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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7-26 (목) 23:17
분 류 사찰
ㆍ조회: 2573      
[부석사] 계단식 석단 가람의 주인
(4) 부석사  - 계단식 석단 가람의 주인

현대불교신문 / 1999년 3월 24일 215호

화엄의 통합사상 반영 / 소백산맥 능선마다 / 무량수전에 경배하듯

국립 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고 최순우 선생은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라는 명수필로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극찬한 바 있다. 건축 전문가들에게도 가장 뛰어난 사찰건축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영주의 부석사를 추천한다.

부석사에는 고려 시대 목조 건물인 무량수전이 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로서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 다음으로 오래된 국보급 문화재며, 빼어난 형태적 비례와 정교한 축조기술로도 대단한 가치를 갖는 건물이다. 그러나 건축가들의 찬사는 무량수전 때문 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무량수전 보다 더 거대한 건축이 있기 때문이다.

부석사는 수만평에 이르는 광대한 대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건물로는 천왕문과 범종루, 안양루와 무량수전, 그리고 뒷산 숲속의 조사당과 응진전이 숨겨져 있을 뿐이다. 최근 요사채들과 성보전들이 신축되었지만 규모도 작고 한쪽에 자리잡아 그다지 주목할 대상은 못된다. 소백산 지맥의 한면을 차지할 만큼 광활한 대지에 불과 4동의 건물만이 서있다면, 마치 큰 호수에 가랑배 두세척이 떠 있는 것 같이, 보통의 솜씨로는 휑하고 스산한 가람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절에 올라가면 모든 외부공간들은 꽉차 있다고 느끼고 만다. 왜일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의상대사는 소백산 깊숙한 곳에 부석사의 기틀을 닦고 화엄학을 전교하기 시작했다. 삼국으로 정립되어 600여년을 지속해왔던 한반도의 나라들이 드디어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세 나라의 백성들은 문화적 차이와 적대감으로 완전한 사회적 통합을 이루지 못했다.

이 때 의상이 전교한 화엄학은 분열됐던 사회의 사상을 하나로 통합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의상의 현실적 사상은 부석사의 가람구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 가람은 깊고 급한 경사지를 십여개의 거대한 계단식 석단들로 바꾸고 그 위에 건물들을 앉혔다. 전문가가 아니면 지나치기 쉽지만, 그 석단들의 적절한 높이와 웅장함이 부석사 가람의 주인 역할을 한다.

건축적 공간은 내부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경사지를 깍아서 석축을 쌓으면 바닥의 수평면과 석축의 수직면이 생긴다. 수평면과 수직면이 일정한 비례로 조화를 이루면 일정한 공간적 느낌이 생기고, 이를 건축적으로는 외부공간이라 부른다.

특히 한국 건축은 좁은 내부공간보다는 시원한 외부공간을 중요한 요소로 여겨왔다. 흔히 우리가 마당이라고 부르는 뜰이 대표적인 외부공간이다. 마당은 건물들의 벽면 사이로 만들어지는 외부공간이지만, 부석사의 경우는 웅장한 석단들로 만들어지는 특별한 외부공간들이다. 소수의 건물들 밖에는 없지만 가람 전체가 꽉찬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이 석단들이 만드는 외부공간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부석사 건축의 주인공은 건물이 아니라 바로 석단들이다.

그러나 무작정 석단들을 쌓았다면 지금과 같은 공간감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신개발지의 택지 개발 현장과 같이 오히려 더욱 삭막한 장소를 만들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람의 건축가들은 석단의 위치와 높이를 철저하게 원래의 지형에 맞추어 쌓고 다듬었다. 십여개 석단의 높이들은 서로 다르고, 석단이 위치하는 간격도 다르다. 높은 단 하나를 오르면 다시 낮은 단들이 나타나고 다시 높아지는 등, 매우 리드미컬하게 걸음을 조절한다.

가람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산술적 거리는 매우 길고 고저차도 심하지만, 부석사를 방문하는 그 누구도 힘들어하지 않는다. 율동적으로 배치되고 세워진 석단들 때문이다. 석단들은 바로 자연 지형의 생김새에 따라 세워진 땅의 건축이라 할 수 있다.

십여개의 석단의 정점에는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놓여진다. 하나의 장엄한 소나타와 같이 율동적인 오름의 정점에 위치한 두 건물의 아름다움도 대단하지만, 일단 안양루에 오르던지 무량수전의 기둥에 기대서 지나온 행로를 돌아봐야 한다. 이 장면이 바로 의상이 무량수전을 바로 이 자리에 앉힌 궁극적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는 눈 앞에는 구름 아래로 첩첩한 산들이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곡선들을 겹쳐가며 대자연의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다. 이쩌면 이처럼 장대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대할 수 있을까? 이 거대한 자연의 풍경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쩌면 그처럼 수많은 석단을 쌓아가며 이 위치까지 올라오게 만든 것은 바로 이 대자연의 선물을 품에 안기 위함일 것이다.

소백산맥의 수많은 산줄기와 능선들이 무량수전을 향해 경배하고 있지 않은가. 누가 말했듯이 부석사는 가장 커다란 정원을 가진 가람이 됐다. 땅의 생김새에 충실하게 건축을 할 줄 알았고, 자연을 앞 뜰과 같이 이용할 수 있는 지혜를 가졌던 의상스님과 그 후예 스님들께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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