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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8-29 (일) 23:28
분 류 사전2
ㆍ조회: 264      
[행정] 속현 (브리)
속현 屬縣

고려ㆍ조선 시대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主縣)에 예속되어 그곳의 행정적인 지배를 받은 군현.

중앙 정부로부터 간접 지배를 받은 군현이다. 사료에서는 임내(任內)ㆍ겸현(兼縣)ㆍ합속현(合屬縣)ㆍ부읍(附邑)ㆍ지현(支縣) 등으로 표현되었으며, 흔히 향ㆍ소ㆍ부곡과 함께 임내로 표현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지역적으로는 하삼도(下三道), 그중에서도 경상도에 가장 많았다.

속현은 독자적인 구역과 주민을 가졌고, 읍사(邑司)ㆍ향리(鄕吏)ㆍ관노비(官奴婢)ㆍ읍리전(邑吏田)ㆍ공수위전ㆍ공관(公館)을 보유했다. 속현의 행정은 읍사를 중심으로 향리들이 관장했다. 이들은 고려의 경우 보통 5일에 1번 주읍에 가서 명령을 받았지만, 사실상 이 지역의 통치를 위임받았다.

그러나 군현간의 영속(領屬) 관계는 완강하여 전란 등으로 주읍의 통치 기구가 이동하면 속현들도 따라서 이동하기도 했다. 부세(賦稅)는 군현 단위로 책정해서 주읍을 통해 부과했는데, 특히 고려 후기에는 이 과정에서 주현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따라서 주현은 가능한한 속현을 많이 거느리려 했기 때문에 속현민은 주현으로 승격하려는 욕구가 강했다.

고려 시대에는 읍격(邑格)의 승강과 영속 관계의 이동이 빈번했는데, 고려 정부는 이를 통하여 지방 세력을 통제하기도 했다. 고려 전기에는 전체 520여 군현 중에 속현이 373개로 주현보다 많았는데, 이같은 군현 편성과 운영은 중국에도 없는 것으로 고려 시대 군현제의 가장 큰 특징이다.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대체로 군현간의 영속 관계는 고려 왕조 성립 이전 지방 호족간의 지배ㆍ예속 관계가 반영된 것으로, 고려가 통일하면서 이들의 지배ㆍ예속 관계를 전제로 군현을 편제했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고려 중기 이후 꾸준히 감무(監務)가 파견되면서 속현은 점차 감소했다. 특히 고려 후기인 14세기의 군현제 정비 과정에서 감무 파견 외에도 여러 속현을 합하여 하나로 만들거나 작은 곳은 주현의 직촌(直村)으로 하는 방법을 통해 속현은 상당수 감소되었다.

그러나 토착 세력의 반대로 완전 혁파는 이루지 못하고 고려말 161개이던 속현이 조선 중종 때는 72개로 감소되었다. 그후에도 이 작업을 계속하여 17세기 이후에는 모두 주현으로 승격시키거나 면으로 개편했다. → 군현제도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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