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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9-29 (수) 20:55
분 류 사전2
ㆍ조회: 262      
[고려] 최항 (브리)
최항 崔沆 ?~1257(고종 44)

고려 무인 정권기의 집정자.

본관은 우봉(牛峯). 초명은 만전(萬全). 우(瑀)의 서자(庶子)로, 어머니는 폐기(嬖妓) 서련방(瑞蓮房)이다. 일찍이 최우의 견제를 받아 송광사(松廣寺)에 보내져 선사(禪師)가 되었다. 쌍봉사(雙峯寺)로 옮긴 뒤 무뢰승(無賴僧)을 모아 문도(門徒)로 삼고 식화(殖貨)를 일삼다가 1248년 최우가 병이 나자 환속하여 이름을 항(沆)으로 고치고, 좌우위상호군ㆍ호부상서가 되었으며, 임익(任翊)에게서 글을 배우고 권위(權峘))에게서 예(禮)를 익혔다.

이후 추밀원지주사가 되어 아버지로부터 가병(家兵) 500여 명을 나누어 받았다. 다음해 아버지가 죽자 뒤를 이어 정권을 잡고 은청광록대부 추밀원부사 이병부상서 어사대부 태자빈객(銀靑光祿大夫樞密院副使吏兵部尙書御史大夫太子賓客)으로 동서북면병마사를 겸했고, 교정별감이 되었다.

시기심이 많아 지추밀원사 민희(閔曦)를 유배보내고, 전 추밀원부사 주숙(周肅), 형부상서(刑部尙書) 박훤(朴暄), 계모 대씨(大氏), 추밀원부사 김경손(金慶孫) 등을 죽였다. 집권 초기에는 각 지방의 별공(別貢)과 어량선세(魚梁船稅)를 면제하고 각 지방에서 가렴주구를 일삼던 교정수획원(敎定收獲員)을 소환하여 그 임무를 안찰사에게 맡김으로써 인망을 얻었으나 점차 호사와 향락을 일삼으며 많은 사람을 죽였다.

1250년 몽골의 출륙 요구에 응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승천부(昇天府:경기 개풍)에 새 궁궐을 지었으나 왕이 그곳에 가서 몽골 사신을 만나는 것을 완강히 반대했다. 이로 인해 몽골군의 대대적인 침입을 받아 전국이 황폐화되었다 (→ 색인 : 몽골의 침략). 1253년 또다시 몽골의 야굴(也窟)이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자 당시 몽골에 있던 왕족 영령공 준(永寧公)은 태자나 왕자 안경공 창(安慶公)을 보내 회군을 청하라고 권고했으나 몽골측에서 그들을 인질로 삼아 항복을 요구한다면 대처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후 잦은 연회와 사치스런 생활에 여념이 없었고, 결국 몽골군이 전국을 유린하자 왕이 승천부에 나가 몽골 사신을 맞이하여 위기를 모면했다.

사재(私財)를 내어 대장경판(大藏經板)을 만들고 궁궐을 지었다하여 1255년 왕이 부(府)를 열고 식읍(食邑)을 더하게 했으나 이를 사양했다. 이어 중서령 감수국사(中書令監修國史)에 임명되었고, 다음해에 제중강민공신(濟衆康民功臣)에 봉해졌다. 1257년 병으로 갑자기 죽었다. 진평공(眞平公)에 추증되었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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