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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3-15 (토)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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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한국사7-조선시대 역사 개관 (브리)
조선시대 역사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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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성계(李成桂)에 의하여 조선왕조가 개국이 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도전(鄭道傳)을 비롯한 사대부세력의 뒷받침을 받아서 성공한 개국이었다. 그런데 대체로 향리 출신인 이들 사대부는 고려시대의 귀족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적인 증가를 가져왔다. 고려의 귀족들은 수도인 개경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었고 지방으로 낙향을 하면 귀족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귀족관료로 죄를 지으면 귀족의 특권을 박탈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귀향죄(歸鄕罪)를 적용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지방에 정착해 사는 사대부들이 많았다. 이같이 지배세력의 사회적 기반은 또 한 차례 크게 확대되었다.

조선시대의 귀족은 고려의 관례대로 양반이라고 했으므로, 조선 양반사회의 특징은 우선 이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양반들이 수적으로 증대했다는 것은 관직을 바라는 후보자 수가 증가했음을 뜻했다. 그러므로 부조(父祖)의 공덕으로 관직을 수여하는 음서제도는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과거시험이 관리로 등용되는 중요한 길이 되었다. 그러므로 양반들은 귀족보다는 관료적 성격을 더 많이 지니게 되었다.

정치기구에 있어서도 의정부(議政府)라는 회의기관보다는 실제로 행정을 분담하는 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工)의 6조(六曹)가 더 중요했다. 이 기관들은 국왕에게 직계(直啓)하여 행정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양반관료에게 지급하는 과전은 경기도지역에 한정되었고, 전국의 토지는 공전으로 편입시킨 관계로 양반관료들의 토지에 대한 지배권도 제한되었다.

양반귀족들은 그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사회적 제도를 마련했다. 가령 혼인은 양반가문 사이에서만 배타적으로 행해졌다. 신분이 낮은 가문과의 혼인에 의한 소생은 양반신분이 갖는 특권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개 신분이 천한 것이 상례인 첩의 소생인 서얼들이 문과(文科) 과거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은 것은 그 결과였다. 또 지방적인 차별대우가 있어서 평안도나 함경도 출신은 과거에 합격하더라도 관리로 등용되기는 힘든 실정이었다.

문화적으로는 성리학에 근거한 도덕국가의 건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도덕적인 요구는 위로는 국왕이라 해도 외면할 수 없는 것이었고, 아래로는 농민에게까지도 요구되어 향약제도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것은 세종이 민중을 계몽하려는 뜻이 들어 있었다.

한마디로 양반귀족이라고 하지만, 그 내부에는 세력 분열이 있었다. 경기도지방을 중심으로 한 훈구귀족은 실제적인 학문에 능통하여 정치적으로는 행정관료직을 점유하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는 넓은 농장의 소유자들이었다. 이에 대해서 지방의 독서인군은 중소지주층으로서 성리학의 도덕적 성격을 강조했다. 보통 사림(士林)이라고 불리던 이들이 중앙무대로 진출하면서 훈구귀족과의 대립이 첨예화하여 사화(士禍)를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림들은 지방에 서원을 세워 이를 근거로 하여 그 지위를 유지해갔으며, 또 향약을 실시하여 지방 통제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확대해 중앙의 정치무대에서도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했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권력투쟁이 붕당(朋黨)을 결성하게 되고, 그것이 동인(東人)·서인(西人)의 분당에서 비롯되는 당쟁으로 표면화되었다.

이 시기에 양반들은 자기의 동족관계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게 되어 족보를 많이 편찬했다. 또 동족관계에 따르는 상장제례(喪葬祭禮)에 관한 지식을 필요로 하게 되어 예학(禮學)이 크게 유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실제적인 인간관계의 근본에는 도덕적인 성실성이 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성리학이었다.

이리하여 성리학은 조선시대의 지배적인 사상으로 되었는데, 우주의 근본인 이(理), 즉 생명력을 존중하는 이황(李滉)의 주리설(主理說)과 사물의 법칙인 기(氣)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을 존중하는 이이(李珥)의 주기설(主氣說)이 생겼다.

조선시대의 대외정책은 사대교린(事大交隣)을 원칙으로 하는 우호정책을 써왔다. 그러나 16세기말에는 일본군이 침입하는 임진왜란이 있었고, 17세기초에는 청나라군이 침입해오는 병자호란이 있었다. 이 두 전쟁은 적지 않은 피해를 가져오기는 했으나, 그로 인해서 조선왕조가 몰락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비록 정치적으로 서인, 특히 노론의 장기집권으로 벌열정치가 행해지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탕평책에 뒤이어 외척이 정권을 독점하는 세도정치가 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는 그이후 300년이나 계속되었으며, 또 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우선 경제적인 측면을 보면 대동법(大同法)이 실시되어 지금까지 지방 특산물을 바치던 공납법을 고쳐서 쌀로 바치게 했는데 이로 인해서 농민들의 부담이 크게 경감되었다. 한편 정부에서는 받은 쌀로 필요한 물품을 사들이게 했는데, 물품의 조달은 공인(貢人)에게 부탁했다. 이에 따라서 공인은 비록 어용상인이지만 공인자본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 대동법의 실시로 인해 공인들은 필요한 물품을 수공업자에게서 조달함으로써 수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수공업은 대체로 상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상인으로는 공인 이외에 사상(私商)이 성장하여 서울의 경강상인(京江商人), 개성의 송상(松商), 동래의 내상(萊商), 의주의 만상(灣商) 등이 유명했다. 이들은 국내에서뿐 아니라 해외무역에도 종사하여 많은 자본을 축적하여 특정상업을 독점하는 도고(都賈)로 성장했다.

또 농촌에서는 농업기술이 크게 발달했는데, 모판에 모를 심었다가 논에 옮겨심는 이앙법(移秧法)이 널리 보급됨에 따라서, 보리농사를 끝낸 뒤에 그 자리에 물을 끌어들여 논으로 만들어서 벼를 옮겨심음으로써 이모작(二毛作)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서 농업생산이 크게 증가했고, 이에 저수지가 필요하게 되어 수리사업이 발전했다. 이러한 농업기술의 발달은 한 사람의 농부가 경작할 수 있는 토지의 면적을 넓게 하여 광작(廣作)이 행해지고, 그결과 상업적 이윤을 얻는 부농(富農)이 발생했으며, 한편으로는 경작할 토지를 잃어 임노동자(賃勞動者)로 전락하는 농민도 생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19세기에 이르러 농민들의 민란이 크게 일어났는데, 홍경래 난(洪景來亂)이나 진주민란(晉州民亂)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러한 대세 속에서 학문적으로 실학(實學)이 일어나게 되었다. 실학에는 농촌의 분화작용을 방지하여 농민에게 토지를 확보하게 하여 자영농민을 중심으로 한 이상국가를 건설하려는 경세치용학파(유형원·이익·정약용)와, 도시의 상공업을 중심으로 부를 축적하여 나라를 부하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는 이용후생학파(박제가·박지원)가 있었다. 특히 후자는 일하지 않는 양반유학자를 비판하고, 개인의 능력에 따른 분업을 주장했으며, 그러기 위하여 중국으로부터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여 북학파(北學派)라고 불렸다.

또 종교적으로는 정권에서 소외된 남인(南人) 학자들 사이에 천주교가 수용되고, 그뒤를 이어 도시의 중인(中人)이나 평민들 사이에서는 최제우(崔濟愚)가 제창한 동학이 크게 성행했는데, 동학은 인내천(人乃天)에 입각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주장하고 아울러 때가 오면 새로운 사회가 열릴 것이라는 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편 예술에 있어서도 비현실적인 자연이 아니라 실제의 자연을 그리는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정선)와 민간의 풍속을 제재로 하는 풍속화(風俗畵:김홍도·신윤복)가 유행하여 종래의 화풍을 혁신했다. 또 문학에서는 〈춘향전〉으로 대표되는 한글소설이 유행하여 새로운 발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판소리나 가면극 같은 평민을 상대로 하는 연희물도 널리 행해졌다.

<이기백(李基白) 글>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사' 항목, 한국브리태니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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