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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11-30 (화) 17:14
분 류 사전2
ㆍ조회: 249      
[조선] 기사환국 (브리)
기사환국 己巳換局

1689년(숙종 15) 숙종이 후궁 소의(昭儀) 장씨(張氏:장희빈)가 낳은 아들을 원자로 정호(定號)하려는 문제를 반대한 송시열(宋時烈) 등 서인이 정권에서 쫓겨나고, 남인이 정권을 장악한 사건.

인현왕후가 왕자를 낳지 못한 가운데 1688년에 소의 장씨가 아들 균을 낳자, 숙종은 균을 원자로 삼아 명호(名號)를 정하고 소의 장씨를 희빈으로 봉하려고 했다. 이때 영의정 김수흥(金壽興)을 비롯한 노론계는 중전이 아직 젊은데 후궁 소생을 낳은 지 두 달 만에 원자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대했다. 숙종은 1689년 5월에 이들의 반대를 묵살하고 원자의 명호를 정하여 종묘사직에 고하고 소의 장씨를 희빈으로 삼았다.

이에 노론측의 우두머리인 송시열이 2번이나 상소하여, 송나라의 신종(神宗)이 28세에 철종(哲宗)을 얻었으나 후궁의 소생이라 하여 번왕(藩王)에 책봉했다가 적자가 없이 죽자 그때야 태자로 책봉하여 왕위를 잇게 했다는 예를 들면서 다시 반대했다. 그러나 숙종은 이미 원자의 명호를 결정한 이상 이를 반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면서 분노했다. 이때 남인계인 승지 이현기(李玄紀)ㆍ윤빈(尹彬), 교리 남치훈(南致熏)ㆍ이익수(李益壽) 등이 상소하여 송시열의 주장을 반박했다. 숙종은 이들과 의논하여 송시열의 관직을 삭탈하여 제주도로 유배하고, 영의정 김수흥을 파직시켰다. 그밖에 송시열의 주장을 따른 많은 노론계 인사를 파직ㆍ유배했다.

결국 송시열의 상소는 노론이 권력에서 쫓겨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반면에 권대운(權大運)이 영의정에, 목내선(睦來善)이 좌의정에, 김덕원(金德遠)이 우의정에 오르는 등 남인계가 대거 등용되었다. 그뒤 남인들은 서인의 죄를 계속 추궁하여, 송시열은 제주도에서 정읍으로 유배지를 옮기던 중 사약을 받았고, 김만중(金萬重)ㆍ김익훈(金益勳)ㆍ김석주(金錫胄) 등은 보사공신(保社功臣)의 호를 삭탈당하거나 유배당했다.

이어 숙종이 중전 민씨가 원자책봉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이유로 중전을 폐비하려고 하자, 이에 재야의 서인이던 오두인(吳斗寅) 등 86명이 이를 저지하려고 상소했다. 숙종은 상소의 주동자인 전 응교 박태보(朴泰輔), 전 참판 이세화(李世華), 오두인 등을 밤낮으로 신문한 뒤 유배했다. 마침내 숙종은 이듬해(숙종 16) 5월 2일 중전을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만들고, 6월에는 원자를 세자로 책봉한 뒤 10월에 희빈장씨를 왕비로 책립(冊立)했다. 이렇게 서인이 집권 10년 만에 남인에게 정권을 빼앗긴 국면을 기사환국이라 한다. → 붕당정치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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