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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2-31 (수)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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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478      
[문학] 한국문학-현대문학 (두산)
한국문학-현대문학

세부항목

한국문학-상고~고려시대의 문학
한국문학-조선시대의 문학
한국문학-근대 현대문학

lll. 현대문학

한국의 현대 문학은 금세기 초에 전개된 신문학(新文學)운동으로부터 8 ·15광복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성된 문학을 지칭한다. 1894년의 갑오개혁을 경계로 한반도에는 위로는 정치제도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반 생활양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서양의 선진 문화를 뒤따르려는 근대적인 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이 신기운을 개화기(開化期)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한국의 신문학운동도 이 개화기의 한 산물이다. 개화란 서구화를 의미하는 면이 강했지만 그것이 국적이나 민족을 무시 또는 초월하는 근대의식이 아니었고 민족의 자주독립을 고취하려는 의지를 근간으로 하였다는 점에 유의해야 하며, 실상 한국의 근대적 민족주의와 민족문학은 이 개화기부터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의 현대 문학은 민족의식과 근대적 자아의식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민족의 독립 ·번영에 대한 일체의 도전에 대한 저항과 예술적 창조의 두 국면의 긴밀한 관계를 파악하는 데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1. 개화기

개화기의 문학은 번역 ·창가 ·신소설의 세 가지 형태로 집약할 수 있다. 번역은 성서(聖書)와 찬송가의 번역과 함께 J.버니언의 《천로역정(天路歷程)》 번역(1895)이 있었고 이어 일본을 통한 중역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조중환(趙重桓)의 《장한몽(長恨夢)》, 이상협(李相協)의 《해왕성(海王星)》 등이 나왔는데 이것은 한국 근대문학 발생에 있어 서구문학의 영향을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것들이다.

창가는 1890년대 후반에 《독립신문》의 발간과 함께 나타났는데, 이용우의 《애국가》, 이중원의 《동심가》 등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내용이 중추를 이루었다. 창가는 그 뒤 7 ·5조, 8 ·5조 등의 가사 형태로 발전, 최남선(崔南善)의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라는 신체시(新體詩)를 낳았다.

신소설의 첫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인직(李仁稙)의 《혈(血)의 누(淚)》는 1906년에 《만세보(萬歲報)》에 발표되었으며, 이어 같은 작가의 《귀(鬼)의 성(聲)》(1907), 이해조(李海朝)의 《빈상설(徇약)》(1908) 《자유종(自由鐘)》(1910), 최찬식(崔瓚植)의 《추월색(秋月色)》(1912) 등이 나왔는데 이들 작품의 주제는 자주독립, 근대적 민주사상, 신교육사상, 기성인습의 비판, 미신타파 등의 근대적 내용을 담았으나 권선징악, 인물의 정형성(定型性), 인위적인 종말 등의 요소는 고대소설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어서 나타난 춘원 이광수(李光洙)는 근대소설의 시초라 할 장편소설 《무정(無情)》을 발표하고 계속해서 《개척자(開拓者)》 등을 발표하였다. 이들 작품은 개화기 소설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지만 일상어에 의한 산문문장과 작품 구조의 확립, 장편소설의 가능성 등에서 문제가 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2. 근대문학 도입

1920년대는 한국의 신문학운동에 있어 개화기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한국문학 근대화의 한 고비가 되는 셈이다. 물론 문학의 근대화라면 우선 그 환경이 문제가 되고 민족적인 독립국가라는 큰 전제가 필요하지만, 한국 신문학의 경우 10년에 국권피탈로 인하여 근대화의 환경으로서는 불모지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신문학운동은 전개되어 19세기의 근대문학 사조인 낭만주의 ·자연주의 ·상징주의 등이 들어와서 문예사조를 형성하였다. 이와 같은 사조들을 타고 문학지들도 많이 등장하였는데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 지상에는 김억(金億) ·황석우(黃錫禹) 등이 자유시를 발표하였고, 문예동인지 《창조(創造)》에서는 일본 낭만파 시의 대량 번역과 함께 주요한(朱耀翰)의 휘트먼적 의지, 전원구가(田園謳歌), 도시통매(都市痛罵) 등 이상적 경향의 시를 볼 수 있었다.

이어 《장미촌(薔薇村)》(21), 그리고 김억 ·남궁 벽(南宮璧) ·나혜석(羅惠錫) ·오상순(吳相淳) ·황석우 ·염상섭(廉想涉) 등을 동인으로 한 《폐허(廢墟)》(1920), 박종화(朴鍾和) ·홍사용(洪思容) ·노자영(盧子泳) ·이상화(李相和) ·박영희(朴英熙) ·나도향(羅稻香) 등이 동인이었던 《백조(白鳥)》(1922), 양주동(梁柱東) ·이장희(李章熙) ·유엽(柳葉) 등을 동인으로 한 《금성(金星)》(1924) 등이 발행되었는데, 이들 동인지에 나타난 대부분의 시는 허무적인 낭만주의를 주조로 하였다. 여기에 김소월(金素月)의 민요적 정한(情恨), 한용운(韓龍雲)의 구도적(求道的) 시정신을 추가할 수 있다.

이광수의 계몽주의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김동인(金東仁)을 비롯하여 전영택(田榮澤) ·현진건(玄鎭健) ·염상섭 ·나도향 등은 1920년대 초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이 작가들 가운데 김동인은 문학의 계몽성을 거부하는 순문학을 탄생시켜 근대적인 문학정신을 심어놓은 작가라는 점에서, 또 염상섭은 냉철한 리얼리즘을 보여준 최초의 작가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1920년대에 나타난 문학운동 중 색다른 것은 소위 신경향파(新傾向派) 문학과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다. 이 두 개의 문학은 1920년 초부터 밖에서 들어온 사회주의사상과 풍조를 배경으로 하여 일어난 것이다. 신경향파는 시보다도 소설에서 더 활발한 면을 보였는데 그 특색은 하층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극빈적 가난을 그리되 결말에 가서는 지주(地主) 등 상류계급에 대한 반항을 나타내는 것이 상례였다. 그 대표적 작가로는 최서해(崔曙海)를 들 수 있다.

그 뒤를 이어 1925년에 프로 문학단체인 카프(KAPF: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가 결성되어 약 5 ·6년간 문단의 패권을 쥐다시피 하였는데 이 프로문학의 특징은 마르크스적 이데올로기의 주입과 계급혁명이라는 정치성이 노출되어 문학적인 작품으로서의 성과를 남기지 못하였다. 이에 속하는 대표적 문인은 임화(林和) ·이기영(李箕永) ·김남천(金南天) 등이었다.

3. 30년대 문학과 모더니티

30년대의 한국의 문학은 20년대 후반에 성행했던 프로문학에 대한 반발과 파시즘의 대두 및 중 ·일전쟁 발발로 불안의식이 고조되어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객관적 정세가 악화될 때 문학은 위축되고 안이한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상례이지만, 이 시기의 문학을 문학사적인 입장에서 살펴볼 때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 그 특징을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시나 소설에서 서정주의적인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점이다. 시에서 김영랑(金永郞), 소설에서 이태준(李泰俊)의 작품들이 이 범주에 속하며 이효석(李孝石)의 후기 작품도 같은 경향이다. 거기에는 민족주의적인 애상과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둘째는 1933년을 전후해서 등장한 모더니스트의 일파이다. 이 모더니즘은 시인들이 중심이 된 문학운동으로 서양의 상상파(이미지즘)의 계통을 본떠서 모더니티를 강조한 것이다.

김기림(金起林)이 주동이 되고 김광균(金光均) ·장만영(張萬榮) ·장서언(張瑞彦) 등의 시인들이 뒤를 따랐다. 9인회의 한 사람이었던 정지용(鄭芝溶) 또한 언어의 조탁(彫琢)과 리듬의 추구에 주력하면서 모더니즘의 선행주자의 역할을 했으며, 이 파를 이론적으로 도운 사람은 새클리 등의 주지파(主知派) 문학을 도입 소개한 평론가 최재서(崔載瑞)였다.

한편 이상(李箱)도 이와 같은 경향을 띠고 작품활동을 한 작가이다. 그는 초현실주의 시(詩) 《오감도(烏瞰圖)》(34)와 최초의 심리주의 소설 《날개》(36)를 써서 현대시와 현대소설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30년대 후반기에는 재능 있는 신인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이 시기는 일본의 대륙침략전이 한창이던 때였으므로 한국문학의 주경향은 도시의 현실을 도피하여 자연을 가까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역사소설의 대거 등장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김동명(金東鳴) ·김상용(金尙鎔)의 전원시(田園詩), 이무영(李無影)의 농민문학이 그것을 증명하며, 이광수가 《단종애사(端宗哀史)》를, 김동인이 《운현궁의 봄》을, 현진건(玄鎭健)이 《무영탑(無影塔)》을, 박종화(朴鍾和)가 《대춘부(待春賦)》 등 역사소설을 내놓은 것도 그들의 민족주의 사상과 무관하다 할 수는 없으나 앞에서 말한 현실도피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하겠다.

이 무렵 심리주의와는 반대로 세태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 일군의 세태소설이 등장했다. 채만식(蔡萬植)의 《탁류(濁流)》(38), 박태원(朴泰遠)의 《천변풍경(川邊風景)》(36)이 그것인데, 유진오(兪鎭午)도 《김강사와 T교수》(35)를 거쳐 시정(市井) 세계를 묘사한 《주붕(酒朋)》(40)을 발표하였다.

이 밖에 인상파 작가로 불리는 계용묵(桂鎔默) ·김유정(金裕貞)의 활약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시기의 후반기에서 또 하나의 두드러진 현상은 유능한 신인들의 등장이라 하겠는데 시에서 서정주(徐廷柱), 소설에서 김동리(金東里) ·박영준(朴榮濬) ·정비석(鄭飛石) ·최인욱(崔仁旭) 등 신인이 한국의 토착적 ·풍토적인 데서 제재를 찾아 작품을 형상화함으로써 높은 예술성의 획득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특히 김동리는 《무녀도(巫女圖)》 《바위》 등의 수작들을 발표하여 한국의 문학을 한층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4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전쟁 말기로서 한국문학은 암흑기에 처해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때에 두 개의 문학잡지 《문장(文章)》과 《인문평론(人文評論)》이 존재하여 문학을 지키는 교두보의 역할을 했다.

이 잡지를 통해서 박두진(朴斗鎭) ·박목월(朴木月) ·조지훈(趙芝薰) 등 청록파 시인과, 소설에 최태응(崔泰應) ·임옥인(林玉仁)이 등장하였다. 조지훈의 자연적 ·선적(禪的)인 고아한 율조, 박목월의 토속적 민요적 자연친화(自然親和), 박두진의 이상적인 자연승화 등은 특히 괄목할 업적이었다.

4. 조국광복과 민족문학 확립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은 한국 민족과 그 문화를 지난 36년간의 일제의 쇠사슬로부터 해방시켰다. 문학도 8 ·15광복의 환희 속에서 민족문학 건설의 기치를 높이 내세우고 새출발을 하였다.

많은 시인 ·작가 ·비평가가 등장하여 《백민(白民)》 《민성(民聲)》 《신천지(新天地)》 《학풍(學風)》 《예술조선(藝術朝鮮)》 《문예(文藝)》 등 여러 지면을 통해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일제의 한국어 말살정책으로 말미암아 쓸 자유를 완전히 빼앗겼던 문학인들은 광복의 감격 속에서 언어를 깎고 다듬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또 하나의 현상은 혼란기를 틈타서 빚어진 좌익 문인들의 책동을 민족진영의 젊은 문인들이 작품과 단체활동으로 분쇄한 사실이다. 좌우익의 논전은 에세이스트에 지나지 않았던 김동석(金東錫)의 <순수문학의 정체>와 순수문학의 기수인 김동리(金東里)의 <독조문학(毒爪文學)의 본질>로써 시작되었다.

이 논전에 좌익계의 김병규(金秉逵)가 가담했고 민족주의 진영의 조연현(趙演鉉) ·이헌구(李軒求) ·조지훈(趙芝薰)이 지원사격을 가하였다. 이 무렵의 논전을 요약하면 ① 계급문학 대 민족문학, ② 물질 대 정신, ③ 사회성 대 인간성, ④ 공식주의 대 다양성, ⑤ 공산주의 대 민주주의가 된다. 그러나 뒤이어 밀어닥친 6 ·25전쟁은 엄청난 비극을 초래했고 공산주의의 비인간성을 다시 한 번 체험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문학이 제대로 발전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으나 문학잡지, 특히 순문학을 지향하는 《문예(文藝)》가 문단에 큰 활기를 불어넣었던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이 지면을 통하여 기성작가의 작품도 적지 않게 발표되었지만, 새로운 세대를 짊어질 신인들이 많이 등장하였고 그들은 잇따라 주목할 작품들을 발표하였는데, 소설에 장용학(張龍鶴) ·손창섭(孫昌涉) ·강신재(康信哉), 시에 한성기(韓性祺) ·이수복(李壽福) ·박재삼(朴在森) 등이다.

이보다 약간 앞서지만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의 《청록집(靑鹿集)》과 박인환(朴寅煥) ·김수영(金洙暎) 등 모더니스트들이 낸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은 이 시기를 장식한 작품들이다. 50년대 초반은 6 ·25전쟁으로 전선에 종군한 시인 ·작가들의 르포르타주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었으나 접전 현장이 작품으로 형상화된 것은 거의 없다.

작품의 무대는 대체로 전선 아래에 있는 병영이거나 전쟁이 휩쓸고 간 마을 또는 먼 후방의 도시였으며 주요 작품으로 조지훈의 《풍류병영(風流兵營)》, 구상(具常)의 《적군묘지 앞에서》 등의 시작품과 황순원(黃順元)의 《학(鶴)》, 안수길(安壽吉)의 《제3인간형(第三人間型)》, 김동리의 《밀다원 시대(密茶苑時代)》 등의 단편소설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전후파 기질 및 실존주의가 문단을 풍미한 사실이다. 서구와 일본 사회에서는 전후파적인 풍조가 제2차대전 후에 곧바로 나타났지만 한국에서는 6 ·25전쟁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나타나 이 때에 이르러 처음으로 폐허와 허무와 절망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즉 기존의 질서와 도덕을 부정하고 권위를 부정하며 모든 속박으로부터 일단 자유로워지고 싶어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으로 서기원(徐基源)의 《암사지도(暗射地圖)》, 한말숙(韓末淑)의 《신화의 단애(斷崖)》 등을 들 수 있다.

5. 1960~70년대 문학

6 ·25전쟁으로 한국 민족이 입은 물질적 손실과 정신적 상처는 60년대 초엽에 이르러서도 작가들이 쉽게 잊을 수 없는 체험으로 남아, 오상원(吳相源) ·서기원 ·강용준(姜龍俊) 등이 이 시기에 전쟁의 여러 상흔을 계속 보여주었다.

4 ·19혁명과 5 ·16군사정변을 경험하면서부터는 작가의 정치 ·사회에 대한 시민적 각성 및 비판의식이 높아지면서 김정한(金廷漢)의 《모래톱 이야기》, 이호철(李浩哲)의 《판문점》, 남정현(南廷賢)의 《분지(糞地)》 등이 생산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현실을 고발하고 풍자하며 민중의 정서와 가락에 특별한 관심을 쏟아온 시인들의 업적, 즉 김수영(金洙暎) ·신동문(辛東門) ·신동엽(申東曄) ·신경림(申庚林) 등의 작업을 간과할 수 없다.

또 시의 표현기교에 새로운 실험을 끈질기게 시도한 김춘수(金春洙) ·전봉건(全鳳健) ·신동집(申瞳集) ·김구용(金丘庸) ·문덕수(文德守) ·김종삼(金宗三) ·박희진(朴喜璡) 등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과 함께 재래적인 정서와 풍속과 윤리와 신앙과 사상의 중시, 회고적이며 소박한 자연에의 도취, 토속어의 애용 등을 특징으로 하면서 시의 전통을 이어온 시인들이 있는데, 이원섭(李元燮) ·김윤성(金潤成) ·이동주(李東柱) ·천상병(千祥炳) ·박용래(朴龍來) ·이형기(李炯基) ·박재삼(朴在森) ·이성교(李姓敎) ·김관식(金冠植) ·구자운(具滋雲)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김소월과 김영랑에서 출발하여 김광섭(金珖燮) ·서정주와 맥을 잇고 청록파 시인에게서 한 봉우리를 이룬 전통적 서정주의에 바탕을 둔 시인들이다.

한편, 소설에서는 60년대 이후 내성적 기교주의로 불릴 만한 젊은 세대의 작가들이 등장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이청준(李淸俊) ·박태순(朴泰洵) ·전상국(全商國) ·유재용(柳在用)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이들의 작품세계에서는 50년대 작품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개인주의적 내성과 새로운 감성의 세계를 섬세한 언어기교로 그려냈다는 특성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소설사에서 볼 때 이 때에 이르러 단편소설 위주에서 벗어나 장편소설 시대로의 전기(轉機)가 마련되었다. 문학 전문지는 물론 종합월간지에서 중편이나 장편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안수길의 《북간도(北間島)》, 박경리(朴景利)의 《토지(土地)》, 최인훈(崔仁勳)의 《광장(廣場)》 등은 이 때의 작품들이다.

6. 80~90년대 문학

1970년대에는 그 동안 문단의 주류를 형성했던 기성 문인들이 퇴조의 기미를 보이는 한편 젊은 신인들의 눈부신 움직임이 단연 각광을 받게 되었다. 소설분야에서는 최인호(崔仁浩) ·황석영(黃晳暎) ·조해일(趙海一) ·조선작(趙善作) 등 여러 젊은 작가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소위 70년대 작가로 일컬어지는 이들은 가장 많은 독자를 차지하는 신문소설에서도 그 자리를 휩쓸다시피 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故鄕)》, 조해일의 《겨울 여자》 등은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일종의 소설 황금시대를 구가(謳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작품 경향에 대해 그 상업주의(商業主義) 문학으로서의 병폐를 지적하는 비평의 소리가 일각에서는 높아지기도 했다. 한편 산업사회(産業社會)의 도래와 함께 그 병리적인 면을 작품을 통해 표현한 조세희(趙世熙)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의 작품집이 나와 단편집으로서 드물게 많은 독자를 얻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또 황석영은 공사판의 노사관계를 다룬 《객지(客地)》라든지 남북분단의 비극을 작품화한 《한씨 연대기(韓氏年代記)》 등을 발표하였다.

1970년대의 시단에서는 먼저 유신체제와 어두운 정치상황 아래에서 시인 김지하(金芝河)가 발표한 《오적(五賊)》이 필화사건(筆禍事件)을 몰고 와 국제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이 밖에도 두드러진 작품활동을 한 시인으로서는 정진규(鄭鎭圭) ·정현종(鄭玄宗) ·박이도(朴利道) ·이승훈(李昇薰)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우리 현대시의 새로운 변모를 가져오는 데 가장 앞장서는 구실을 했다.

1980년대에 와서 소설에서 큰 흐름을 형성하게 된 것은 그동안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던 대하소설(大河小說)의 등장이다. 이것이 독자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황석영(黃晳暎)의 역사소설 《장길산(張吉山)》과 조정래(趙廷來)의 《태백산맥(太白山脈)》 등을 들 수 있다. 이 밖에도 이문열(李文烈)의 장편 《영웅시대(英雄時代)》도 문단의 많은 주목을 받고 그 후 그는 90년대에 넘어 오도록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시에 있어서는 이성복(李晟馥) ·황지우(黃芝雨) ·최승자(崔勝子) ·김광규(金光圭) 등이 발랄한 작품활동을 했고, 이 밖에 노동시를 쓴 박노해와 기록적인 시집의 판매 성적을 올린 서정인도 80년대에 빠질 수 없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많은 상업주의적인 소설이 나타나 독자들을 혼란케 하는 경향도 있었지만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가 25년만에 완성된 것은 뜻깊은 일이다. 이 밖에 작가 홍성원(洪盛原)도 60년대에 등단한 이후 90년대에 이르기까지 《먼동》 《달과 칼》 등의 대장편을 발표하고 있다. 또 신경숙 ·공지영 등의 젊은 여류작가들의 활동도 두드러지고 있다.

시에서는 70년대 이후 두드러진 작품 활동을 해온 고은(高銀)이 《만인보(萬人譜)》 《백두산(白頭山)》 등의 장시(長詩)를 완성하고 30년대에 시단에 나온 서정주(徐廷柱)가 첫 시집 《화사집(花蛇集)》 이후 계속해서 작품을 쓰고 있다. 여류시인들도 홍윤숙(洪允淑) ·김남조(金南祚) ·김지향(金芝鄕) ·천양희(千良姬) 등이 50년대 이후부터 시작품의 꾸준한 발표를 이어 오고 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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