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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8-27 (금) 10:27
분 류 사전2
ㆍ조회: 238      
[고려] 상서 (브리)
상서 尙書

고려 시대 상서성(尙書省)에 속했던 정3품의 관직.

문종 때 이(吏)ㆍ호(戶)ㆍ예(禮)ㆍ병(兵)ㆍ형(刑)ㆍ공(工)의 상서 6부에 각 1명씩 두었다. 각 부서의 장관이었으나, 그 위에 각 부의 최고직인 판사가 따로 있었기 때문에 권한이 제한되어 있었다. 판사는 중서문하성의 재신(宰臣)이 겸직했는데, 이는 상서 6부가 중서문하성의 통제하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상서는 각 부에서 가장 높아도 실제로 권한이 한정되어 있었다. 즉 상서들은 정3품 이라도 재추(宰樞) 회의에 동석하지 못하고 상서성의 좌ㆍ우 복야(僕耶)와 함께 8좌(八座)로 불렸다. 이들은 추밀원의 추신이 겸임하기도 했으며, 명예직으로서 임명되기도 했다.

1275년(충렬왕 1) 상서성이 폐지되고 6부가 전리사(典理司)ㆍ군부사(軍簿司)ㆍ판도사(版圖司)ㆍ전 법사(典法司)의 4사로 개편될 때 상서직은 각 사의 판서(判書)로 바뀌었다. 충선왕이 잠시 즉위하던 1298년에는 4사를 5조(曹)로 개편하고 판서는 각 조의 상서로 바꾸었다가, 충선왕 이 퇴위하면서 다시 4사 체제로 환원되자 판서로 되었다. 그리고 충선왕이 복위하던 1308년 4사를 3부(三部)로 개편하고 판서는 각 부의 전서(典書)로 바꾸었다. 그뒤 1327년(충숙왕 14) 판서로, 1356년(공민왕 5) 상서로, 1362년 판서, 1369년 상서, 1372년 판서 등으로 관제가 변경될 때마다 개칭을 반복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1392년(태조 1) 6조의 각 조에 전서 2명씩 두었으며, 1405년에 전서를 없애고 그대신 정2품의 판서를 1명씩 두었다. → 상서성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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