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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1-01-22 (토) 01:44
분 류 사전2
ㆍ조회: 217      
[조선] 박세채의 졸기 (숙종실록)
좌의정 박세채의 졸기

좌의정 박세채가 졸(卒)하니 나이 65세였다. 박세채의 자(字)는 화숙(和叔)으로 금계군(錦溪君) 박동량(朴東亮)의 손자이다. 자품이 명수(明粹)하고 덕성(德性)이 온순(溫醇)하여, 약관(弱冠)에 진사 고등(進士高等)에 합격하였다.

효종조(孝宗朝)에 태학(太學)의 여러 유생을 인솔하고 상소하여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을 문묘(文廟)에 배향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받아들이지 않고 미안(未安)하다는 비답이 있었다. 드디어 과거 공부를 중지하고 오로지 성리서(性理書)에 뜻을 기울여 이학(理學)에 침잠(沈潛)하고, 예서(禮書)를 정밀히 연구하여 상례(常禮)ㆍ변례(變禮)의 의심나고 불분명한 것에 대해 많은 고증(考證)이 있었으므로, 많은 학도(學徒)들이 모여들어 일세(一世)의 유종(儒宗)으로 추존하였다. 저서(著書)가 매우 많아 거의 수십 종에 달하니, 사람들이 그 엄박(淹博)한 학식에 탄복하였다.

일찍이 천섬(薦剡)8439)에 올랐으나 불러도 나가지 않았고, 현종(顯宗)께서 누차 춘방(春坊)8440)과 대헌(臺憲)으로 불렀으나, 역시 명에 응하지 않았다. 당저(當宁)에 이르러 부르기를 더욱 부지런히 하니, 결국 조정에 들어오게 되었다. 전후에 걸쳐 부름을 받고 나온 것이 세 차례인데, 계해년8441)에는 입조(入朝)하여 요악한 무녀(巫女)에 대해 논하였고, 무진년8442)에는 역종(逆宗)8443)을 논하였으며, 갑술년8444)에는 명의(名義)를 제창하고 윤기(倫紀)를 부식하였다.

또 송준길(宋浚吉) 등 여러 현인들과 뜻이 같고 도가 부합하여, 반드시 춘추(春秋)의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의리를 우선으로 삼았기 때문에, 조정에서 벼슬을 제수하는 고신(告身)에 특별히 청(淸)나라의 연호를 쓰지 않음으로써 그 의지를 펴도록 하였다. 처음에 현석(玄石)에 거주하니 학자들이 현석 선생(玄石先生)이라 일컬었으며, 나중에 파주(坡州)의 남계(南溪)에 거주하니 이내 남계 선생(南溪先生)이라 일컬었다. 작년 겨울에 조정에서 물러나 시골로 돌아가자, 여러 번 소명(召命)을 내렸지만 끝내 조정으로 돌아오지 않고 졸(卒)하니, 사림(士林)이 모두 애석하게 여겼다.

박세채는 계해년 이후로 의견이 송시열(宋時烈)과 자못 맞지 않았다. 그런데 송시열을 위해 가마(加痲)8445)하자 윤증(尹拯)에게 큰 원한과 분노를 샀으나, 사론(士論)은 그의 마음가짐의 공평함을 훌륭하게 여겼다.

부고(訃告)가 전해지자, 임금이 전교하기를, "좌의정 박세채는 일세(一世)의 중망(重望)을 짊어지고 사림의 영수(領袖)가 되었다. 평생의 언행은 반드시 예법을 따랐고, 재상의 지위에 오르자 정색(正色)을 하고 조정에 섰다. 연석(筵席)이나 장주(章奏)에다 간절히 아뢴 것은 모두가 속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내가 의지하기를 주석(柱石)과 같이 할 뿐만이 아니었는데, 지난 겨울에 마침 사고(事故)로 인하여 처자를 남겨놓고 서울을 떠났다. 바야흐로 승지(承旨)를 보내어 나의 지극한 뜻을 타이르고, 마음을 바꾸어 조정에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한 번 걸린 병환이 더욱 위중해져 흉(凶)한 소식이 문득 들려오니, 눈물이 옷깃을 적시고 슬픔을 억제하기 어렵다." 하였다.

해조(該曹)에 명하여 제수(祭需)를 넉넉히 주도록 하고, 녹봉(祿俸)도 3년 동안 그대로 지급하도록 하였으며, 특별히 도승지(都承旨)를 보내어 치조(致弔)하였다.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9책 366면
[분류]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 *인물(人物)

[註 8439] 천섬(薦剡) : 인재(人材)를 천거하는 공문서(公文書).
[註 8440] 춘방(春坊) : 세자 시강원(世子侍講院).
[註 8441] 계해년 : 1683 숙종 9년.
[註 8442] 무진년 : 1688 숙종 14년.
[註 8443] 역종(逆宗) : 역적인 종친.
[註 8444] 갑술년 : 1694 숙종 20년.
[註 8445] 가마(加痲) : 문인(門人)이 스승의 상(喪)에, 또는 후배(後輩)가 존경하는 선배의 상(喪)에 심상(心喪)의 표시로 두건(頭巾)에 삼노[麻繩]를 두르는 것.

출전 : 숙종 28권, 21년(1695 을해 / 청 강희(康熙) 34년) 2월 5일(정유) 2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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