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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2-31 (수)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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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401      
[문학] 한국문학-조선시대의 문학 (브리)
한국문학-근대문학

세부항목

한국문학-상고~고려시대의 문학
한국문학-조선시대의 문학
한국문학-근대문학
한국문학-현대문학

조선 전기

조선이 건국되면서 문학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대립양상을 보였다. 정도전·권근 등은 건국과 문학의 이념을 새롭게 정립하고 왕조의 위업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었음에 반해, 길재·원천석 등은 은거하면서 고려 왕조를 회고하며 그에 대한 절의를 표방하고 세태를 개탄하는 작품을 창작했다.

건국 당시의 일시적인 혼란을 극복하고 지배질서를 확립한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국문문학의 기틀을 마련했는데, 이는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건국시조들의 영웅적인 행적을 찬양한 왕조서사시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와 석가모니의 일생을 다룬 불교서사시 〈월인천강지곡 月印千江之曲〉은 훈민정음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국문문학이라는 데 그 의의가 자못 크다.

유교에 입각하여 행실을 가다듬는 데 필요한 책을 만들고 불교의 경전을 번역하여 간행하는 사이에 국문문장의 실용성과 문학으로서의 가능성이 입증되었다. 새 왕조의 창업을 송축하는 노래인 악장도 국문으로 창작된 것이 많았다 (→ 색인 : 악장).

정도전의 〈문덕곡 文德曲〉·〈무덕곡 武德曲〉을 비롯하여 상진의 〈감군은 感君恩〉에 이르기까지 악장은 국문시가의 한 갈래를 형성했다. 고려 후기에 발생한 경기체가는 조선 전기의 문인들에게도 계승되어 권근의 〈상대별곡 霜臺別曲〉, 변계량의 〈화산별곡 華山別曲〉 등이 창작되었다. 처음에는 악장 구실을 겸하는 쪽으로 나아갔으나 점차 개인적인 관심사를 노래하는 쪽으로 변모되고 형식도 산만해지더니 조선 중기에는 그 자취를 감추었다.

가사는 정극인의 〈상춘곡 賞春曲〉, 조위의 〈만분가 萬憤歌〉 등이 창작되어 사대부문학으로 자리를 잡고 은일·유배·기행 등의 주제를 다루면서 다채롭게 발전했으며, 정철의 〈성산별곡 星山別曲〉·〈관동별곡 關東別曲〉·〈사미인곡 思美人曲〉·〈속미인곡 續美人曲〉 등이 그 절정을 이루었다.

시조는 초기에 구왕조인 고려에 대한 회고, 사육신의 충절, 무장의 기개 등을 읊은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이현보의 〈어부사 漁父詞〉 등이 창작되면서 연시조로도 발전했다. 주세붕의 〈오륜가 五倫歌〉와 정철의 〈훈민가 訓民歌〉는 유교적 실천윤리를 노래하는 교훈시조의 길을 열었으며, 이황의 〈도산십이곡 陶山十二曲〉, 이이의 〈고산구곡가 高山九曲歌〉 등은 자연 속에서 규범적인 진리를 구가하는 강호가도의 전통을 수립했다. 황진이·이매창 같은 기녀들도 남녀간의 애정을 정감어린 표현으로 노래함으로써 시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한문학도 새롭게 정비되었다. 서거정은 〈동문선 東文選〉·〈동인시화 東人詩話〉를 편찬하여 신라시대 이래의 시문을 집대성하여 비평했고, 성현은 〈용재총화 齋叢話〉를 지어 사장파(詞章派) 문학의 전통을 이룩했다.

이들 사장파와 대조적인 면모를 보인 것이 김종직에서 김일손으로 이어지는 도학파(道學派) 또는 사림파(士林派) 문인들이다. 서경덕·이황은 도학과 문학의 원리를 아울러 탐구함으로써 문학의 사상적 깊이를 더했다. 방외인의 성격을 지닌 김시습은 이단적·반항적인 시를 짓고 〈금오신화 金鰲新話〉와 같은 소설을 창작했다.

그런가 하면 삼당시인(三唐詩人)이라 일컬어지는 이달·백광홍·최경창은 생활감정을 절실하게 표현하는 시풍을 정착시켰고, 여류시인으로는 허난설헌이 명성을 얻었으며 기녀들 중에서도 한시에 재능을 발휘한 경우가 없지 않았다.

고려 후기에 융성한 가전문학은 이 시기에 이르러 김우옹의 〈천군전 天君傳〉, 임제의 〈수성지 愁城志〉 등으로 계승되었다. 심의의 〈대관재몽유록 大觀齋夢遊錄〉, 임제의 〈원생몽유록 元生夢遊錄〉은 몽유록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실험한 작품이고,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 太平閑話滑稽傳〉, 강희맹의 〈촌담해이 村談解〉, 송세림의 〈어면순 禦眠楯〉 등과 같이 음담패설을 한문으로 옮긴 저술도 나타났다. 명혼설화(冥婚說話)와 몽유설화(夢遊說話)를 수용하여 김시습이 지어낸 〈금오신화〉는 비록 한문 표기이기는 하지만 소설문학의 효시로 꼽히고 있다.

조선 후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문학에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亂中日記〉와 시조, 박인로의 〈선상탄 船上嘆〉, 유성룡의 〈징비록 懲毖錄〉, 강항의 〈간양록 看羊錄〉 등은 임진왜란의 실상을 기록하여 그 수난과 분발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궁녀가 쓴 〈산성일기 山城日記〉, 김상헌과 3학사의 시조, 윤계선의 〈달천몽유록 達川夢遊錄〉, 〈피생명몽록 皮生冥夢錄〉, 〈강도몽유록 江都夢遊錄〉 등은 병자호란의 참상과 후유증을 절실하게 표현했다.

한문학은 전통적 규범과 격식을 떨쳐버리려는 방향과 회복하고자 하는 두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권필과 허균은 전자의 입장에서, 이정구·신흠·이식·장유 같은 한문사대가는 후자의 입장에서 작품활동을 전개했다. 박지원을 비롯한 실학파는 현실로 관심을 돌려 생동하는 문체를 창안했고, 정약용은 민요풍의 한시를 짓고자 했으며, 신위는 개성적인 표현으로 한시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고자 했다.

한시의 소재를 이 땅의 풍속과 현실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 확산되어 〈해동악부 海東樂府〉가 거듭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위항인(委巷人)이라 일컬어지는 중인·서리·시정인들이 한문학 창작에 적극 참여했다. 정내교·장혼·조수삼을 위시한 위항인들은 시사(詩社)를 결성하고 시 창작에 열의를 보였으며 자기들의 한시를 풍요(風謠)라 하고 이를 후대에 널리 알리기 위해 〈소대풍요 昭代風謠〉·〈풍요속선 風謠續選〉·〈풍요삼선 風謠三選〉 등을 편찬했다.

문학관 및 문학사상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허균은 도학의 굴레를 벗어나 자연스러운 감정을 담은 문학을 주장했고, 김만중은 모방에 치우치는 한문학보다 나무꾼과 빨래터의 아낙네가 부르는 민요가 오히려 더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홍만종은 〈시화총림 詩話叢林〉을 편찬하여 국문시가에 대한 비평을 시도하고, 홍대용은 천기론(天機論)을 내세워 새로운 문학론을 전개했다. 박지원은 현실을 비판하는 방법을 문학에서 찾았으며, 정약용은 조선시(朝鮮詩)를 주창했다.

사대부의 시조는 윤선도에 이르러 세련된 언어미를 획득했지만 현실감각은 오히려 무뎌졌다. 그러한 가운데 권섭은 시조 창작에만 전념하다시피 한 작가로서 끊임없는 자기 확인과 풍속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고, 이정보는 탈속한 경지의 흥취를 노래하면서 사대부로서는 드물게 애정을 주제로 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왕족의 한 사람인 이세보는 다양한 제재와 주제를 다루는 가운데 세도정치와 잘못된 사회의 병폐를 강하게 비판하는 작품을 남겼고 458수나 실은 개인 시조집을 엮었다.

시조의 창작과 연행에 위항인들이 적극 참여함으로써 담당층이 확대되었다. 위항인 출신의 가객들은 경정산가단(敬亭山歌壇) 등의 가단을 형성하여 시조창법을 개발하고 시조집을 편찬했다. 김천택의 〈청구영언 靑丘永言〉을 비롯하여 김수장의 〈해동가요 海東歌謠〉, 안민영의 〈가곡원류 歌曲原流〉 등의 시조집은 그때까지 구비전승되어오던 작품과 문헌상에 기록된 작품 및 동시대 작가들의 새로운 창작품을 집대성하여 시조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가사는 갈래 자체가 지니고 있던 복합적인 성격이 극대화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비교적 서정적인 내용을 다루던 조선 전기와는 달리 김인겸의 〈일동장유가 日東壯遊歌〉, 홍순학의 〈연행가 燕行歌〉와 같은 장편기행가사가 나타나고, 〈농가월령가 農家月令歌〉·〈한양가 漢陽歌〉·〈우부가 愚夫歌〉와 같은 풍속가사가 성행했다.

종교적 교리를 담은 천주가사(天主歌辭)도 적잖은 수에 이르렀으며, 규방의 여인들을 중심으로 가정의 규범과 교훈은 물론 가정생활의 애환을 다양하게 다루는 규방가사(閨房歌辭)가 나타나 상당한 세력을 떨쳤다.

야담은 역사적인 내용을 지닌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 것인데, 유몽인의 〈어우야담 於于野談〉이 나온 후로 작자 미상의 〈청구야담 靑丘野談〉, 이희준의 〈계서야담 溪西野談〉, 이원명의 〈동야휘집 東野彙輯〉 등에서 야담이 거듭 수록·정리되었다. 〈금오신화〉에서 시작된 한문소설은 허균의 〈장생전 蔣生傳〉·〈남궁선생전 南宮先生傳〉으로 이어지면서 뚜렷한 주제의식을 드러냈으며, 정태제의 〈천군연의 天君演義〉처럼 심성을 의인화한 가전소설도 나타났다.

〈창선감의록 彰善感義錄〉·〈구운몽 九雲夢〉·〈옥루몽 玉樓夢〉 등은 한문본과 국문본이 모두 광범위한 인기를 얻어 유행했다. 한문단편으로 분류되는 박지원의 〈양반전 兩班傳〉·〈허생전 許生傳〉은 치밀한 구성과 뚜렷한 주제를 통하여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드러냈고, 이옥·김려도 그에 못지 않은 경지를 보여주었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閑中錄〉은 비극적 체험을 우아한 문체로 나타내어 여류 궁중실기의 전통을 이었고, 박두세의 〈요로원야화기 要路院夜話記〉는 국문실기로 당시의 세태를 묘사했다. 국문 소설은 허균의 〈홍길동전 洪吉童傳〉에서 시작되었다. 도술을 부리는 주인공의 활약상을 다룬 〈전우치전 田禹治傳〉, 중국을 무대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영웅들의 투쟁을 그린 〈조웅전 趙雄傳〉·〈유충렬전 劉忠烈傳〉, 여성 주인공이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을 다룬 〈숙향전 淑香傳〉 등이 널리 읽혔다.

이러한 전통 속에서 중후한 주제의식과 세련된 표현을 갖춘 작품들이 쏟아져나왔는데, 김만중의 〈구운몽 九雲夢〉·〈사씨남정기 謝氏南征記〉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남영로의 〈옥련몽 玉蓮夢〉, 작자 미상의 〈천수석 泉水石〉과 같은 장편소설이 나타나고 〈명주보월빙 明珠寶月聘〉·〈완월회맹연 玩月會盟宴〉과 같은 장편대하소설로 이어진 것은 당시 소설의 대중적 인기를 입증한다.

국문소설은 방각본(坊刻本)으로 널리 보급되어 상품화되었고, 길거리에서 소설을 낭독하는 것으로 생업을 삼았던 전기수(傳奇)와 같은 사람들 또는 소설을 상품으로 판매하거나 빌려주는 세책가(貰冊家)들이 나타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판소리는 서사무가가 대중적 취향에 맞게 세속적·일상적인 차원으로 변모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며, 직업적인 광대들이 생업으로 삼아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만화본(晩華本) 〈춘향가 春香歌〉는 판소리가 숙종말부터 영조초 사이에 발생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판소리는 원래 12마당이었는데 고종 때 신재효가 〈춘향가〉·〈흥보가〉·〈심청가〉·〈수궁가〉·〈가루지기타령〉·〈적벽가〉 등 6마당으로 개작·정리했다. 판소리는 대개 표면적으로 충·효·열과 같은 관습적인 도덕을 내세운 것 같지만 이면적으로는 당시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문소설의 유행과 함께 이들 판소리 사설 가운데는 〈흥부전〉·〈심청전〉처럼 소설로 개작된 것도 있다. 무당굿놀이·꼭두각시놀음·탈춤 등 전래의 민속극은 사회적 통념과 권위의식을 풍자하고 비판함으로써 비판적 희극으로서의 성격을 더욱 뚜렷하게 가지게 되었다.

서울 근처에는 산대놀이, 황해도지방에서는 해서탈춤, 낙동강 유역과 동해안지역에는 오광대(五廣大)·들놀음[野遊] 등의 탈춤이 각각 성행했다. 한편 〈기음노래〉·〈합강정가 合江亭歌〉·〈거창가 居昌歌〉 등과 같이 항거와 고발의 내용을 다루면서 민요와 가사의 중간형태를 띤 작품들이 나타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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