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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1-02-02 (수) 07:11
분 류 사전2
ㆍ조회: 274      
[조선] 신임사화 (두산)
신임사화 辛壬士禍

1721년(경종 1)~1722년 왕통 문제와 관련하여 소론이 노론을 숙청한 사건.

이미 숙종대에 노론과 소론이 분기하여 사문(斯文)시비를 벌였으나, 경종대 들어 왕통에 관한 시비가 본격화됨으로써 기존의 사문시비는 충역(忠逆)시비로 논지가 바뀌었다. 신임사화라는 용어는 당대부터 쓰였으나, 화를 입은 노론측의 입장이 반영된 용어이다. 노소론 사이의 대립에 왕통문제가 개입된 것은 장희빈(張禧嬪)의 아들인 경종이 세자로 책봉되고 뒤에 왕위를 이었기 때문이다.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남인이 축출된 뒤, 노론과 소론은 장희빈의 처벌 문제를 놓고 대립하였다.

노론측은 장희빈이 정비인 인현왕후를 모해하였으므로 사사해야 된다는 주장을 한 데 반해, 소론측은 다음 왕이 될 세자를 위해 장희빈을 살려야 옳다고 주장하였다. 경종은 숙종 말년에 4년간 대리청정을 하다가 숙종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노론은 경종 즉위 뒤 1년 만에 연잉군(延礽君:뒤의 영조)을 세제(世弟)로 책봉하는 일을 주도하고, 세제의 대리청정을 강행하려 하였다. 노론이 이 과정에서 두 차례의 태도 변화를 보임으로써 소론측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소론측은 노론의 대리청정 주장을 경종에 대한 불충(不忠)으로 탄핵하여 정국을 주도하였고, 결국에는 소론 정권을 구성하는 데 성공하였다(辛丑獄事). 신임사화는 이러한 와중에서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사건(告變事件), 즉 남인(南人)이 숙종 말년부터 경종을 제거할 음모를 꾸며왔다는 고변을 계기로 일어났다. 소론은 노론이 전년에 대리청정을 주도하고자 한 것도 이러한 경종 제거 계획 속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하였다.

고변으로 인해 8개월간에 걸쳐 국문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김창집(金昌集)ㆍ이이명(李頥命)ㆍ이건명(李健命)ㆍ조태채(趙泰采) 등 노론 4대신을 비롯한 노론의 대다수 인물이 화를 입었다. 이 옥사는 노소론간의 대립이 경종 즉위 후 왕에 대한 충역 시비의 형태로 표출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으로서, 그 자체는 경종대의 문제였지만, 그에 대한 평가 문제는 영조대에 탕평책(蕩平策)이 추진되는 과정에서도 논란이 계속되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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