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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1-02-02 (수) 06:51
분 류 사전2
ㆍ조회: 252      
[조선] 신임사화 (브리)
신임사화 辛壬士禍

조선 후기 1721년(경종 1)과 1722년에 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일어난 옥사. 신축(辛丑)ㆍ임인(壬寅) 두 해에 걸쳐 일어났으므로 신임사화라 하며, 일명 임인옥이라고도 한다.

1720년(숙종 46)에 숙종이 죽고 소론(少論)의 지지를 받은 경종(景宗)이 33세의 나이로 즉위했는데, 후사가 없었으며 병이 많았다. 그러자 당시의 노론 4대신(老論四大臣)인 영의정 김창집(金昌集), 좌의정 이건명(李健命), 영중추부사 이이명(李頤命), 판중추부사 조태채(趙泰采)가 중심이 되어 경종의 동생인 연잉군(延礽君 : 뒤의 영조)을 왕세자로 책봉하자고 주장했다. 소론측은 반대했지만, 경종은 1721년 8월에 대비 김씨의 동의를 얻어 이를 실현시켰다.

노론측은 더 나아가 10월에 조성복(趙聖復)의 상소를 통해 세제 청정(聽政)을 주장했다. 이에 경종은 청정을 명했다가 소론의 반대에 부딪혀 환수했으며, 뒤에 여러 번 번의를 거듭했다. 그동안 노론ㆍ소론의 대립은 격화되었다. 결국 그해 12월에 사직(司直) 김일경(金一鏡) 등이 소를 올려 세제 청정을 상소한 조성복과 이를 행하게 한 노론 4대신을 파직시켜 유배보냈다. 이외에도 다수의 노론측 인물들이 삭직되었고, 소론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 그뒤에도 소론의 강경파들이 노론 숙청을 요구했는데, 마침 1722년 3월 노론측이 세자 시절의 경종을 시해하려 했다는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이 있자, 소론측은 이를 기화로 노론 4대신을 사사(賜死)하게 하고, 수백 명의 노론을 제거했다.

그러나 경종이 즉위 4년 만에 죽고, 노론의 추대를 받았던 영조가 즉위하자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싼 당쟁으로 일어난 신임사화를 생각하고, 노론ㆍ소론을 함께 등용하여 당쟁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신임사화의 진상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김일경과 목호룡을 처형하는 등 소론을 배척하고, 노론을 불러들이는 정미환국(丁未換局)을 일으켰다. → 정미환국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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