장군과 대장군이 모여 협의하던 회의 기관.

설치 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2군 6위가 성립된 현종대 무렵으로 추정된다. 2군 6위의 각 군과 위마다 최고 지휘관인 상장군과 대장군이 각각 1명씩 있어 모두 16명이 중방을 구성했으며, 이 회의의 의장직은 응양군(鷹揚軍)의 상장군이 맡아보았는데 반주(班主)로 불렸다.

무신들의 최고 기구로서 문신들의 합좌 기관인 도병마사(都兵馬使)에 비해 실권이 약했다. 즉 상장군ㆍ대장군의 품계는 정3품ㆍ종3품으로 상서 6부(尙書六部)의 상서와 같았다. 또 목종 때 개정된 전시과(田柴科)를 보면, 6상서가 제4과인 데 비해 상장군ㆍ대장군은 제5ㆍ6과였다. 그러나 이러한 열세 아래에서 무신들의 의사를 결집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1170년(의종 24) 정중부 등이 일으킨 무인란으로 무인 정권이 성립되자 중방은 정치 기구의 중심체로 그 기능과 권한이 확대되었다. 무인란이 무반 전체의 결집된 힘으로 성공했으므로 모든 무인이 정권에 참여했던 만큼, 초기의 무인 정권은 스스로의 정치 기구를 갖지 못하고 기존의 무인 합좌 기구인 중방에서 집단적으로 국가의 행정을 처리하는 중방 정치를 했다.

즉 초기의 무인 정권은 위치가 확고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무인들의 협력을 얻고, 무인정권에 반항하는 문반을 견제하기 위해 중방정 치를 통해 집단 무인 집권 체제를 이루어야 했다. 그뒤 최충헌이 쿠데타를 일으켜 무단적인 독재 정치 기반을 확립하면서 정권에 방해가 되는 무인세 력을 견제하기 위해 중방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문인들을 등용하기 시작하면서 중방은 이전의 모습으로 환원되었다.

그대신 교정도감(敎定都監)ㆍ정방(政房)ㆍ도방(都房) 등이 설치되어 독재 체제를 뒷받침했다. 그뒤 중방은 충선왕 때 잠시 폐지되었다가 곧 복치되어 고려 말기까지 존속했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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