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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5-10 (토) 22:40
분 류 사전2
ㆍ조회: 2563      
[신라/고려] 호족 (브리)
호족 豪族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있었던 지방 세력가들을 지칭하는 용어.

호족은 주로 신라말부터 고려초까지의 사회 변동기에, 변동을 주도한 계층이나 인물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가리키는 대상이 서로 다르며 그 의미나 개념도 다양하다.

호족이라는 용어가 신라 말기의 사회 변동과 관련을 가지게 된 것은 1937년 백남운(白南雲)이 그의 저서 <조선봉건사회경제사>에서 쓴 것이 처음이다. 이 책에서 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이르는 사회 변동기의 격변을 '고대노예제적 생산력의 모순이 폭발한 것'으로 보고, 그때 농민 운동이 추진된 결과 '신지주적 호족군'(新地主的豪族群)이 등장했다고 보았다.

이때의 호족은 농업 생산과 관련된 지방 사회의 광범위한 지주층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는 단 한 번 쓰였을 뿐 책의 다른 부분에서는 신라 시대의 토호(土豪) 등을 호족으로 표현했다. 신라 시대의 지방 토호를 호족이라고 부른 것은 이후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쓰였다. 8ㆍ15해방 후에 새로 간행된 여러 한국사 개설서에서는 호족을 나말 여초기 사회 변동의 주역이라기보다는 신라 사회의 토호ㆍ대족(大族)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했다.

1960년대부터 나말 여초기를 고대 사회에서 중세 사회로 전환하는 과도기로 파악하고 이 시기의 사회 변동을 주도한 계층을 '호족'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뒤 여러 연구자들이 호족이란 용어를 나말 여초 사회 변동의 주역을 가리키는 역사적 용어로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호족으로 불리는 대상

호족이 나말 여초 사회변동의 주역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개 일치한다. 하지만 그 개념에 따라 혹은 연구자의 시각에 따라 가리키는 대상이 매우 다르다.

첫째, 호족을 나말 여초의 사회 변동기에 활약했던 지배적인 몇 개 유형의 대세력가들을 총칭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예가 있다. 이 경우는 ① 지방 토호 출신으로서 신라에 반란을 일으킨 세력, ② 왕건(王建)ㆍ유천궁(柳天弓) 등과 같이 해상 활동을 통하여 성장한 해상 세력, ③ 견훤(甄萱) 등과 같이 지방군 출신의 군사세력, ④ 궁예(弓裔)ㆍ원종(元宗)ㆍ애노(哀奴) 등과 같이 공동체에서 일탈하여 초적(草賊)ㆍ도적 무리를 형성한 세력 등 당시에 등장한 여러 세력들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이들을 모두 '호족'이라 했다.

둘째, 첫번째 견해에서 호족으로 지칭한 대상에서 초적ㆍ도적의 무리는 제외시키는 경우이다. 여기서는 나말 여초의 호족을 당시에 등장하던 성주(城主)ㆍ장군(將軍), 군진 세력(軍鎭勢力), 해상 세력 등으로 이해한다.

셋째, 당시의 주역을 지방 토호 세력과 해상 세력으로 표현하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호족을 경제적 부를 이룩한 세력으로 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방에서 대대로 토착하고 이를 기반으로 세력을 형성하여 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한 예, 즉 지방 토호가 성장하여 독립함으로써 그 지방의 유력자가 된 이들을 호족이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가운데는 그들의 세력기반을 족단(族團)에서 구하며, 호족을 이들 족단의 대표라고 보는 견해가 일찍이 제기되었다.

이와 같이 나말 여초의 호족의 개념은 연구자들에 따라 차이가 있고, 역사서술에서도 다른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호족의 개념

신라말과 고려초에 활동했던 주역들에 대한 표현을 사료에서 검토해보면 호족이라는 표현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체로 장군ㆍ성주ㆍ지군사(知軍事)ㆍ적(賊) 등의 표현이 가장 많이 나온다. 호족이란 표현은 단지 승려 도윤(道允)의 집안이 '대대로 호족'이었다고 밝히는 곳에서 나오며, 비슷한 표현으로 웅호(雄豪)나 호걸(豪傑)이 1번씩 있을 뿐이다.

당시 지방에서 등장하는 유력자들은 대개 군사적 성격의 용어로 많이 표현되었다. 이들은 일정한 지방의 출신으로 그 지방 전래의 군사력과 토지경제력을 계승하며 장악하는 세력과, 출신 지방을 떠나 지역적 연고를 갖지 못하는 무장세력이 지방경제력과 결합하여 구성되는 세력으로 나뉜다. 또 출신지에서 일탈하여 도적이 무력으로 지방 토착경제력을 장악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 호족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유일한 기록인 도윤의 집안에 대한 문구에서 호족은 '대대로 토착해온 집안'이라는 의미가 강하여 '토호'(土豪)와 '가문'(家門)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호족'의 '호'(豪)는 향호(鄕豪)ㆍ호우(豪佑)ㆍ호문(豪門)ㆍ호가(豪家)ㆍ호호(豪戶) 등에, '족'(族)은 관족(冠族)ㆍ저족(著族)ㆍ무족(茂族)ㆍ군족(郡族) 등에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호'는 대체로 '부와 세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며, 족은 '일정지역에 기반을 둔(토착한) 가문'의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이를 결합하면 호족은 '대대로 토착성을 가지며 이를 바탕으로 무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지방의 명문가'가 된다.

호족은 위에서 말한 지방유력자의 유형 가운데 지방 토착적 경제력과 무장력으로 결합된 집단이라는 의미에 가장 가깝다. 근래에 넓은 의미의 지방세력을 총칭하는 의미로 '호족'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점차 지방토착출신 유력자, 즉 신라의 촌주층에 한정하여 사용하는 경향이 짙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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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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