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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4-20 (일)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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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513      
[고대] 고대국어 (브리)
고대국어 古代國語

고대 삼국의 정립 때부터 고려 건국 이전까지의 국어.

고대의 한반도와 만주의 일부에는 고구려어·백제어·가야어·신라어가 각각 존재했는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한반도에서 신라어가 통용되었다. 국내외 사서(史書)의 기록을 통해 이들 언어의 성격을 단편적으로 엿볼 수 있는데, 공통되는 면도 있으나 서로 다른 면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어와 백제어는 서로 매우 비슷했지만 고구려어는 그들과 아주 많이 달랐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언어들의 구체적인 모습은 매우 제약된 것이기는 하지만 국내외의 사서에 나타나는 인명·지명 등의 표기나 이두문의 표기, 〈삼국사기〉 지리지의 지명 표기 등을 통해 살필 수 있다.

그러나 그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어휘수는 그리 많지 않다. 신라어는 이들 자료 외에도 향가 25수의 차자표기(借字表記), 고대 일본어에 반영된 차용어 등으로 그 성격을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서술할 수 있다.

고구려어

고구려는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중국의 한자 문화와 접촉했을 것이니 고구려에서도 한자를 이용하여 국어를 표기하는 방법이 발달되었을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으나 그 자료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차자표기 자료로서 금석문에 이두로 기록된 '中', '節', '之'의 세 글자가 고구려어를 표기한 것인데, 이들은 신라 이두문에도 나타난다.

이두문뿐 아니라 국내외의 사서에서도 고구려의 어휘를 일부 찾을 수 있으나, 고구려어는 주로 〈삼국사기〉 지리지의 권 35, 37의 지명 표기를 통해 그 모습을 알 수 있다. 이 기록은 고려시대에 김부식이 기록한 것이고, 특히 지명이라는 특수한 고유명사를 기록한 것이라서 자료의 성격이 매우 제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이상의 자료를 찾아낼 수 없다.

이 자료들을 통해 파악되는 고구려어 어휘수는 70개 안팎이나 이것만 가지고도 고구려어의 위치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이 어휘들 가운데에는 다른 언어에서 찾을 수 없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신라어, 알타이 제어(특히 퉁구스제어), 고대 일본어 등 다른 언어의 어휘와 대응된다. 특히 알타이 제어 사이에는 수사(數詞)가 일치되는 일이 드문데 고구려어와 고대 일본어 사이에는 뚜렷한 일치를 보인다. 이것은 두 언어가 같은 계통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고구려어는 고대 일본어·만주어·몽골어 등에 비하여 어말모음(語末母音)이 탈락한 모습을 보이며, 고대 일본어, 몽골어와의 대응에서 볼 때 제2음절 이하에서 t구개음화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난다.

백제어

백제의 지배층이 고구려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초기의 지배층은 고구려어를 사용했지만 피지배층은 마한어(馬韓語)를 사용하는 저층(底層) 현상을 보였다. 그러나 상층의 고구려어가 저층의 마한어를 동화시키지 못해서 백제어는 마한어의 연속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백제어의 자료는 고대 삼국의 언어 가운데 가장 적어 〈삼국사기〉 지리지를 통해 그 모습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백제어 지명은 '夫里'로 된 것이 많다. 이것은 신라어 지명의 '火'와 같은 계통의 것이지만 고구려어 지명의 '忽'과는 대조된다. 그러나 어말의 모음을 더 유지하고 있는 점은 신라어와 다르다.

백제어에서만 발견되는 어휘도 없지 않다. 성(城)을 뜻하는 '己'나 '只'는 신라어나 고구려어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인데, 고대 일본어에도 차용되어 쓰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런 몇 가지 점을 제외하면 백제어의 어휘는 신라어와 대체로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백제어는 고구려어와 신라어의 완충적 성격을 띠기도 한다. 특히 t구개음화가 고구려어는 제2음절 이하에서만 실현된 데 비해 신라어에서는 어두에까지 일부 파급되어 있는데, 백제어는 그 중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백제어에는 어중(語中)의 'k'가 탈락되는 현상도 보인다. 이것은 중세국어 단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신라어

신라어 자료도 모두 한자를 이용한 차자표기로 되어 있다. 이 한자는 음으로 읽는 표기[音讀表記]뿐만 아니라 국어로 새겨 읽는 표기[釋讀表記]로도 되어 있다. 이 방식은 지명·인명·관직명 등의 고유명사 표기, 이두문, 향가 등에 다 나타난다. 신라어 자료는 백제어나 고구려어의 자료보다 많이 전하고 있는 편이지만 〈삼국사기〉 지리지 권3의 몇 예와 신라 이두문에 사용된 이두 글자 30자 내외, 향가 25수의 자료 정도밖에 없어 그 성격을 정확히 밝혀내기에는 미흡한 면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신라어가 위로는 한계제어(韓系諸語)의 진한어(辰韓語)를 잇고 아래로는 중세국어에 이어짐을 알 수 있다. 다음에 서술되는 고대국어의 특성은 거의 신라어 자료에 의한 것이다.

음운

자음체계에 있어서는 평음 계열과 유기음 계열이 있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그러나 경음 계열은 아직 발달되지 않았던 듯하다. 유기음 계열도 알타이 공통조어에서 분기된 시점에서는 존재하지 않다가 뒤에 발달되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서는 고대국어에 유성마찰음(ㅸ, ㅿ)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음절말 위치에서의 자음은 후기 중세국어나 현대국어에서와는 달리 내파음으로 발음되지 않아서 'ㅊ,ㅌ' 등의 받침이 제소리대로 발음되었다. 모음체계는 전기 중세국어에서와 마찬가지로 7단모음체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ㅣ'와 'ㅏ'에 해당하는 모음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금과 달리 발음되었다. 모음조화는 중세국어에서 보다 더 강력하게 지켜졌던 것으로 보인다.

한자음[東音]은 대체로 중국의 중고음(中古音)을 바탕으로 국어화하여 받아들여졌다. 중국 한자음의 입성운미(入聲韻尾)는 동음에서 중고음이 반영되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상고음(上古音)이 반영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중국 상고음의 입성운미 '*t'(*표시는 再構音을 나타냄)는 신라음에 'ㄹ'로 반영되었으며 '*k'는 'ㄱ'으로 반영되었다. 중국 한자의 유성음인 전탁(全濁) 계열은 무성음으로, 복잡한 운두(韻頭)와 운복(韻腹)은 간략화되어 단모음이나 이중모음으로 받아들여졌다.

어휘

신라어의 어휘는 중세국어와 많이 일치한다. 그러나 중세국어에서 확인되지 않는 어휘도 많이 있다. '福, 卜, 巴, 伏' 등으로 표기되어 '아이'[童]를 뜻했던 어휘는 퉁구스제어의 어형들과 고대 일본어의 어휘에 대응되지만 중세국어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고유어로 불리던 인명·지명·관직명을 신라 경덕왕(757) 때 중국식을 본떠 두 글자의 한자로 고친 일은 고유어가 한자어로 대폭 교체되었음을 보여준다. 한자어는 중국의 문어인 한문을 통하여 우리말에 받아들여졌다. 그밖에 '붇'·'먹'과 같은 어휘는 중국의 구어 '筆'·'墨'에서 차용되었다.

문법

조사는 주격(主格)·속격(屬格)·처격(處格)·대격(對格)·조격(造格)의 격조사와 주제의 보조사 등이 확인된다. 다른 것들은 중세국어에 거의 다 나타나는 것들이지만, 처격조사는 '良', '良中', '衣', '矣', '惡中', '中' 등으로 그 종류가 많았다. 이중 '衣', '矣'는 속격조사와 형태가 같았다. 주어가 나타나야 할 곳에 쓰이는 속격조사의 용법도 있었다.

활용어미도 중세국어에서 확인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隱', '乙'로 표기되는 어미는 동명사적 용법과 관형사적 용법 모두를 보이는데 원래 동명사적 용법만 보이던 것이 뒤에 관형사적 용법을 더 갖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세국어에서 확인되지 않는 독특한 용법을 보이는 것도 없지 않았다. 종결어미 '齊'도 그렇지만, 지속태의 '音'과 추량·미래의 '古' 등 선어말어미는 중세국어나 현대국어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현대의 일부 방언에만 화석처럼 남아 있는 어미이다. 경어법 요소는 존경법, 겸양법이 각각 '賜', '白' 등으로 표기되었으나 공손법 요소는 적극적으로 표기되어 나타나지 않았다.

의도법 요소도 확인되며, 시제 요소도 거의 다 확인된다. 특히 '內'로 표기되는 선어말어미는 현재시제 외에 관형사적 용법도 보인 듯하고 출현분포가 중세국어에서와는 아주 다른 모습을 나타냈다. 그외 접미사 '-i,-o'계의 것은 파생과 굴절의 2가지 성격을 다 갖고 있었고 동사 어간이 다른 어간과 직접 통합하여 복합어를 이루는 현상도 있었다.

의문사가 있을 때 그에 호응하는 의문어미가 '古'로 나타나는 점은 중세국어와 같다. 아직 향가 자료가 매우 빈약하고 그 해독이 완벽한 수준에 이르지 않을 뿐 아니라 이두문에서 확인되는 문법 요소도 30가지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신라어의 문법이나 고대국어의 문법을 전반적으로 서술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현희(李賢熙) 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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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발달사 : 최범훈, 경운출판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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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발달사 상·하 : 김석득, 연세대학교 출판부,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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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변천사 : 김승곤, 건국대학교 출판부,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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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국어 처격조사에 대하여 - 향찰 하희를 중심으로:〈하서 김종우 박사 화갑기념논총〉 : 이병선, 형설출판사, 1977
고대국어 한자음의 연구 : 박병채,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75
고대국어의 이두표기 〈동양학〉 4 : 남풍현,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1974
고대국어의 한자 운미수에 대한 고찰 〈어문학〉 29 : 권재선, 한국어문학회, 1973
고대국어의 음운체계 재구식론 - 국어한자음의 분석을 중심으로 〈민족문화연구〉 5 : 박병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71
한국어형성사 - 신라어와 중세 한국어 〈한국문화사대계 Ⅴ〉 : 이기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67
고대어의 형태론적 연구시도 - 이두의 "良"자를 중심으로 〈최현배 선생 환갑기념논문집〉 : 이숭녕, 사상계사, 1954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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