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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0-04 (토) 17:40
분 류 사전3
ㆍ조회: 948      
[근대] 조국광복회 (브리)
재만한인조국광복회 在滿韓人祖國光復會

1936년 만주에서 한인 사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항일무장투쟁세력이 조직한 반제민족통일전선 운동단체.

1935년 제7회 코민테른 대회는 세계 혁명운동의 새로운 전략으로 반파시즘 인민전선노선을 채택했다. 한편 중국공산당은 한국혁명의 독자성을 요구하는 한인 사회주의자들의 정당성을 인정하여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을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으로 바꾸고 간도(間島)의 반일통일전선당을 조직할 것을 새롭게 제시했다.

이와 관련하여 1936년 2월 남호두(南湖頭)에서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제5군, 동만특위(東滿特委), 길동특위(吉東特委)의 책임자 연석회의가 열렸다. 한인 사회주의자들은 이 회의에서 반일민족통일전선을 강화하기 위해 상설적인 반일민족공동체를 결성할 것, 반일민족통일전선과의 밀접한 결합하에 국내의 당창건 준비활동을 확대·발전시킬 것, 항일무장투쟁을 국내의 운동과 결합시키기 위해 장백현(長白縣) 일대에 새로운 유격 근거지를 창설할 것을 결의했다.

남호두 회의의 결정과 동북항일연군 통일군대 건제(建制) 선언에 따라, 인민혁명군 제2군이 동북항일연군 제2군으로 재편되었다. 특히 제3사는 한인유격대 지도자들이 중심이었기에 이들에게 국내진공작전을 수행하고 백두산 일대에 근거지를 건설하라는 과제가 부여되었다.

같은 해 5월 동강(東崗)에서 열린 제2군 당정간부회의는 장백·무송(撫松)·안도(安圖) 일대에 새로운 유격근거지를 구축할 것을 결정하는 한편, 한인의 반일민족통일전선체로서 재만한인조국광복회의 결성을 결의했다.

1936년 6월 10일 재만한인조국광복회의 선언과 당면 10대강령(초안), 규약(초안)이 오성륜(吳成崙)·엄수명(嚴洙明)·이상준(李相俊)의 명의로 공포되었다. 이들은 창립 선언에서 전민족이 계급·성별·지위·당파·연령·종교를 불문하고 일치단결, 궐기하여 일제와 싸워 조국을 광복시킬 것을 주장했다.

10대강령에서는 광범한 반일역량에 기초한 조선인민정부의 수립, 중국 영내 거주 한인의 진정한 민족자치 실현, 일본군·경찰 및 주구의 무장해제와 한국 독립을 위한 혁명군의 조직, 일본·일본인·친일분자 소유의 재산과 토지몰수, 민족적 공업·농업·상업 발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전취와 정치범 석방, 봉건적 신분제거 및 남녀·민족·종교의 차별 없는 인륜적 평등 제고, 노예노동과 노예교육 철폐 및 우리말·우리글 교육 실시, 8시간노동제실시·노동조건개선·임금인상·노동법안확정·실업대중구제, 한민족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민족 및 국가와의 친밀한 연합 등을 제시했다.

재만한인조국광복회는 개인 가입을 원칙으로 하고 노동자·빈농뿐만 아니라 부농·지주·부르주아지 등 반일민족통일전선에 이해를 같이하는 모든 반일역량을 포섭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 동북항일연군 제3사와 연계하여 백두산 일대에 근거지를 구축하기 위해 다수의 정치공작원을 장백현 일대와 국내에 파견했다.

그결과 1937년 2월 권영벽(權永壁)을 중심으로 중국공산당 동만특위 장백현공작위원회, 이제순(李悌淳)을 중심으로 조국광복회 장백현공작위원회가 되었다. 한편 1935년부터 이제순과 만나 항일유격대와의 연계를 전제로 한 갑산공작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던 박달(朴達)·박금철(朴金喆) 등은 1936년말부터 김일성·권영벽 등과 만나 10대강령과 활동방침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다음해 1월 공작위원회를 조국광복회의 국내조직인 조선민족해방동맹으로 개편했다.

이들은 갑산·삼수 등 국경지대 및 함경남북도 일대의 많은 지역에 이르기까지 조직을 확대하여 운흥면(雲興面)의 26개 단체와 보천면(普天面)의 9개 단체를 하부조직으로 두었다. 이런 성과에 기초하여 1937년 6월 김일성의 지휘 아래 동북항일연군 제6사와 연계해 보천면 보전(保田)을 공격하는 국내진공작전을 수행했다.

그러나 조직원들이 혜산에 잠입했다가 체포된 것이 단서가 되어 1937년 10월부터 다음해에 걸쳐 총 739명이 체포됨으로써 장백현 조직과 국내조직이 큰 타격을 입었다. 중일전쟁에 뒤이어 1940년 9월 일제의 대대적인 추계토벌작전이 시작되자 간부를 보존하고 역량을 축적함으로써 장기투쟁을 견지한다는 방침 아래 주력이 소련 하바로프스크로 퇴각함으로써 더이상 활동을 전개하지 못했다.

<참고문헌>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 和田春樹, 이종석 역, 창작과 비평사, 1992
식민지시대 민족해방운동 : 윤대원, 한길사, 1990
한국근현대민족해방운동사 : 이재화, 백산서당, 1988
조국광복회운동사 : 장덕순 외, 1985(지양사, 1989 재간)
조선족백년사화 전3권 : 현룡순 외, 료녕인민출판사, 1985(거름, 1989 재간)
한국공산주의운동사 전5권 : 김준엽·김창순 공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1967 - 76
재만한인공산주의운동연구 : 이명영,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75
재만한인조국광복회 선언과 강령의 성립경위 〈수촌박영석교수화갑기념 한민족독립운동사논총〉 : 허동찬, 수촌박영석교수화갑기념논총간행위원회, 1992
항일무장투쟁과 당건설운동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사〉 : 이준식, 한길사, 1991
항일무장투쟁과 북한지도집단 〈해방전후사의 인식 5〉 : 이종석, 한길사, 1989

<최원규(崔元奎) 글>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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