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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5-01 (화) 18:24
분 류 사찰
ㆍ조회: 2614      
[내 마음속의 공간1번지] 7. 최인호, 서울 봉은사
[내 마음속의 공간1번지] 7. 최인호, 서울 봉은사

중앙일보 / 2001년 2월 21일 13면(10판) 입력 : 2001년 2월 20일 17:02

내가 봉은사(奉恩寺)를 처음으로 찾은 것은 40여년전 대학생이었을 때였다. 뚝섬에서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넌 후 강변을 따라 한참동안 걸어 울창한 숲 속에 자리한 천년고찰을 찾아갔다. 한 여름 옥양목처럼 눈부신 길을 따라 늘어선 미루나무에서는 귀청이 찢어지도록 매미가 울고 있었다.

그때 내가 봉은사를 찾아갔던 것은 다섯 살이었던 6·25전쟁 무렵 아버지가 도망쳐 숨어있던 청계산을 향해 온가족이 그 길을 따라 수레를 끌고 찾아갔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당시 잠실벌에는 이름 그대로 양잠을 하던 집들이 많이 있었는데 대부분 난리통에 피난을 가버렸는지 누에를 기르던 헛간도 텅 비어 있었고, 먹이를 먹지 못한 누에들은 새하얗게 죽어 있었다. 그때 헛간에서 우리 가족들은 모기장을 치고 하루 밤을 자기도 하였다.

아버지가 숨어있던 청계산을 찾아가던 과천 길은 왜 그리도 멀던지.

나는 더위를 먹어 배가 맹꽁이처럼 튀어나와도 “저기 고개만 넘으면 아버지가 있다”는 꼬임에 풍선처럼 점점 더 부풀어 오르는 배를 안고 뒤뚱뒤뚱 걸어가곤 했었다.

그리고 나서 내가 다시 봉은사를 찾은 것은 90년대 초 중앙일보에 ‘길 없는 길’을 연재할 무렵이었다.

조선의 명승 서산(西山)대사와 그의 제자 사명(四溟)대사가 승과제도에 의해서 승려로 발탁되었던 장소가 바로 봉은사에 남아있다는 자료를 얻은 후 그 장소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30여년 만에 봉은사를 찾아간 것이다.

지금도 대웅전 앞에 남아있는 선불당(選佛堂). 그 장소야말로 연산군에 의해서 폐지되었던 승과제도가 50여년 만에 부활되어 1552년 4월 이른바 승려 과거시험이 실시되었던 장소며, 이때 휴정(休靜)과 유정(惟政)같은 출중한 고승들이 태어난 곳이다.

원래 봉은사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연회 스님에 의해서 창건된 절로 알려져 있으며, 신라 원성왕(元聖王)때인 794년에 “왕은 한남에 봉은사를 창건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절은 1천2백년 이상의 고찰인 것이다.

그러나 봉은사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문정왕후(文定王后)때. 억불숭유를 국기로 삼았던 조선왕조는 승려의 도첩제를 폐지하고 여러 불교종파를 선교양종으로 통합하는 등 배불의 풍조가 완연하였는데, 어린 명종이 즉위하자 섭정에 나선 문정왕후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새로이 불교진흥책을 펼쳤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허웅당 보우(普雨).그는 봉은사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승려였다.

그는 문정왕후의 힘을 배경으로 봉은사 주지에 취임한 후 다시 승과제도를 부활시켜 서산대사와 같은 출중한 제자들을 배출하였을 뿐 아니라 ‘보우대사가 아니었던들 불교가 없어질 뻔하였다’는 사명대사의 평처럼 꺼져가는 조선불교를 기사회생, 조선불교의 중흥조로 평가된다.

“불교가 쇠퇴한들 이보다 더 하겠는가/피눈물을 흘리며 수건을 적시네/구름 속에 산이 있어도 가는 길이 없으니/티끌세상 어느 곳에 이 몸을 맡기리.”

불행한 시대의 지성인으로 불교의 법난(法難)에 맞서 싸우며 자신의 심정을 한탄하였던 보우는 마침내 문정왕후가 죽자 유생들의 탄핵으로 제주도 귀향길에 올라 끝내는 제주목사 변협(邊協)에 의해 피살당한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측이나 했음일까.보우는 죽기 전 미리 자신의 임종게를 다음과 같이 써놓는다.

“요술쟁이가 요술쟁이 고향을 찾아 들어와/오십년 동안 온갖 미친 노름 모두 놀았다/인간의 영화와 치욕을 모두 장난쳐 버리고/중의 허수아비 껍질을 벗고 맑은 하늘로 오른다(幻人來入幻人鄕/五十餘年作戱狂/弄盡人間榮辱事/脫僧傀儡上蒼蒼).”


내가 봉은사를 세 번째로 다시 찾게된 것은 최근에 나온 소설 『상도(商道)』를 쓰던 무렵이었다.

봉은사는 조선이 낳은 최고의 사상가이자 서화가인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말년에 당대의 선지식 대접을 받으며 머물고 있던 사찰로서도 유명한데 ‘대웅전(大雄殿)’과 ‘판전(板殿)’의 편액은 추사가 남긴 유작이다.특히 지금도 남아있는 판전의 편액은 기교를 전혀 부리지 않고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무기교의 삽필(澁筆)인데 이 편액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칠십일과 병중작(七十一果 病中作)."

추사가 숨을 거둔 것은 71세였던 1856년 10월 10일. 이것으로 보아 봉은사에 남아있는 '판전'이란 글씨야말로 추사의 마지막 절필임이 분명하다.

『상도』에 나오는 주인공 임상옥(林尙沃)과 김정희는 7년 이상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서로 각별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붕우다.

나는 특히 소설 마지막에 이르러 추사 김정희가 봉은사에 머물고 있으면서 '재물은 물과 같이 평등하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란 임상옥의 게송을 갖고 온 심부름꾼에게 소설의 핵심 주제인 '상업지도(商業之道)'를 그려주는 장면을 묘사할 때는 거의 매일 봉은사를 찾아 숲길을 걷고 혼자서 번민했다.

그렇게 보면 봉은사는 평생을 두고 나와 각별한 인연을 가진 절이다. 그 첫번째는 다섯 살의 어린 시절 청계산에 피난 가 숨어 계신 아버지를 찾아가는 그 삶과 죽음 경계에 있던 진여문(眞如門)이었으며,

그 두번째는 『길 없는 길』을 쓸 무렵 자꾸만 지쳐 가는 내게 다시 한번 창작의 정열을 불러일으킨 '선불당(選佛堂)'이었으며, 세번째는 최근에 쓴 『상도』를 쓸 무렵 소설의 마무리에 고심하던 내게 '늙은 과일(老果)' 김정희의 깊은 속마음을 베어볼 수 있는 칼을 내어준 ‘심검당(尋劍堂)’이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봉은사는 내게 있어 작품의 자궁이자 탯줄이며 창작의 산실이다. 그러나 나는 봉은사에 갈 때마다 마음이 착잡하다.

이 천년 고찰의 주위로 무역센터와 아셈 건물, 특급호텔의 마천루들이 상전벽해를 이루고 있다. 뽕밭이 변하여 바다를 이루듯, 내 어릴 때 쑤세미 같은 해가 서산을 넘던,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옥양목 같은 들길은 마천루의 도심으로 변했다.

마치 보우의 임종게처럼 봉은사의 주위는 요술쟁이의 고향처럼 '환인향(幻人鄕)'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그 마천루의 한가운데 천년의 고찰로 남겨진 오늘날의 봉은사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괴테는 말하였다.

"네 발 밑을 파라. 그곳에는 맑은 샘물이 흐르고 있다."

우리가 부처를 만나기 위해서 애써 깊은 산중 암자를 찾아갈 필요는 없고, 우리가 부처를 이루기 위해서 일부러 깊은 동굴로 숨어들 필요는 없다.

우리의 발 밑, 바로 그곳에 맑은 샘물이 흐르고 있다는 괴테의 말처럼 봉은사야말로 도심 한가운데 숨어있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인 것이다.

이 천년의 고찰에 우거져있던 그 많은 숲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이 천년의 고찰에 도대체 그 넓은 주차장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인가.

그 고풍창연하던 법당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연수원 같은 신식건물에 웅장한 미륵대불만 참다랗게 서 있구나.

천년의 향기는 어디로 사라져 버렸고, 깊은 추사의 묵향은 보우의 임종게처럼 인간들의 영화와 치욕의 장난 속에 퇴색되어져 버리고 있는 것일까.

봉은사여, 내가 사랑하는 불국정토(佛國淨土)여. 너야말로 도심 속에 깃들여 있는 금강좌(金剛座)이니, 너에게서부터 저 마천루의 무간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들을 교화시킬 수 있는 구품왕생(九品往生)의 법음(法音)이 퍼져나가도록 하라. 이제야말로 바로 그러할 때가 되었으니. 할(喝)!

최인호(소설가)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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